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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4. 2022

비빔밥

추억을 비벼드립니다

고1 때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유상숙.

고등학생이 되어 이른 새벽부터 차를 타고 타 지역으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새 학년, 반 전체가 낯설었다.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섬.

어느 날 그 새로운 땅에 뚝 떨어진 나.


그러나 어김없이 각자의 촉수가 발동하고 

우리는 주변을 발판 삼아 하나 둘 친구를 만들어 갔다.

아니, 타 지역에서 온 나만 그랬나.


키 순서대로 줄을 섰다.

그리고 그대로 각자의 번호가 되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나는 어떻게든 10번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10번.

난 10번, 상숙이는 9번 

이렇게 키도 고만 고만한 우리는 오순도순 친구가 되었다.


봄이 지나고 우리 반은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아니 내가 잘 어울렸다.

그렇지. 어디 섬에 가도 난 잘 살 수 있는 아이니까.


새벽부터 준비해서 일찌감치 등교하는 나와는 달리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상숙이는 느긋하게 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 상숙이가 말했다.

"아침에 일찍 오지? 7시까지 교실로 와. 그러면 내가 맛있는 비빔밥을 해줄게"

"웬 비빔밥?"

"응. 내 꿈은 식당을 하는 거야. 고깃집. 너한테 맛있는 밥을 만들어 주고 싶어"

상숙이의 꿈은 고깃집 주인이라고 했다.

그 이름도 낯선 고깃집 주인.

"야. 고등학생 꿈이 무슨 고깃집 주인이야"

그러나 상숙이는 사뭇 진지했다.

슬슬 고깃집 주인이 꿈인 상숙이의 비빔밥이 몹시 궁금해졌다.

식당을 연 것도 아닌데 마치 맛 평가라도 하러 달려드는 손님처럼.


이튿날, 7시 전에 도착한 나는 나보다 먼저와 교실 맨 뒤편에서 밥을 비비고 있는 상숙이를 만났다.

커다란 스텐볼에 그 자리에서 부친 계란후라이를 집어넣고 각종 야채로 밥을 석석 비비던 상숙이를.

그리고 우리는 새벽 댓바람부터 어울리지도 않는 교실 뒤편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마치 그곳이 상숙이의 고깃집이었던 것처럼.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슨 맛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식당 하면 내가 꼭 갈게. 너무 맛있다. 고마워"

그저 언젠가는 올 먼 미래에 고깃집의 주인이 되어있는 상숙이를 상상하며

우린 그날의 아침을 즐겁게 먹었다. 

아니 추억을 먹었다.


상숙이는 고깃집 주인이 되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그 아침을 먹었던 내가 고깃집 주인이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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