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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y 15. 2023

혼자 자려니 무섭다

티비를 보지 않지만 언뜻 눈에 띄면 보는 프로그램이 '나 혼자 산다'이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데도 혼자 사는 그들의 하루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한 번 보면 빠져들게 되는 묘한 프로그램이다.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나는 그들의 집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별 다를 것 없다고 여겨지는 그들의 먹고 자고 노는 모습이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훔쳐보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 건지도...


그러다 그 혹은 그녀에게 잠시 빠지기도 한다. 나만 그들을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왜인지 나만 그들을 알아가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착각이지 착각.


나 혼자 산다를 보며 생긴 로망이 있는데 그건 나만의 방을 갖는 것이다. 결혼한 지 12년이 지나가고 있고 그중 아이와 같이 잔 시간이 10년. 제법 덩치가 커져서 나의 몸무게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아이와 같이 잔다는 건 사실 약간의 고문이다. 땡땡한 다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깔려보니 정신이 차려진달까. 


키가 150 언저리에 있는 우리는 퀸 침대를 가로로 쓰고 있다. 베개를 베고 누우면 발이 튀어나오지만, 그래서 가끔 신화 속의 괴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자기 위해 계속 이 방향을 고집하고 있다. 가끔은 서러운 아이가 한쪽으로 이불을 말고 자는 넉넉한 공간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저쪽 가서 자"


분명 한 침대이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이건 분명한 외침이다. 나 혼자 자고 싶다는 외침. 

혼자 자려고 시도했지만 아이는 끝끝내 그것만은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를 찾아 같이 자려는 아이는 아직은 아이인 모양이니 아무리 지친 엄마라도 밤이 되면 누워야 한다. 내 자리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언제부턴가 작은 계획을 착착 실현해 나가는 중이다. 


우선, 내 방이라고 찜한 그 방에 내 책상을 들여놓았다. 그렇게 해서 공식적으로 나만의 공부방을 만들었다. 한 때 아이의 책상을 끌고 들어와 우리의 공부방이라 이름 지었지만, 이내 쫓아내고 말았다. 너의 자는 방으로. 아이는 몰랐겠지만 엄마의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다. 


나는 이 방, 이 책상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잡다한 것들을 하며 마치 사무실 한 칸을 차려놓은 듯 혼자만의 방을 음미한다. 이제 아이도 남편도 이곳을 내 공간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여기에 슬며시 요가 매트를 하나 깔아 놓았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계획이다. 번듯한 침대나 이부자리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낮잠이라도 오면 어김없이 이 매트 위에서 잔다. 그렇게 아이의 눈에 이곳은 엄마가 자는 곳이라고 인증을 해둔달까. 푹신한 요가매트 위에서의 잠은 의외로 꿀잠을 선물한다. 


아직은 쪽잠자는 고시원 같은 모습이지만 언젠가 번듯한 내 이부자리를 깔 날을 기다리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헤벌쭉 웃음이 난다. 바로 여기라고. 나 혼자 사는 곳을 찍을 곳.


나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가끔은 곤히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그곳으로 간다. 요가매트 위에 몸을 눕히고 작은 무릎이불을 덮으면 남편과 아이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껄껄 웃으며 책을 읽는 재미. 그러다 스르르 눈이 감기는 마법. 


며칠 전, 아이가 잠든 틈을 타 그날도 그 일을 감행했다. 어둠 속을 지나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 더듬거리며 몸을 눕혔다. 으흠. 책을 읽다 보니 잠이 쏟아졌다. 역시 잠이 잘 온단 말이야... 


얼마를 잔 것일까. 자다 깼는데 여전히 깜깜한 밤이었다. 몇 시쯤 된 것일까. 스마트폰을 터치해 시계를 보니 겨우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왜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건지. 눈, 코, 입이 안 보이는 커다란 얼굴이 보여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공포소설 후유증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물건을 주섬주섬 들고 어둠 속을 이동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침대를 가로질러 자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익숙하게 내 자리를 찾아 몸을 눕히고 아들의 땡땡한 다리를 치웠다. 알아서 제자리로 잘 굴러가니 넉넉한 잠자리가 생겼다. 푹신한 이불로 몸을 감싸고 나니 그제야 긴장했던 몸이 풀어졌다. 


혼자 잔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나. 


혼자 살고 싶다는 패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날 이후로 난 내 자리를 지키며 여전히 아들과 멀찍이 떨어져 자고 있다. 진짜 혼자 자려면 침대를 하나 사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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