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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03. 2023

이름에 관하여

동생네 집 다용도실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건물엔 각종 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치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내과, 성형외과... 여기저기로 시선을 옮기니 병원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건물 한 층, 한 호수를 차지하는 병원들. 창문에 박아 놓은 이름을 읽어가니 그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코이젠 이비인후과

빛나리 치과

내안에 내과

페이스 피부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이름이다. 병원 원장들은 어떻게 이름을 지었을까.

콧물 줄줄 흐르는 코 이젠 괜찮아요. 누런 이가 반짝반짝 빛날 겁니다. 내안에 내과 있다. 페이스 off 시켜줄게.라는 뜻일까. 물어보지 않아도 그럴 것 같지만, 한 번쯤은 찾아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려면 어딘가 아프고 불편해야 할까.

이비인후과... 언젠가부터 코가 툭하면 막히고 답답하다. 생전 안 나던 코피가 나올 때도 있다. 코 안쪽 점막 어딘가에 상처가 있는 느낌이 든다.


치과... 치실을 이용한 지가 10년이 다 되어간다.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지만, 가끔 이 사이사이가 욱신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치간 칫솔을 사용하여 쑤셔보기도 한다. 검붉은 피가 며칠 나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다. 나만의 처방을 내리고 치료되길 몇 차례다.


내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어느 날부턴가 명치가 아프다. 한 때는 온갖 절망적인 상상을 하다가 내과로 뛰어간 적이 있다. 친절한 설명을 바랐지만, 정신이 예민한 환자로 취급받고 어떤 검사도 약도 받지 못한 채

더러운 기분으로 씩씩대며 병원 문을 나선 적이 있다. 그날 이후로 그 병원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피부과... 얼굴을 위해 피부과를 다닌 적은 없다. 아 한번 있다. 레이저로 주근깨를 한 번 긁어냈다. 불태워진 주근깨는 일주일 후 까만 깨가 되어 얼굴에서 탈락되었고 그 이후론 나름 자신감 충만해하며 살고 있으니 굳이 얼굴을 위해 피부과를 갈 일이 없게 되었다.


성형외과... 생긴 대로 살라는 말을 내내 듣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을 뜯어고쳐야겠다든지 예뻐지고 싶다던지 하는 생각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생긴 것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세월의 처짐이라는 게 있더라. 나에게 가장 빨리 그 징조를 보인 곳은 눈꺼풀이었다. 이대로 두면 곧 이봉주 님이 될 것 같았다.(죄송합니다^^) 아무리 상상해도 그건 싫었다. 가족에게만 슬쩍 이야기하고 눈꺼풀을 자르기로 결심했다. 성형외과라는 곳은 도저히 발을 들여놓을 수 없어 성형외과전문의가 있는 안과로 향했다. 눈꺼풀을 자르고 한 동안 마비가 와서 괴로웠다.


아파서도 가고 불편해서도 가는 곳, 병원. 재미난 이름의 병원을 보니 굳이 아파야만 가는 곳이 병원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저곳엔 어쩌면 재미난 의사들이 환자의 불편함을 위로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왕 가야 하는 병원이라면 이름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재치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무섭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재잘재잘 얘기하며 몸도 마음도 걱정도 근심도 치료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견서만 써주지 않는다면 언제든 즐거운 마음으로 향하고 싶은 곳. 그런 병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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