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후메일 한 통이 왔다. 볼 일이 있어 밖에 있던 차에 리스트만 보고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메일을 보낸 친구는 첫째 아들의 친구 K의 엄마 록산 Roxanne이었다. 확인을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왓쌉(whatsapp, 카톡 같은 챗 앱이다)으로 같은 내용을 다시 보내왔다. 뭘 보냈길래 두 번씩이나 확인하는 걸까 하며 동영상을 열어보는데,말문이 막혔다.
...... 헉! 이거 뭐야?!
동영상은 3분45초짜리.친구들이 우리와의 추억을 남기려고 영상을 만든것이었다.
첫째 아들은 2013년만 3세가 되었을 즈음부터 올해까지 쭉 같은 학교를 다녔다. 동생S의 탄생 후 병원에 다녀야 했기에 1년간의 한국 생활, 그 기간을 제외하면 5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닌 것. 한국으로 치자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가 다 있는 학교를 다녔다.국제학교가 아닌, 로컬 학교 중 우리와 철학이 맞고 말이 통하는 곳을 선택해서 아이를 보냈다. 국제학교에 보내지 않은 걸 '보냈어야 했나'하며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지역 학교에서 자메이카 친구들과 섞이며 놀고 공부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학교는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다. 학교는늘 우리 가족을 케어하는 편이었고(물론 나도 학교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부모 중 한 명이었다), 가끔 우리처럼 다른 국적의 학생들도 다녔으며 선생님의 수준도 좋은 편이었다. 학교는 어린 학생들부터 전 학년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더 많은 인종의 친구들과 섞이게 해주고 싶어 국제학교를 많이들 선택하고는 하는데, 우리 집 이웃은 온통 국제학교에 다니는 편이어서 매일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과 어울렸으니 이 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다.
The best teachers, parents and friends
친구 록산은 지난5여 년의세월 동안 찍어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다 뒤진 모양이다. 하루는 "남경, J가 몇 년도부터 학교에 다녔지?"라고 물어와서 2013년이라고 답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때부터의 모든 기록을 찾아보았는지,아이가 처음 입학한 날의 사진과 첫 운동회의 동영상도 들어가 있었다.'아, 저렇게 작은 아이가 열심히도 달리네..'
그리고 학교 교장부터 아이들과 학부모, 담임들의 멘트를 녹음해 영상에 입혔다. 깜짝 놀란 것은 담임 한 명은 이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를 간 지 4년이 족히 넘은 선생님의 음성이었다. "Hi, Joel, this is Aunty Riggel." 듣고 있는 말이 믿기지가 않아'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리겔 선생님은 J가 유치원 K2 때 만난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다른 학교로 떠난다는 말에 모두 아쉬워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지금 콜럼비아에서 공부 중인데 그녀는 아이의 유치원 K2 때 리겔과 공동 담임이자 G1 때의 담임이었고 그 후에도 커리큘럼 기획자로 학교에 이바지하며 아들을 돌봐준 매력이 통통 넘치는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멘트를 들으며 아이의 입꼬리는 솟아올랐다.
Speechless...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그 순간은 Speechless의 순간이었다. 록산을 비롯한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감동이라는 바다에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담갔다.그들과의 시간을 잊지 못할 만큼의 감동이 마음을 울렸다.춘프카 작가님의 최근 글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첫째 아이의 유년시절이 여기에 다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중한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다. 그것은 그에게 무엇으로 남을까 기대가 된다.
Love you all.
(친구들에게 한 서툰 감사 표현, 이것 밖에는..) 너희들과 함께 웃고 울던 시간, 그것을 우리 삶에 허락해줘 고마웠어. 그리운 이들이여! 곧 만나자. 그 미소 그대로 간직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