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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Sep 26. 2021

프랑스 친구가 건넨 초콜릿

생각의 여과지를 거치며 단단한 내면을 만들다


다양한 세계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며

다름을 깊이 경험하다


한 사람의 육아 방식이 누구에게는 관대하게 보일 수도, 누구에게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 많은 모임을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다. 첫째 아이를 트리니다드토바고라는 낯선 땅에서 키우기 시작한 그 시절, 나는 낮시간 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수업을 다니거나 친구들 모임에 가거나 아이 친구들 모임(베이비 그룹)에 가거나 하다 못해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연락해 급번개를 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TV 틀어놓을 시간도 없었다. 덕분에 큰 아이 만 한 살 넘어서까지는 정말 미디어 청정 환경에서 아이를 육아했다.




도로시


프랑스인 친구 도로시를 만난 것은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큰 아이를 키울 때 다녔던 아이 음악 수업에서다. 도로시는 항상 내 옆에 앉거나 아니면 내가 그녀 옆에 앉았다. 베이비 그룹에서 만난 적이 없는 친구였다. 나중에 듣고 보니, 원래 베이비 그룹에 속해 있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그 그룹을 자진 탈퇴한 친구였다. 몇 번 음악 수업에서 만나 이런저런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하게 되고 그러다 그녀가 자기 집에 놀러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에 몇몇 아이들을 초대하고 그 아이들을 위해 작은 활동(activity)을 준비한다는 거였다. 흔쾌히 수락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10개월인 첫 아이를 데리고 도로시 집에 갔다. 작고 아담한 집에서 늘 비키니 차림에 담배를 물고 있던 그녀. 자유롭고 거침없었는데 아이들 활동 준비는 완벽했다. 식물을 심기 위해 식물을 샀고, 흙을 샀으며, 에비앙과 아이들 간식, 우리가 마실 커피와 티까지, 우리를 배려했다. 한 번 갈 때마다 내는 500 트리니다드 달러(한화 약 5000원)는 그야말로 성의 표시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 오늘은 흙을 먹어봤어요!



거기 모인 엄마들은 프랑스인 도로시, 캐나다인 루시, 트리니 칼럼니스트인 제닌, 또 다른 캐나다인 캐서린, 그리고 한국인 나였다. 그녀 성격답게 마음에 맞는 몇몇 소수만 초대해 질 높은 활동을 제공해 주었다. 어느 때는 식물을 심었고 그러다 아이는 흙을 먹었으며, 어느 때는 각종 새 깃털로 캔버스 위를 마음껏 꾸미기도 했다. 여름의 나라에서 낙엽을 잔뜩 준비해 가을 체험도 했으며 핼러윈 때는 호박을 파고 씻었다 (10개월짜리는 호박을 팔 힘도 없었고 그렇다고 엄마들도 그 정도로 수업에 할애할 에너지가 없다고 여겨서였는지 아니면 수다를 떨기 위한 배려였는지 호박은 아주 예쁜 모양으로 90% 이상이 다 작업되어 있었다).


도로시가 방수기저귀를 채워줬어요. 엄마, 담부터는 바쁘더라도 내 수영복 좀 챙기세요!


아이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끝내고 나면 도로시는 초콜릿을 주었다.


이거 프랑스 거야(자부심 대단), J에게 먹여봐!


어,, 어 초콜릿?


활동하느라 J가 꽤 지쳤을 거야. 이거 먹이면 좋아.


엄마, 당 충전 제대로 했어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까 봐 (내가 때로는 그렇기에) 단번에 나는 아이에게 초콜릿 안 먹인다는 말을 못 하고 J에게 '아주 작은' 조각을 건네주고 나도 '많이' 먹었다. 가끔씩 낯선 문화를 마주하게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지만(생각의 여과지를 거치기 전에는 물론 비판하는 마음도 올라온다) 다름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려 했다. '맞아, 아이들이 피곤하면 많이 칭얼거리지, 도로시는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 속에서 나고 컸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녀도 나를 편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단호박 표현을 잘하는 내 베프 알리시아가 그리 불편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잘 안된다. 오랫동안 형성돼 온 내 성격이겠지 여긴다. 이것도 나다 하고.


이런 갑툭튀, 알리시아야 보고싶다!




아시안 레이디스


하루는 아시안 레이디스 모임이 있어서 한 친구 집에 갔다. 친구의 집에는 큰 홀이 있었는데, 바닥이 좀 지저분했다. J는 그 당시 걷거나 기어 다닐 때였는데 아이가 좀 더러운 바닥에서 기어 다녀도 그냥 놔뒀다.


친구가 묻는다.


J 무릎 좀 봐, 아이 계속 저렇게 둘 거야?


그랬다. 나는 프랑스 친구에게는 까다로운 사람, 시아인 친구에게는 관대엄마 수 있겠구나. 나는 같은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해석, 충분히 다를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람을 보고서도 같은 문화 안에서도 얼마나 평판들이 다양한가.




육아를 다 끝내고 자녀를 대학 입학을 시킨 한 분 M은 요란하다 싶고 예민한 첫째 아이 엄마였던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것 좀 먹는다고 큰 일 나지 않아, 그냥 나둬봐.


그런 사소한 제안과 자극들이 나의 초조함을 조금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른 육아 졸업 엄마들이 그랬다.


J 엄마는 요즘 젊은 엄마들 같지 않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아. 다들 조마조마하고 예민하게들 키우잖아.


어떤 면에서는 비판일 수도 어떤 면에서는 칭찬일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으로 놔두고 흘려 들었다. 다만 나의 예민함과 육아 불안을 잠재웠던 한 선배맘 M의 작은 조언들이 나에게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한 역할을 한 것 아닌가 싶다. 때로는 너무 작은 일에 매몰되어 큰 에너지를 써버리고 소진되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나.




생각의 차이, 다름은 인정하면


얼마 전, 오은영 선생님이 성인들을 상담해주는 금쪽 상담소를 시청했다.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보는 이를 감동의 장으로 몰아넣는 가수 에이미가 내담자였다. 에이미는 어느 수간부터 대중들의 고무줄 비판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단단한 내면, 나와 대중 사이의 생각 차이의 그 공간에 그것이 있어야 된다고 오 선생님은 조언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 그 단단한 내면의 조금씩의 수정은 있겠지만, 그 단단함이 있어야 주위의 차가운 지적과 간섭에 휘둘리지 않고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육아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저마다의 경험담이 정답인 양 이야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그 단단함으로 내 길을 가야만 한다. '누가 그렇다던데'라는 말 때문에 내 중요한 가치가 흔들리는 일은 안타깝고 슬프다. 에이미뿐이랴, 누구든 그런 차가운 비판을 들으면 참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은 나의 것이 아니고 말한 사람의 것이다. 그 사람이 보는 불편한 나는 그 사람의 몫이라는 것.


다양한 세계에서 온 이들과 어울렸던 나의 육아맘 시기는 참 행복했다. 한 가지를 보고도 여러 반응을 보였던 친구들, 육아의 바로미터는 없지만, 나의 단단함을 만들기 위해 좋은 것을 취해 나만의 바로미터를 만들었더랬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는 다양한 반응유연하고 무례하지 않고, 그 내용이 위협적이 아닌 이상, 그것을 인정하려 했다. 누군가의 생각이 나에게 가치가 있고 없고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그랬다.



*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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