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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Jun 30. 2019

나는 왜 남 탓을 하는가

편견과 쉽게 일반화하는 문화에 가린 나의 눈

*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우리는 흔히들 이런 말을 하거나 자주 듣고는 한다. "나는 첫째로 태어나서 부모님 눈치 보며 자라서 지금 내 성격이...", "나는 막내로 태어나서 온갖 관심과 귀여움을 한 몸에 독차지해서 그래서 내 성격은 나 밖에 모르는 성격이야...", "난 둘째로 태어나서 위로는 첫째에게 밑으로는 막내에게 뺏긴 관심을 만회하려고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라니까..." 등등. 우리는 우리의 자신됨을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하고는 하지.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고 최근까지도 그러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은(그녀는 둘째로 태어났다) 매일 그녀의 첫째와 둘째를 비교하며 첫째들은 자존심이 세고 고집불통이며 양보할 줄 모른다고 했고, 둘째는 형이랑 안 부딪히려고 아예 자리를 피하고 혼자 놀기 좋아하고 손 가지 않는 아이라 둘째는 역시라며 미소를 머금고 칭찬했다. 첫째로 태어난 나는 듣기가 좀 거북했다. 모든 첫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인 듯한, 둘째들은 뭐든지 혼자 척척 잘하는 사람이라는 일반화 때문이었다.


집에서 보통 자녀가 특이한 행동을 할 때, 부모는 "이 아이는 누굴 닮아서 이러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 집에도 두 아이가 같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많이 다르다. 생긴 것도, 식성도, 성격도 다르다. 타고난 고유의 personality 때문이다. 아이의 특성이 부모의 누구를 닮아서라 말하지 마시라. 어떤 부분이 설령 닮았더라도 그건 애초 그 아이의 것이었다. 같이 살면 삶의 방식이 안 닮을 수는 없겠지. 식사 시간, 먹는 음식, 습관이나 취미 등은 오랜 시간 가족들과 해온 것으로 굳혀지겠지만 그 아이의 고유성은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 그 personality는 하늘에서 가지고 태어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고유한 방식이 된다.


평소 어떤 일이 발생할 경우, 보통 나는 남 탓을 하지는 않지만 내가 살아온 성장과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남 탓, 환경 탓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첫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의 기대 때문에, 동생들 때문에"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니 나는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그 연민이 나를 건강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렸다. 그게 아니고 나는 그냥 나라서 그런 상황 속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 여태껏 살아온 것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로 걸어온 것. 드라마에서 이 매너리즘과 상처에 빠진 이들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내 영어 선생님 베니스와의 수업에서 내 어린 시절 이야기와 나와 동생들의 성격 이야기를 듣던 베니스가 나에게 물었다. "너 정말 네가 첫째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니?"라고 말이다. 그녀는 쌍둥이로 태어난 트윈 시스터다. 모습은 닮았지만 성격은 딴판이란다. 본인의 시스터는 혼자서 척척 잘하는 스타일이고 욕심도 많은 편인 반면, 본인은 누가 옆에서 칭찬하거나 북돋아 주는 역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그런 성격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의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물론 그렇겠지만' 하는 생각이었다.


며칠 뒤, 친구(얘는 스페인 사람이다)와의 대화 중에 같은 주제가 나왔다. 우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 아이들의 성격에 대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 와중에 나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내 남 탓 매너리즘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둘째로 태어났는데, 태어나보니 언니가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꼭 해야만 하는 그런 언니였어. 그렇지만 난 언니랑 딴판이었어.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뜻밖의 둘째의 생활기에 내 고정관념은 산산이 부서지고야 말았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언니는 그런 사람이고 그냥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 깨닫고 나서 보니, '우매한 생각에 빠져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극적인 사고후회스러웠다.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답습하고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검증 없이 내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가 많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조금 먼발치에서 검증하는 시간을 가지면 뭔가 생각이 더 복잡해지고 어려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말 유의미한 배움이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생각하는 습관이 사라진다면, 생각들을 의심 없이 자기 논리에 갇혀 열심히 설파하는 사람이 되고 말겠지. 러니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 critical thinking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보다 나는 내가 가진 틀을 깨지 못하거든.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은 거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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