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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Jul 04. 2019

내 아이는 태블릿을 하루에 몇 시간 볼까

엄마는 태블릿이 편하거나 불편하거나

첫째 J 만 2.5세쯤이 됐을 때 내 핸드폰으로 파닉스, shapes, 동물들, 핑크퐁의 전래동화 영어 버전 등을 자주 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프리스쿨에 가는 시간은 교통 체증 때문에 15분 거리는 1시간 거리였고 뒷자리에서 심심한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태블릿을 쥐어주고야 말았다. 그 뒤로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가는 날이면 늘 아이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편했다.


이제는 차 안에서 태블릿을 보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서 만난 아이 친구의 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책을 가지고 내리자 어떻게 차 안에서 태블릿이 아닌 책을 보냐며 물었다.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갔을 때 캐나다인 친구네 가족을 만났다. 우리는 부산으로 놀러 온 그들과 바다가 훤히 보이는 식당에서 만났다. 두 딸과 그들의 부모까지 함께였다. 우리는 음식을 시켰고 늘 하던 대로 심심해하던 J에게 태블릿을 쥐어주었다. 아무 의심과 자각 없이 늘 하던 대로 했던 우리의 행동은 친구 가족에게 작은 파장을 가져왔다. 친구의 두 딸은 그림 그리기와 책을 보는 것을 하다 J가 요란한 동영상 노래를 듣는 것을 보고 동요되기 시작했다. 내 친구 로라는 두 딸에게 안된다는 말을 하였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태블릿에서 나오는 소리와 영상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도 남았다. 급기야 두 딸은 무서운 로라의 지시에 따르지 않다가 밖으로 불려 가 혼쭐이 나야만 했고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 뒤로 이 문제를 좀 심각하게 보고 대안을 찾아야겠다 생각했지만 게으르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엄마는 아이 손에 태블릿을 쥐어주기 일상 다반사였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더 빈번했으면 빈번했지 덜하지는 않았고 점점 엄마 핸드폰 집착증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3여 년 전쯤, 수시로 태블릿을 보겠다는 아이와 기싸움이 시작됐고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공유했다. 페이스북 친구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 추천, 어떤 이들은 유럽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나 추천 물들을 공유 해주었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방법은, 주중에 태블릿 사용 금지, 주말에 한 시간씩 사용하는 것이었다. 과연 가능할까 나부터 불안했다. 한 시간만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이외에, 뭔가 분명하고 제한적인 조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제안했다.


"J야, 앞으로 태블릿은 토요일에 1시간, 일요일에 1시간만 할 거야. 평소 때는 태블릿 못 써. 그리고 네 전용 태블릿을 사 줄게. 게임은 뭘 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겠지만 네가 잘 생각해서 골라봐."


아이는 생각 외로 약속을 잘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말 1시간 후에 스스로 태블릿을 끌 것인가는 의문이었고 대안이 필요했다. 한 선배는 그런 내 질문에 자세한 답변을 적어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첫 시도에 예상했던 문제가 터졌다. 선배의 조언을 참고해서 이렇게 말했다.


"J야, 1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태블릿을 꺼 주렴. (그래도 계속했다) 기분 좋게 썼으니 기분 좋게 끄자. 그래야 다음번에도 약속대로 엄마가 태블릿 할 수 있게 해 줄 거야."


거짓말처럼 아이는 기분 좋게 게임을 종료했다. 그리고 주중에는 태블릿을 전혀 찾지 않게 됐고, 식당에서도 태블릿에 중독된 아이처럼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 방법은 내 경험으로는 만 7세 이하까지좋은 듯하다. 물론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한 시간으로 성에 안 찰 수도 있으니(둘째 S가 그렇다) 아이를 잘 관찰해보면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과 시간 등의 디테일은 아이 엄마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가끔 약속 장소에 혹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가 방대한 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은 친구의 태블릿 사용에 이내 쉽게 동요된다. 그 부분까지는 친구 로라처럼 단호하게 교육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부분도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모든 아이의 디테일한 생활 방식은 부모의 생각하기와 아이와의 조율, 그리고 약속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다.


무조건적이고 비상식적인 강제는 4차 혁명시대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어려워졌다.

 

요즘 큰 아이가 조금 더 커가니(J는 만 8세, 한국 나이로 9세다) 여러 이유로 태블릿을 가까이할 경우가 있다. 숙제를 한다거나 solar system 노래를 듣고 싶거나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내용 등을 보고 싶어 하는 경우가 왕왕 생겼다.


즉, 더 구체적인 상의와 약속이 생겨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solar system에 대한 노래를 듣고 본 내용을 짧게 리뷰해준다는 식의 조건 말이다. 오늘 아침엔 왜 Pluto(명왕성)solar system에서 제외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빠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아들의 의견 제시와 우리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기특하네' 등의 동의와 짧은 칭찬으로 끝났다.


영상이나 정보 등을 소비만 하고 끝내지 않도록 함께 보며 질문을 하거나 방법을 권해보거나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아이의 성향에 맞게 말이다.


부모가 게으르지 않을수록, 알면 알수록, 아이는 제한이 있는 틀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선택하고 즐거워 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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