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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03. 2022

애착 이불

쪽쪽이를 빠는 어른이

오래된 습관, 아니 버릇이 하나 있다.

귀 만지기. 귓볼을 만지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는데 난 귀의 가장 윗부분인 귓바퀴를 만진다.

왜 그 부위를 선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귀 만지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냥 귀를 만지는 건 아니다. 꼭 세트가 하나 따라다닌다. 이 세트가 붙지 않으면 귀를 만지지 않으므로

귀 만지는 대전제가 되겠다. 그건 '쪽쪽이'

맞다 그 쪽쪽이. 어린 아기들을 달래는 데 사용하는 공갈젖꼭지를 부르는 말.

아이가 엄마 젖을 빨 듯 혀를 돌돌 말아 빤다.

그리고 귀를 만진다.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다. 그냥 둘이는 하나의 세트인 듯 나를 따라왔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언제부터 귀를 만졌는지 시간을 반추해본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두운 시골집 방안, 난 할머니와 누워있다.

잠을 자려는데 곧 잠이 오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찾는다. 나를 꿈속으로 데려다 줄 포근하고도 질감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더듬거린다.

잡혔다. 의외로 그 대상은 내 가까이에 있다.


할머니 팔꿈치의 늘어진 살.

주름이 잡혀 쭉쭉 늘어지던 할머니의 팔꿈치 살을 만지면 침이 꼴깍꼴깍 나왔다.

쫀득한 엿가락을 늘이면 침이 넘어가듯 그 살을 만지면 침이 넘어갔다.

내 마음의 평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삶의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 애착의 시기를. 그 시기에 난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그 시간을 아름다운 시골집 마당, 논과 밭, 마을 풍경 등으로 채워놓았지만

단 하나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첫 미션이라고 하는 애착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뀄다. 불안해진 난 애착 이불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장면이 바뀌어 난 더 이상 할머니와 살지 않는다.

내 엿가락, 아니 애착 이불을 잃어버렸다.

불안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찾아야 한다. 새로운 애착 이불을.

다시 어두운 방안을 더듬거린다.

뭔가 말랑하고도 쫀득한 것이 손에 잡힌다.

동생의 귓볼.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난 쪽쪽이를 빨며 깊은 잠에 빠진다.

할머니의 팔꿈치 살은 집에 돌아온 뒤 내 동생들의 귓볼로 바뀌었다.

할머니와는 달리 동생들은 나를 매우 귀찮아했고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잠들기만을 

어둠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기꺼이 감수했다. 잠들어야 했으므로.


한 번도 엄마의 귀를 만져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두터웠고 쫄깃하지 않았다.

맛이 없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엄마의 침대에서 어렴풋이 잠든 적이 있다.

엄마는 기절하듯 잠든 나를 다른 방으로 옮기지 않았고

그날은 엄마 침대에서 잠에 취해있었다.

"어머 얘가 입으로 젖을 빠네, 얘 입 풀어"

엄마 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손이 내 입을 때린다.

그 순간 나의 입은 있는 힘껏 쪽쪽 소리를 내가며 더 힘차게 빤다.

쪽쪽 소리는 자고 있는 내 귀에도 들린다.

젖을 그만 먹으라고 밀어내는 엄마와 

젖을 더 먹겠다고 달려드는 아기. 승자는 나였다.

그렇게 심하게 쪽쪽 빠는 소리를 내다니. 엄마도 놀랬겠다.

다 큰딸이 젖 빨고 잔다고.

창피했다.


그렇게라도 당당히 알려 주고 싶었나 보다.

봤지 봤지. 나 애정결핍이라고. 아직까지 엄마 젖을 찾고 있다고.


고치고 싶었다. 드러내 놓기 부끄러운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귀를 만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잘 때는 이해한다고 치자.

수학시험시간. 귀를 만진다. 시험에 집중이 안된다. 그래도 귀를 놓을 수가 없다.

불안과 초조를 달래면서 시험을 본건가. 젖을 빤 건가.

불안함은 달래주었으나 집중이 안된다.

의식적으로 만지지 않으려고 부르르르 입을 풀었다.

난 이제 어른이야, 나오지 말라고, 내 안의 어린이.

지금은 자는 시간이 아니야.






어느 날 아이가 귀를 슬쩍 만졌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귀 만지면 안 돼" 

"엄마는 왜 귀를 만져? 난 엄마 따라 만지는 건데"

아이가 보기에도 엄마가 간혹 귀를 만지는 것이 수상했나 보다.

너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 안에 아이 하나가 산다는 걸. 

"귀 만지면 안 돼. 귀가 못생겨진다고"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이게 전부다.

50일밖에 젖을 물리지 못했다.

너에게도 애정이 결핍되었을까봐 내심 불안했다.

젖을 못준 대신 다른 곳에 신경을 써주었다. 

이유식은  반드시 손수 만들었고 밥 한 끼만큼은 대접받는 느낌으로 차려 주었다.

다행히 이런 내 뜻이 통했는지 아이는 어떤 수상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겐 애착 이불이 없다. 

오늘도 아이는 나를 부른다.

"엄마! 자야 한다고!" 오라는 소리다.

아이는 내가 없으면 잠을 자지 않는다.

곧 잠에 곯아 떨어질 상황이라도 내가 없으면 잠을 거부한다.

그걸 아는 나는 기꺼이 달려가서 아이의 애착 이불이 되어준다.

너덜너덜해진 애착 이불.

다행히 난 아이의 애착 이불이 되었다. 그것 없이는 잠들 수 없는 존재.

너덜너덜해서 잊히더라도 포근하게 재워주는 애착 이불 말이다.






"엄마, 나 젖 먹었어?"

"그럼, 젖 먹고 컸지 뭐 먹고 컸냐"

아, 나 젖 먹고 컸구나.

내심 안심이 되었다. 젖도 못 먹고 자란 줄 알았으니까.

다 큰 성인 여자가 이런 걸 엄마한테 물어보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런데 왜 엄마의 젖을 빤 기억이 없을까.

엄마와 난 그 시간 무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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