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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Sep 02. 2019

조금 더 편해져도 괜찮아

둘째 아이에게 건네는 말


둘째는 이른둥이 31주에 880g의 무게, 자가호흡이 불가한 상태로 태어났다. 아이의 상태도 상태였지만 그때 더 급한 건 산모의 건강이었나 보다. 담당의가 입원 4일째 되던 날 아침, 허겁지겁 달려와서 전문용어들을 쏟아내며, "아기가 작지만 일단 산모부터 살립시다."라고 했다. 친정엄마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셨다.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이도 있는지 멀찌기 떨어진 곳으로 엄마를 모시고 가더라. 내 눈은 그날 이른 새벽부터 '전자간증에 의한 망막박리'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자간증은 우리가 잘 아는 임신중독증의 전문 의학용어다.)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수술실 들어가니 대기하던 의사 선생님들 심상찮은 말들을 뱉어냈다. 환자가 멀쩡히 듣고 있는데.. 난 이내 잠이 들었다.


태어난지 2주차 되던 아이. 분유를 1cc씩 넣어주던 주사통의 크기를 보면 아이의 크기가 조금은 가늠이 된다


일찍 세상을 만난 둘째는 첫째와 다른 특징들이 몇 있다. 1. 애착 형성에 살짝 문제가 있고 2.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3. 뱃고래는 아직도 작아 먹는 양이 적다. 4. 왼쪽 눈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지만 시신경 사진에 비해 특이 증상들이 없어 감사할 따름이다. 5.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슈퍼히어로 사랑이 남다르다. 힘이 세고 덩치도 큰 히어로들이 꽤나 부러운 듯하다.


그중 애착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가 NICU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개월 하고도 며칠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보 아이. 퇴원 후 집에 도착하 온 발과 손이 주사자국으로 상처가 생긴 것을 봤다. 작은 아이를 수없이 찔렀을 터. 살리기 위해 의료진도 애를 썼고 아이는 안아주며 응원해주는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서 이것을 버텨내어야만 했으리라. 서러워 울 때 누군가가 충분할 정도로 안아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저 홀로 아픔을 버텨야 했을 아이. 그런 아이를 위해 해 줄 것은 있는 힘을 다해 기도하고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둘째는 만 5세가 된 지금도 엄마 옷이 필요하다. 엄마 냄새가 있어야 하고 또 본인이 원하는 면의 옷이어야 한다.



그래, 엄마옷 여깄다.




아픔이 컸던 만큼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리는 안테나가 길어지고 정교해진 걸까


같은 것도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은 결핍에서 온다. 둘째 아이의 남다른 관찰력과 인지의 방식은 아이가 가끔씩 말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가끔 아이는 말한다.


1. 엄마 나 이거(주사자국) 병원에서 맞은 거지?

아이는 병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기 손과 발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걸 보며 저리 묻는다. 혹시 그 시절이 떠오르는 , 마음이 쓰인다.


2. 할아버지 눈이 아파?

외할아버지는 몇 해 전 대상포진이 얼굴 쪽으로 와서 안면마비가 왔고 그 후유증으로 왼쪽 눈꼬리가 살짝 쳐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싱 웃거나 엄지를 들어 올리며 할아버지를 북돋아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넘어갔는데 둘째에겐 할아버지의 남다른 눈이 음에 쓰였나 보다.


생후 5개월 즈음, 형의 사랑을 듬뿍 받는 동생


3. 할머니는 저때도 눈이 아파서 안경을 썼네?

할머니 집 거실에 걸려있는 옛날 가족사진을 보고 아이가 그랬다. 아이는 안경을 쓴다는 게 그런 의미인가 보다.


4. 왕할아버지 병원에 내가 꼭 가봐야 해.

나의 외할아버지는 지금 요양병원에서 지내신다. 얼마 전 그곳에 갔는데 어린 아이라 차 안에서 기다리자고 하니 아이가 그런다. 왕할아버지는 자기가 꼭 가서 봐야 한다고. 가서는 "할아버지 S 왔어요, 눈을 왜 감고 계세요? 눈을 좀 떠보세요. 저 S예요." 할아버지는 눈을 뜨시고 웃으셨.


5. 엄마 옷 주세요.

역시나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엄마 옷 주세요."다. 잠이 올 때 어김없이 하는 말. 내 옷만 있으면 그 옷을 만지작거리며 입으로는 젖병 빠는 시늉을 한다. 필로우 콤플렉스 대신 엄마옷 콤플렉스다.




가끔은 눈치 백 단인 아이가 엄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엄마하고 부른 뒤 싱긋 웃어주거나 와서 뽀뽀를 해줘서 나를 북돋워준다. 첫째와는 다른 둘째의 애교다. 아픔이 컸던 만큼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리는 안테나가 길어진 걸까, 사람을 관찰하는 눈이 남다르다. 다른 사람이 흔히 볼 수 없는 것을 보거나 생각하고 말해서 마음을 터치는 식이다. 



조금 더 편해져도 괜찮아


동시에 불안감이 높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자기도 모르게 안경테 끄트머리나 자기 옷을 물어뜯는다.  흔적들은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곳(주로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그리고 또래보다 크기가 작은 아이는 친구들보다 더 힘이 세고 더 컸으면 하는 마음의 소망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그에게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엄마의 배 속에서는 스트레스가 많았을 거라 했는데, 이 곳은 좀 너에게 편한 곳이면 좋겠어. 엄마가 더 도와주려고 애쓸게."


조금 더 편안해져도 괜찮아


사진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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