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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Sep 10. 2019

엄마의 추석과 나의 추석은 많이 다르다

시댁 문화와 밀접한 추석 나기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추석

그리고 나의 것


친정 엄마는 기독교 3대 집안의 장녀로 결혼 당시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아빠는 종교가 없고 유교와 불교 사이 어디쯤 가정의 장남으로 결혼 당시 작은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셨다. 엄마는 아빠의 여동생의 동료인 것이 연인이 되어 아빠를 알게 되었고 정식으로 선을 보고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엄마 아빠는 한 쌍의 아름다운 원앙 같았다. (신혼 여행 사진을 찾지 못해 원앙사진으로 갈음한다.)


결혼은 엄마의 주체적인 결정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많이 달서 외할머니는 결혼을 반대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부유한 남자들과의 혼인을 거절하고 선택한 남자가 우리 아빠였다. 할머니는 얼굴이 밥 먹여주냐고 엄마를 나무라셨다고 한다. (사실 아빠는 얼굴보다 마음이 멋지신데..)


제사를 몰랐던 엄마, 가난을 몰랐던 엄마는 오로지 아빠만 보고 시집을 왔다. 시집와서 겪었던 문화 차이는 아마 짐작이 불가하지만 등으로 들은 이야기와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추석을 재구성해서 쓴다.


완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25년 전 엄마의 추석


오늘은 추석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는 추석 전날, 그러니까 어제 할머니 집으로 떠났다. 미리 제사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 세 남매와 아빠는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할머니 집으로 갔다. 전 날 음식 준비를 끝내고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시집 쪽방에서 하룻밤을 잔 엄마. 추석 당일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엄마는 머리가 산발이 되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제사상 준비로 분주하다. 할머니는 제사상 때문에 좀 예민하신 건지 우리에게 준비해 놓은 제사 음식에 손을 대지 말라고 엄하게 말씀하시고 엄마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신다. 못난 음식들만 아이들 먹이라고. .


길고 길게만 느껴지는 차례가 끝나고 음복을 한다고 둘러앉았다. 오늘 나는 할아버지 예전 모습이 기억나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는 우리를 무릎에 앉혀놓고 예뻐해 주신 것이 유독 오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음복이 끝나자 제사상을 치우고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한 상 가득 식사를 다시 차려내는 엄마는 잠시도 앉아 쉴 틈이 없다. 엄마가 조금 신경 쓰였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 2시경이 되니 먼 친척분 몇 분이 간간히 인사차 오신다. 엄마는 또 상을 차려 내신다. 몇 팀의 간식 겸 술상을 차리고 나니, 이제 고모들이 하나, 둘, 들이닥친다. 항상 그렇지만, 제일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큰 고모의 등장이다. 할머니는 큰 딸과 큰 사위 왔다고 상 차리기에 더욱 신경을 쓰시고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큰 며느리 엄마에게 전달된다.


오늘은 엄마도 좀 일찍 친정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고모가 오기 전에 할머니에게 "오늘 엄마 외갓에 일찍 가도 돼요?"라고 이야기했더니 할머니가 좀 많이 언짢으셨나 보다. "애 교육을 왜 저 모양으로 시키냐, 네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것 아니냐" 등의 날카로운 이 엄마를 향했다. 보기 좋게 묵살당한 의 제안은 오히려 우리들 마음에 더 깊은 상처만 남겼다. 


큰 고모가 왔다. 늘 위풍당당하다. 고모부는 이상하게 정이 안 간다. 권위적인 고모부는 영 나와 맞지 않다. 가끔씩 남동생에게 고추를 따먹을 거라는 농이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치가 떨다. '그런 농담은 왜 하는 거야. 아, 얼른 외갓집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다. 저녁 늦게 까지 하루 종일 앉지도 못하고 우리 엄마만 너무 고하잖아. 속상하다.



10년 전 나의 추석


오늘은 시댁에 가는 날이다. 결혼 전에 시댁에 인사를 가면 늘 체해서 힘들었는데 오늘은 좀 괜찮아야 될 텐데 걱정이다. 잘해주시는데도 시댁은 어려운지 늘 체한다.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오늘은 철판구이를 해 먹을 거라며 채소 손질을 부탁하셨다. 사실 받아보니 채소는 다 손질되어 있었다. 그냥 도마 위에 놓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만 하면 되었다. 아가씨네가 왔다. 함께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아가씨가 주방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이렇게 결혼하고 첫 추석은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끝났다.




추석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



삼촌이 형제 중 막내라 막내며느리가 들어오기 전까지 28년을 홀로 이 일을 감당하신 엄마. 시대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시댁의 문화와 밀접한 추석 나기는 이 땅의 수많은 며느리에게 스트레스인가 보다. 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이제는 시댁 명절 가사에서 벗어난 엄마에게 애쓰셨다고 위로드리고 싶다. 그리고 벌써 장을 보고 명절을 치를 준비를 하는 이 땅의 모든 며느리에게도.


운 좋게도 신세대 시어머니를 만나 시집살이를 모르고 지금껏 살고 있다. 오랜 해외살이로 이마저도 유일한 명절 에피소드다. 올해는 짧게 부산 여행이라도 가려했는데 아버님께서 여러 검사로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으시단다. 얼른 쾌차하신 후 개천절 즈음 시월에나 뵙기로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오랜만의 명절이니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행복할 계획이다. 추석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는 '웃어보자' 어디쯤으로 정해 보면 어떨까.


어떤 상황에도 웃어보자.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메인 이미지 출처: 떡보의 하루 홈페이지
그 외: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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