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garden Sep 30. 2019

아이와 함께 한 최악의 비행

유아 동반 비행이 의미하는 것



첫째 아이가 만 7세 때다. 100일 때부터 장거리 비행을 했던 아이는 비행기를 타는데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둘째는 만 4세. 나는 이제 한결 수월해진 시점이 온 것이다. 더군다나 큰 아이는 거의 신경 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만 4세가 되기 전부터 기내에서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고, 혼자서도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보고, 심심하면 다른 놀이 여러 가지를 번갈아 가며 하면서 비행을 해 왔기에 걱정이 없었다.


이 여행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부산에서 출발해 인천을 경유, 14시간 비행을 해서 뉴욕에 도착해 입국심사와 세관 통관을 한 뒤, 또다시 4시간 비행을 더 해야 했던 일정이었다. 그러니까 경유만 3번인 여행을 엄마 혼자 남자아이 2명을 동반하 것이었다. 2킬로는 족히 빠질만한 힘들고 긴 여행 스케줄이긴 했으나 여러 번 해 보았고, 최악을 이미 넘겨봤다 생각한 나는 마음을 조금 놓았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큰 상태였고 말귀를 알아듣는 둘째였기에 더 그랬다. 그리고 태블릿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에 걱정은 훨씬 덜했다.


그런데 문제는 태블릿이었다. 마음을 그냥 놓아버린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나는 비행 전부터 태블릿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사실로 아이들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다음 글에서 쓸 예정인 유아 동반 비행 팁(연령별 유아 동반 비행 노하우) 중에 아주 중요한 점을 간과한 것이다. 바로 아이가 주리를 틀기 전에 비장의 무기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 말이다. 그리고 무제한 태블릿 허용이 부른 대참사였다.


우리의 여정은 이랬다.


들을 준비 되셨어요?


부산에서 아침 7시 인천 국제선과 연결되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우리는 3시 30분쯤 일어났고 4시쯤엔 집을 나와야 했다. 잠자던 아이들은 졸린 눈을 감은채 차를 타고 공항까지 이동했다. 정신을 점점 차리기 시작하면서 기내에서 아이들은 곧바로 태블릿을 요청했다. 졸리고 배고픈 상태, 태블릿이라는 집중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리고 흔들리는 비행기가 함께 합쳐진 결과, 대참사는 곧 일어나고 말았다.


8시에 인천에 도착했다. 다음은 10시 40분 비행기. 비행시간이 꽤 남았다. 뭐라도 먹여야 하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아 아이들이 다시 태블릿을 조금 했고, 뽀로로 놀이터에서 조금 놀고를 반복했다. 첫째를 니 얼굴이 별로다.


나: J야, 어디 안 좋아?
J: 엄마 나 머리가 아파.
나: (헉, 머리가 아프다고? 그거 안 좋은 신호인데...) 알았어, 배고프지? 우리 뭐 좀 먹으러 가자.


하고 이동을 하려는 순간, 아이는 내 직감대로 속에 있던 모든 것을 바닥에 토했다. 거의 물이었다. 빈 속에 멀미를 자주 하던 아이였던지라 얼른 뭐라도 먹자는 생각에 던킨도너츠로 가서 작은 도넛들을 몇 개 먹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보딩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둘째의 유모차를 밀며 작은 캐리어를 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첫째 아이도 아이의 멍키 캐리어를 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린 아이가 둘이 딸린 한부모만 탑승하는 가족이라 앞쪽에 줄을 서 있었는데 그때 2차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 줄 한 복판에서 아이가 먹었었던 도넛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다급해진 승무원들이 몰려왔고 우린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바닥을 치우던 승무원에게도 줄을 서 있던 다른 승객들에게도 참 미안한 일이었다.


다시 한 번 죄송합... ㅠㅠ


승객들이 먼저 비행기에 오르고 아이가 진정이 되고 난 뒤 우리는 탑승했다. 다행히 많이 아픈 것 같지는 않았고 빈속에 자주 하던 멀미처럼 보였기에 나는 비행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It will be fine.


그리고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이는 영 컨디션이 별로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좀 나가는 편인 아이에게 내가 준비해 온 해열제 양은 부족했다. 사실, 해열제는 둘째를 대비한 약이었지 몇 년간 열  번 나지 않았던 첫째에게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승무원에게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타이레놀을 부탁했고 그것을 시간 간격을 두고 먹였다. 손수건에 물을 적셔 아이의 몸을 수시로 닦아 주었다.


자던 아이가 해열제 힘으로 일어나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승무원에게 미뤘던 식사를 요청했다. 배가 고픈지 맛있게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쯤 식사를 했을 때였나, 다시 본인 테이블 위로 와락 토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토를 손으로 받았고 그것을 그릇 에 담아 치우면서 되도록이면 주위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글쎄요, 그런 것도 뭐 힘이라면 네, 맞아요. 그렇습니다.


그런 중에도 내가 이 비행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은 간다.'는 생각과 '나는 할 수 있다.' 정도의 평범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게 비행을 가능하게 했던 정신적인 멘탈이라면 멘탈이다. 사실, 대체 불가능한 임무여서라고 솔직히 말할 수도 있겠고. 그리고 나는 좀 긍정적인 편이고 뭐 좀 힘든 중에도 감사하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다. 



오, 땡큐 갓 1!


온통 열이 나고 멀미를 해대는 첫째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이번에는 둘째 아이가 많이 도와준다. 생각해보니 둘째 나이 만 4세! 그렇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처리할 수 있고, 말도 잘 통하고,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때였다. 그때 머리에 스치는 기억 하나. 둘째가 궁금증 폭발 시즌 만 2세 때 계속 기내 안에서 걸으려고 할 때 첫째 아이가 잘해 준 것이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네가 빚을 갚는구나, 고맙다 둘째야..'


그렇게 아이의 열을 식혀가며 14시간 비행을 긴장하며 했는데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첫째가 뉴욕 공항에 내려서 과연 걸어 줄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아이가 챙겨서 가져온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야만 했다. 나는 둘째의 유모차와 다른 짐들을 신경 써야 했고 더군다나 뉴욕에서는 부친 짐을 모두 한 번 찾아 세관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친 짐은 23kg짜리 6개였다.


땡큐 갓 2!


뉴욕 공항에서 아이는 거짓말처럼 언제 고열이 있었냐는 듯이 걸어주었다. 그것도 자기 짐을 끌고서. 기적 같았다. 참 고마웠다. 그리고 남은 비행은 휴대폰 분실 사건이 있긴 했지만 무난하게 진행됐다. 난 터미널을 옮긴 뒤 놀고 있던 아이들 사이에 앉아 정신없이 머리를 휘저어대며 졸기 시작했다. 부끄럽지 않았냐고? 24시간 가까이 못 자면 그렇게 되던데. 교양이고 품위고 뭐고 아마도 나는 침을 흘려가며 잤을 것이다.


이 엄마도 분명 자고 일어났다.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 울어대서 이 엄마는 얼른 깼을 것이고 자다 눈을 떠서 눈이 부시다. 꼭 이 최악의 비행을 했던 내 모습 그대로 같다.


그러니 유아 동반한 한부모 비행기 탑승자를 보시면.. 차가운 표정 대신 따뜻한 미소 한 번을 보내 주세요. 우리도 정말 울고 싶거든요.. 플리즈....


오늘도 잘자요 아저씨!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이전 10화 영어를 거부하는 아이가 산드라 오를 보고 질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