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었다. 젖을 물리고 분유를 탔다. 그러다 아이 이유식을 시작했고 5대 영양소와 제철 야채 먹일 방법을 뒤지느라 맘스카페 우수 회원이 되었다. 아이의 편식과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아이가 아픈 날에는 죽을 쑤었다. 입덧에서부터였을까.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먹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남편과 아이들의 밥상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정성껏 만든 이유식을 밀어내는 입 짧은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아침을 먹으며 저녁 메뉴를 묻는 아이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10년 동안 밥과 씨름을 했다.
해외생활 7년. 엄마와 멀어진 거리만큼 집밥과도 멀어졌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어린 시절 한 계절에 늘 올라오던 멸치 우거지 쌈밥이 그리웠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그 흔한 참치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엄마 밥을 아예 못 먹은 것은 아니었다. 간혹 새댁이 해외에서 보내는 임신기가 좀 그래 보였는지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해 주시고는 했다. 그 밥이 왜 그렇게 달고 맛이 있던지. 그 대답을 언젠가 듣고 말았다.
너와 나에게 오늘 필요한 것은 우리네 식탁에서 만나는 사랑이다. (사진 1)
엄마가 해주는 밥은 보약
어느 날, 나이가 지긋하신 엄마 또래 지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릴 적 받아먹던 엄마 밥이 보약이야. 누가 별 거 아니라도 그렇게 대접해 주는 밥 한 공기가 정말 보약이지."
보약 1) 감자탕
둘째를 임신하고 감자탕이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거주했던 곳은 감자탕의 '감'도 모르는 문화라 장 보러 가도 그런 류의 고기 부위는 없다. 가끔 위로받으러 가던 한인 식당도 불명예스럽게 폐업을 했고, 첫째 아이를 케어하며 음식을 만들기는 엄두가 나지 않던 차였다. 한 분께서 "임신해서 힘들지?"라며 먹고 싶은 음식이 없냐고 하셨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던가, 임신한 엄마는 이토록당당한 걸까. "감자탕이요."이라는 말을 뱉은 나는 이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보글 보글 따뜻한 감자탕은 감동의 식탁이었다. (사진 2)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분께서 전화를 하셨다. 댁으로 가보니 어제부터 불 위에 올려져 오랜 시간 잘 익은 감자탕이 눈 앞에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이 입 안을 감쌌다. 우리가 흔히 해 먹는 고기 부위를 구하기 힘든 곳에서 폭립으로 만든 감자탕이었다. 그리고 정성껏 차려진 식탁에 초대된 나는 그 음식을 마음 푹 놓고 맛있게도 먹었다.그냥 맛있게 먹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든든한 보약 같은 한 끼였다.
보약 2) 김말이
김말이는 한국에서는 길거리 분식집에서나 먹는 것이었다. 김말이가 한식이냐 따지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난 김말이는 나에겐 그것 이상이었다. 한 모임의 멤버가 막 이사를 했고 마침 생일이어서 다 함께 모인 자리였다. 막 이사한 집에는 전기도 다 갖춰져있지 않았고 그날 하필이면 물도 끊겼지만, 우리는 다 함께 모여 그분을 위해 노래했고 음식 한 가지씩을 마련해 축복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분께서 김말이를 손수 만들어오셨다. 김말이라는 말에 다들 놀랬고, 그것을 한번 더 튀겨 먹을 요량으로 한 번만 튀겨 가져왔던 그 눅눅한 김말이는 단전으로 바삭해지는 변신을 하지 못했지만, 금세 동이 났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김말이 제작자께서는 꽤 놀라셨다. 한국에서는 쳐다도 보지 않을 눅눅한 김말이를 맛있다며 먹는 우리가 한편으로는 애처롭고 한편으로 고맙다 하셨다.눅눅했지만 그건 정말로 김말이였다!
눅눅한 김말이는 그리움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사진 3)
보약 3) 갈비탕
둘째의 출산을 앞두고 한국에 가기 전 날이었다.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다. 지인 중 한 분이 손수 만든 갈비탕을 냄비채 가지고 집으로 찾아오셨다. 비행기 타기 전에 든든하게 갈비탕을 먹어야 오랜 비행을 견딜 수 있을 거라며 하루 종일 푹 고았다고 하셨다. 온 가족이 식탁을 차리고 당면이 적당하게 잘 익은 갈비탕을 후루룩. 따뜻한 갈비탕은 몸과 마음을 녹이고 '장거리 비행이 별거냐 지구 한 바퀴도 돌겠구먼.' 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음식을 만들면서 하셨을 응원 소리도, 올려드렸을 기도 소리도 함께 듣고 먹었다. 임신한 몸으로 세 살짜리 아들과 하는 장시간 비행은 또 다른 꽤나 멋진 비행이 될 거란 마음의 여유와 위로도 덤으로 받았다.
갈비탕은 응원의 식탁이었다. 잘 다녀와! (사진 4)
보약 4) 닭볶음탕
얼마 전 저녁을 먹었냐는 카톡 문자에 저녁을 스킵하려 한다는 동네 동생은 빅 런치(?)로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그걸 먹고 저녁을 대충 넘기려는 것이 살짝 맘이 쓰였다. 대접할 수 있는 것은 다진 마늘과 파를 올린 닭볶음탕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이 다였지만 그녀는 그 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말이의 주인공께서는 '엄마 밥이 바로 보약'이라는 명문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잠깐 우리 집으로 올래? 변변찮은 식탁을 고맙게 받아준 그녀가 더 고마웠다. (사진 5)
주고받는 식탁에는 힐링 요정이 분주하다. 우리 마음을 왔다갔다하며 이어 주느라.
이렇게 우리는 위로와 기쁨의 식탁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다. 우린 지금 엄마가 되었고 보약을 만드는 당사자들이 되었지만, 결국 우리는 또 엄마 밥을 찾고 그것을 공급받아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 밥을 여기저기서 먹은 나는 아직도 그 밥의 맛을 잊지 못한다. 감자탕, 김말이, 갈비탕은 바로 나에게 보약이었고 치료제였다. 그리고 그렇게도 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나이 서른과 마흔에도 엄마 밥을 잘도 받아먹었다.그리고 지금은 나도 누군가에게 부족하나마 그런 식탁 차려 대접할 수 있게 됐으니 이렇게 주고받는 식탁덕분에기분이 좋다.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이 기쁨이 오늘도 풍성히 번져나가길.
사진 1 출처: gettyimages.com
사진 2-5 출처: 축복받은 유전자 완소남매의 엄마표 먹거리 (닭볶음탕 레시피는 최고입니다. 추천하는 레시피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