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일. 첫 아이를 출산했다. 종로 보신각 타종 소리가 울려 퍼지던 때, 나는 처음 겪어보는 통증으로 몸을 말고 있었다. "어머니, 무통주사를 맞으시겠어요?"라는 간호사의 말에 '어머니가 누구지?' 했더니, 나를 일컫는 말이었다. '내가 왜 어머니야?' 이상했다.
결혼식 때, 사진기사가 "자, 신랑 가족분들 사진 찍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신부는 그 자리를 잠시 이탈했다. 그 신부가 바로 나다. 결혼은 여러번 다른 나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8시간 40분 여가 지난 새해 아침 난 첫째 J를 품 안에 안았다. 예정일보다 아이를 일찍 만난 탓에 남편은 내 옆에 없었고 친정 엄마가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카메라로 동영상 기록도 남겼다. 감동스러웠지만 퇴원 후 집에 왔을 때는 뭔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꿈을 꿨다. 나는 꿈속에서 아기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나는 바깥에서 그 바구니를 엘리베이터에 집어넣었고, 이내문은 닫혔다. 그리고는 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다시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 아기가 없자 아기를 찾는다고 난리였다. 꿈을 깬 후 든 생각은 '엄마가 아이를 버리다니...'와 '껌딱지'라는 단어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수가,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거기다 아이를 평생 딱 붙어 있을 껌딱지라고 생각하다니. 아마도 껌딱지를 떼어내고 싶었던 내 무의식이었을까.
출산 전부터 모유수유를 100프로 하고 싶은 욕심을 품고 있었다. 엄마의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는 똑똑하고, 건강하고, 잘 성장한다는 류의 연구보고서 혹은 기사 내용 들을 보며 아이의 탄생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젖은 아이에게 성에 차지 않았다. 모유 양을 늘리는 방법 들을 봤던 터라 시도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고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잠시 들른 이모는 엄마에게 가물치탕을 언급하며 그런 걸 해 줘야 한다고 엄마를 채근했다. 가물치도 고아 먹고 (덕분에 가물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았다. 꼭 뱀의 피부 같은 무늬를 가진 그것, 저걸 어떻게 먹냐 그것이 문제였다) 좋다는 건 다 먹어보았지만 모유 양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아이는 먹고 싶다고 난리였고 난 줄 수 없어 난리였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친정 엄마는 아이에게 분유를 타서 본인이 안아 먹이겠다고 자주 그랬다. 내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100% 모유수유로 가는 길에 방해꾼이 따로 없었던 거다. 그리고 나는 수유할 때 느낌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살아갈 양식을 제공하는 경건하고 고상한 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난 내가 짐승 같다고도 느꼈다. 혼란스러운 엄마로서의 정체성, 처음 가슴을 드러내 놓고 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우울감, 아이가 사랑스럽다기보다 껌딱지 같은 느낌(딱 걸렸구나의 느낌이었다),이 모든 것이 나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결국 엄마와 한 판 붙고 말았다. 해외에서 살다 아이 낳으러 들어와 친정엄마 집에 와 있는 주제에, 자식은 영원한 갑이었던가. 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 역시 만만한 성격이 아니신지라, 우리의 신경전은 꽤 오래갔다. 남편은 아이가 출생한 지 며칠이 지나 처가에 와 보니 두 여자가 처음 겪어보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불편했을까. 어디 남편뿐만이었겠나, 친정 아빠도 당시 시집을 안 갔던 여동생도, 그리고 남동생도 모두가 아마 불편했을 거다. 상담전문가인 여동생은 중간에서 우리를 화해시키느라 분주했고 올웨이즈 피스메이커인 친정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장인만 피스메이커라면 억울할 남편도 거든다고 난리였지.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피식 난다. 참으로 미안했네 모두들.
"모유 수유, 그거 꼭 해야 되는 거야?"로 생각이 바뀌고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제야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지 아들 먹인다고 모유를 주겠다고 씨름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거 좀 편하게 해 주려고 그렇게도 분유를 타서 아이를 안아 먹이셨다는 것을. 방해꾼 엄마가 아니라 딸을 사랑하는 엄마였을 뿐이었다는 것을.
말을 듣지 않는 자식에서 엄마들이 하는 말이 있지. "너 같은 거 꼭 낳아서 길러봐라." 이는 만고의 진리 아닐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기 전에는 몰랐다. 그게 부모의 마음인 것을.
아이를 초산하는 엄마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책에서 말하는 육아법, 카페에서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육아법, 모유수유 애찬론, 워킹맘은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재단하는 말들이다. 안아키는 또 얼마나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울렸는가. 우리가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 가치에 우리를 내던지며 살고 있는지를 정신 차리고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들은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준다. 나쁜 엄마라고 여기게 만든다. 모유수유를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될 경우들을 대비해 놓아야했다. 여동생은 수면 교육이 잘 되지 않는 조카 때문에 고생을 어마어마하게 했다. 모범답안은 우리에게 가이드를 제시해 주어서 고맙지만, 케바케가 난무하는 육아 월드에서는 그게 안된다고 좌절하지 말고 항상 차선책도 생각하자. 사실 육아는 전쟁이라 이런 여유를 가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독박 육아는 위험하다. 감정적으로도 고립되어 힘이 들고, 정답이라고 생각한 육아서대로 육아가 되지 않으면 죄책감과 못난 엄마 콤플렉스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것 저것 다 사지 말아요. 아이는 엄마가 필요해요.
그런 독박 육아의 사각지대에 놓인 초보 엄마들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일하려고 하는 엄마에게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 만 5세 때까지는 엄마가 집에서 키워야 된다고 하는 사람, 혹은 여자 연봉 6천이 아니면 집에서 살림하는 게 낫다는 사람, 사정도 모르면서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으로 재단하는 사람, 요즘 엄마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아이를 데리고 카페는 왜 가는 거냐는사람.본인의 경험치로 세상을 바라보고 간섭하느라 바쁘다. 쉽지 않은 육아 전쟁터에서 그런 말들은 준 폭탄급이다. "당신이 아는 세계가 다가 아니에요. 당신의 그 알을 좀 깨부수고 나오십시오.다른 이야기도 있을 수 있는 세계로 걸어 나오십시오."
유행에 뒤지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육아로 잘못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엄마들에게 고한다. 아니요, 유행 따라가는 육아, 남들 사니까 다 사야 되는 육아용품, 산으로 가는 담론들에 나를 가두어 막지 마십시오. 아이와 내가 1대 1로 눈을 맞추며 오늘도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사실 그것으로 충분한 겁니다.그러니까 모유 수유, 수면 교육에 좀 실패하면 어때요. 당신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하고 전부인 세계거든요, 당신 아이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