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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Aug 23. 2019

잔꾀가 주는 행복

풍부한 지혜, 남다른 사고력


최근 알게 된 어머니 또래 나이 지긋하신 분(이하 L 여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시며 이주의 삶을 사셨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과 모험심이 어릴 적부터 남달리 넘쳐나셨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현재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 회장님 비서로 근무 중이다. L 여사님은 현재 19년 정도 차이 나는 막둥이 둘째를 시 먼 나라 자메이카에서 키우고 계시다. (둘째 아이의 고등 학창 시절을 보내기 위한 곳으로 자메이카가 당첨된 것. 왜요?라고 물으신다면 그분의 잔꾀만 알고 있을 비밀일 .) 첫째를 키우실 땐 파리에서 사시다가 런던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다. 첫째 아들은 그런 국제적인 감각과 탁월함을 잘 성장시켜 지금의 그가 되었다. 불어와 영어를 잘 구사한다고.


만날수록 그분의 잔꾀에 감복하며 어떻게 하면 나도 그 비밀스러운 지혜들을 좀 배워 활용해볼까 그분을 사모했었더랬다. 그래서 커피 타임도 가져보고 식사도 몇 번 했다. 만날수록 그분의 잔꾀에 박장대소하며 머리에 금이 많이 가셨을 거라는 둥, 지혜라는 좋은 표현 대신 막 잔꾀가 장난이 아니시다고  예의에 벗어난 이야기도 했었다. 이런 말에도 너그럽게 웃어주시며 더욱 잔꾀 나누기에 열심이셨다.




잔꾀 1. 양파 반으로 나누는 방법

한참 요리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러 잔꾀들을 공급해 주셨다. 그중 하나가 양파 반으로 자르기. 양파를 다 깐 다음 썰기를 하기 위해서는 반토막을 내야 한다. 그때 양파의 정 중앙을 보통 겨냥하는데 L 여사님에 따르면 정중앙은 초보들이나 하는 거라는 거다. 살짝 꼭지를 벗겨나게 반토막을 내면 꼭 부분을 두 번 잘라내지 않아도 된다고 비법을 알려주셨다. 시간 절약, 손목 사용 절약.


잔꾀 2. 더운 날 리하는 방법

막둥이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계신 L 여사님은 그 누구 보다도 영양소와 요리에 대해서라면 전문가시다. 그런 그녀가 자메이카로 이주해 오더니 더운 날씨에 면 팬티도 덥다며 내 오래된 낡은 실크 팬티를 탐내시더니 급기야 요리를 하시는 방법을 바꾸셨다. 밑반찬 및 온갖 요리는 새벽-아침 시간에 한꺼번에 해 두시고 한번 먹을 분량대로 나누어 담아 보관을 하신다는 거였다. 우와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우린 다시 한번 탄복하였다. 잔꾀 못지않은 부지런함까지!


잔꾀 3. 더운 날  해소 방법

낮 온도 40도를 찍어대던 7월 어느 날, 역시 우리의 대화 주제는 폭염이었다. 그런 날 차를 타고 꽉 막히는 차도를 거북이걸음으로 가다 보면 이 더위에 다들 왜 차를 타고 나와 이 고생인가 싶어 날씨 탓을 해보기도 하고 애꿎은 일상을 탓해보기도 다. 그러던 어느 날, L 여사님께서 그런 날은 망고와 우유를 섞어 아이들을 먹여야 된다고 하셨다. 잔꾀 여왕님의 말씀을 그냥 넘기기가 아쉬워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는 난 그 날부터 망고&우유 조합에 나의 더위를 맡겼다. 갈증이 나면 얼음물만 마셨는데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란... 망고와 우유를 섞어 반 컵 정도 마셨더니 갈증이 싸악 사라지는 것 아닌가. 우와 5년간 살았는데 나 이제 이 맛을 알게 된 거야? 이 놀라운 깨달음을 설파하는데 L 여사님께서 그러신다. 망고는 5대 영양소가 다 있어서 애들 간식으로 정말 좋고 가끔 바나나도 얼려두면 좋아. 우유도 갈증에 좋은 음료라고. 아는 것과 실제로 해 보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망고 천국인 나라에서 망고 맛과 효능(이쯤이면 효능이다)을 체류 끄트머리에 즐겼다. 망고는 깍둑썰기 해서 무조건 냉동실행!


잔꾀 4. 밥을 맛있게 먹게 하는 방법

지인이 L 여사님댁을 방문했단다. 저녁 시간이 되어 얼른 아이 밥을 차리러 가야 된다는 지인에게 L 여사님은 "잠깐, 자기 저녁 먹고 가."라고 하셨단다. 이유는 아이 밥 차리는데 배고프면 안 된다는 거. 친정엄마 같은 이 말씀에 지인은 마음이 녹았고 대접받는 밥 한상이 보약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밥은 심지어 맛있었는데. 그 이유는 밥과 반찬을 아주 조금씩 담으셨기 때문이란다. 맛있는 반찬을 조금씩 맛깔스럽게 담아 주셨는데 그 밥이 정말 달고 맛있었다고. 엄마 멘트와 정갈하게 담긴 한상, 밥을 맛있게 드셨단다. L 여사님은 많은 반찬을 만들어도 양을 조금씩 담는 것이 입맛을 돋우는데 좋다고 하셨다. 물론 식사량이 많은 가족이 있다면 해당되지 않을 잔꾀지만 말이다. (어떤 분이 자기에겐 해당 안된다고 잔꾀만큼은 비판하셨다.)


