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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30. 2022

80살까지는 살 거야

행운의 사나이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한 지 2주가 지났다.

면역저하자로 하루에 한 번씩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전화가 오고 있었다.

"네 괜찮아요" 매일 하는 대답은 무미건조했다.

2주가 지나고 격리가 끝난 날, 법적으로 통행의 자유가 생긴 노인은 냉큼 밖으로 나갔다.

날은 쌀쌀했지만 바깥공기가 그리웠다.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나가는 건 무리야"

자가검진키트에서도 양성이 나오고 있었다.

말릴 새도 없이 밖으로 나간 노인은 제일 먼저 장을 봤다.

그동안 입안이 껄끄러워 제대로 먹지 못한 터였다.

마트를 돌아다니며 입맛이 돌게 할 만한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살 것 같았다.



"숨이 찬다"

"코로나 검사 다시 받고 관리받도록 하자. 격리가 끝났다고 다 나은 게 아닌 거 같아"

"안돼. 그러면 밖에 못 나가"

감금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혼자 남겨지는 것임을.

자가검진키트에서 음성이라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상태가 안 좋다 싶으면 꼭 말해줘야 해. 알았지?"

노인의 선택에 맡겼다.

문제는 계속되는 호흡곤란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응급실을 알아보았지만 코로나 병상은 이미 만원이었다.

"오셔도 자리 없어요!"

밀려드는 환자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료진들의 대답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다시 코로나 환자가 되어 관리체제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 되겠다. 그냥 가자. 응급실로"

상태는 쉬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섬주섬 가방을 꾸려 무작정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 검사가 진행되었고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판을 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독한 놈에 걸렸다.



노인은 생전 처음 뉴스에서만 보았던 코호트 병실로 이송되었다.

무거운 미닫이 철문 안에는 새하얀 침대와 수리 중이라고 써붙인 세면대가 있었다.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코호트 병실.

무장한 간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피를 뽑고 주사를 놓고 온갖 검사를 해댔다.

산소마스크를 낀 채 밤인지 낮인지도 모를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이미 폐렴까지 진행되어 있는 상태였다.

폐암에 걸린 노인에게 이번엔 폐렴이 덮쳤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24시간 산소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벗을 수도 씻을 수도 돌아다닐 수도 없는 완벽한 감금이 시작되었다.

띠띠띠띠. 산소포화도 장치가 실시간으로 돌아간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조용하고도 분주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코호트 병실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허락 없이는 출입이 제한된 하얀 방에 갇히고 말았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것은 흡사 죽음의 냄새였다.






노인은 행운의 사나이였다.

언제나 행운이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코로나 병상의 자리가 기적적으로 나왔고 

독방 신세의 노인은 사람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코로나 병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코로나 전용 병상엔 한 방에 4명의 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서로의 숨을 교환하면 안 되었기에 투명 비닐로 가림막이 쳐있었다.

이곳에선 서로의 눈빛만을 교환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다른 이의 모습을 보니 노인은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걸까.

한 줌의 햇빛도 보지 못한 채 24시간 형광등만이 내리쬐 있었다.

바이러스는 떨어질 기미도 없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중이다.

매일 계속되는 피검사에서 이 놈들의 활동 상태를 알 수 있다.

독한 놈에 걸렸다고 하더니 진짜 독한 놈인가 보다.

이놈의 코로나가 사그라들기 전엔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

다들 자는지 깨어있는지 알 수 없다.

띠띠띠띠 기계 소리와 산소호흡기 연기만이 자욱하다.

입안은 여전히 껄끄럽고 음식은 넘어가지 않는다.

시원한 과일 한 조각이 그립다.

'이곳에서 나가면 과일을 한 바구니 먹을 테다' 노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새 노인은 5킬로가 있었다.

광대는 누가 누른 것처럼 쑥 들어갔고 배는 납작해져서 이불을 덮고 누워있어도 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비닐 가림막 넘어 다른 환자들과 눈빛만 교환한 지도 열흘이 었다.



'80살까지는 살 거야'
이 말은 노인이 항상 하는 말이었다.
말의 힘이었을까 약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행운이 따라온 걸까.
어느 날 독한 놈이라던 바이러스가 죽었다.


입고 온 옷가지며 소지품은 압수당하고 버려졌다.

먼지처럼 들러붙어 있던 바이러스의 조각마저 털어낸 노인은 맨 몸으로 병원을 걸어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순간 쓰러질 뻔했으나 간신히 기둥을 붙잡고 앉았다.

겨우 숨이 쉬어졌다.

생각해보니 한 달을 걷지 않았다.

근육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뼈마디가 앙상한 몸뚱이만 남았다.

바깥공기는 여전히 쌀쌀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분주해 보였다.

'80살까지는 살 거야'

노인은 나지막이 되뇌었다.

기둥을 붙잡고 일어선 노인은 비틀대며 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행운은 노인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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