잔꾀 5. 베쓰 타월 세탁하는 방법

하루는 지인이 나에 요즘 무슨 세제를 쓰냐고 물었다. 얼마 전 장에서 만난 아들이 수영 후 타월을 둘렀는데 좋은 냄새가 났다고 하면서 말이다. 수건을 오래 쓰다 보면 처음의 프레시 함이 떨어진다. 나는 이럴 때 세탁기 안에 세제를 넣고 식초(요리용이 아닌 대용량 저렴이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넣어 세탁다. 실 세제는 바꾸지 않았다. 다만 세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보조제를 추가했을 뿐이다. 이건 내 머리에서 나온 잔꾀인데 나름 살림꾼 지인분이 좋은 생각이라며 탄복하셨다. (전문 살림꾼에 비하자면 뭐 이건 새족지혈 아니겠는가. 구연산, 베이킹소다 등 한국의 세제 보조제들은 얼마나 좋은지. 외국은 그런 제품들이 우리나라만큼 많지도 인기 있지도 않다.)


잔꾀 6. 아이와 비행 잘하는 방법

장장 30여 시간의 긴 비행시간을 앞두고 L 여사님은 다시 한번 잔꾀 기술을 선보이셨다. 파우치 하나를 선물해 주신 것. 파우치 안에는 아이 3명 분량의 여러 손놀이를 할 수 있는 제품이 담겨 있었다.


세트 1) 도우 세트 (부피 차지하는 플레이도우 같은 건 잔꾀가 아니다, 최대한 부피를 덜 차지하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세트 2) 팽이 (가볍고 작아야 한다)

세트 3) 구슬 미로 장난감

세트 4) 물에 담그면 커지는 색구슬


세트 1에서 4를 보고 별거 없네 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파우치를 쓰는 방법에 있다. 파우치를 쓰는 비결은 아이들의 눈에 절대 띄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이 지겨워 온몸을 비그 순간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비행기 안에서 비행이 시작하고 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온갖 종류의 장난감, 책 등을 한꺼번에 내놓고 놀게 하는데 아이들은 이내 싫증을 내고 주리를 틀기 시작해서 장거리 비행엔 썩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래서 파우치도 비밀이고 거기 안에서 나와야 할 물건들은 잔꾀를 동원해 조금씩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과 장기 비행하기 위한 팁들을 모아 글을 한 번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보통 한번 하면 30시간씩 했었고 그것도 딱 1번의 국제비행을 제외하면 나 혼자 아이 하나 혹은 둘을 감당했다. 이 정도면 슈퍼 파월? 이란다, 친청 아빠가 이번 여행을 통해 느끼셨다며 나의 독함을 설파하셨다.)


비행을 2시간 남기고 둘째는 도우로 코끼리를 만들었다. 역시 굿 초이스, 굿 타이밍!




오늘 아들이 국어 문제를 풀고 있는데 잔꾀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답을 잔꾀로 잘 적어서 그 뜻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아들이 대답하기를 잔꾀는 "다시 질문을 하는 거야, 원래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엥? 뭣이라, 하고 아들이 읽었을 관련 책을 떠올려 보니, '꾀 많은 토끼' 떠올랐다. 꾀 많은 토끼는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 준 선비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과연 사람이 구덩이를 팠으니 사람인 선비를 잡아먹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에 토끼가 묻는다. "아, 정말 헷갈리네요. 그래서 처음에 누가 구덩이에 빠져있었다고요?" 그리고는 답답한 호랑이는 토끼를 이해시키기 위해 구덩이에 다시 걸어 들어간다. 토끼의 잔꾀가 선비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고 보니 토끼의 잔꾀는 질문을 함으로 토끼가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냈다.


어라, 어부가 꾀를 내었는데 질문한다! (출처: 아들의 국어 공부책)


얼마 전에 읽은 유대인 상인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한 유대인이 돈을 벌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 전재산을 가지고 며칠을 기다려야 했는데 돈을 도둑맞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고민하다 돈을 사람이 없는 곳에 묻었다. 며칠 후 돌아와 보니 돈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졌다. 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무심코 머리를 들보니 멀리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그 집주인이 땅에 돈을 묻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인은 고민을 하다 집주인을 찾아가서 말했다. "당신을 뵈니 명하신 분 같습니다.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제 청을 들어주시겠습니까?" 흔쾌히 청을 들어주겠다고 한 집주인에게 상인은 말했다. "장사 때문에 타지에서 온 상인입니다. 제게 돈 주머니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금화 800개가, 다른 하나는 500개가 들어 있습니다. 500개가 든 주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잘 묻어두었는데, 다른 주머니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좋은 방안이 있을까요?" 그러자 집주인이 말했다. "제 생각에는 두 주머니를 함께 묻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누구도 믿기 힘들 테니까요." 상인이 떠나자마자 집주인은 예전에 훔친 돈을 다시 묻어두었고 나머지 주머니도 함께 훔쳐갈 생각이었지만 상인은 집주인이 가버리자마자 즉시 돈주머니를 파내어 줄행랑을 쳤다. (참고 도서 - 유대인의 생각 공부 / 쑤린 지음, 마일스톤) 이래서 유대인은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L 여사님께 배운 사소한 잔꾀들은 유대인의 상인에 준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에게 많은 점을 시사했다. 풍부한 지혜와 남다른 사고력을 갖춘 사람은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로 풍성한 결과를 누린다. 개인적으로 한국으로 막 이주해 와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해야 되는 시점에 아이들의 학교를 물색해야 되고,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을 교육할지도 고민해야 되는 때다. 그 외에 정착하기 위한 많은 이슈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L 여사님이나 유대인의 방식을 본받아 질문하고 모색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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