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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13. 2023

소매치기의 추억

소매치기를 당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다행히)

난 앞으로 이야기할 이 사건들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가방정도는 마음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27살 때, 그날 아침 난 분주한 거리를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밀라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여서 어학원에 다니는 중이었고, 그때만 해도 밀라노 햇병아리 시절이라 유럽 소매치기 말만 들어봤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머리가 반쯤은 멍한 상태이기도 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온통 바뀌었으니. 


그런데 그날 아침 그 길, 내 주변 공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 곁엔 아무도 없는데 어디선가 소름 끼치는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멍하게 걷고 있던 정신을 집중시켜 양 옆을 둘러보니, 10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내 옆으로 걷고 있었다. 


뭐야. 아침부터 웬 아이가 옆구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생각을 한 순간. 

이 아이가 내 가방으로 쓱 손을 짚어 넣는 게 보였다. 너무나 기가 막혀 이태리어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야!!!"


진짜 내가 생각해도 깜짝 놀라게 큰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순간 아이는 내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휴....

간 떨어질 뻔... 어쨌든 나 스스로를 지켰다는 생각에 안심했는데. 그 날이후로 여기저기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선 이태리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밀라노 생활도 얼추 적응되었을 무렵,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난 늘 풍경 감상하기를 즐겼다. 그런데 그날 그 버스에서, 또 이상한 공기가 느껴졌다. 


이번엔 아랍인처럼 보이는 남자 4명이 대 놓고 내 옆구리에 포진해 있었다. 친구처럼 위장한 한 무리. 나 눈치 깠거든. 내 가방은 내가 지킨다. 그러고선 가방에 신경을 바짝 쓰며 내 자리를 지켰다. 가방은 깊이가 꽤 있는 에코백이었다. 손 들어올 생각 마라. 생각 외로 어떤 터치도 없었고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유유히 내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헉! 지갑이 없다. 통째로. 난 그날 처음 당했다. 유럽소매치기를. 가방은 찢기지 않았고 멀쩡했다. 


눈뜨고 코베이는 게 이런 거구나를 실감 했다. 그렇게 신경을 바짝 썼는데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버스는 소매치기를 싣고 떠나갔는걸. 


그날 이후로 난 소매치기 강박증이 생겼다. 흔한 맥도널드에 들어가서도 가방을 의자에 두지 못했다. 자리를 잡고, 가방으로 자리를 표시해 놓고, 버거를 가지러 가면 백발백중 가방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신기하게 친구 하나가 그 자리를 지켜도 가방은 사라지고 말았다. 


몇 번의 소매치기를 경험하며 가방을 끌어안고 다녔다. 그 이후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이상한 공기는 다행히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스페인으로 친구와 놀러를 갔을 때다.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고 숙박은 현지에 가서 구해 그날그날의 잠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드리드에 도착한 첫날, 숙박을 위해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는 때였다. 


분명 한 명은 두 개의 캐리어를 지켰고 한 명은 전화를 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5초 사이 친구의 캐리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난감 난감 그런 난감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친구는 나를 있는 대로 구박했다. 가방하나 제대로 못 지켰냐고. 그런데 진심 할 말은 없는데... 아무도 안 왔다 갔어... 그날 우리는 마드리드 기차역을 떠나지 못하고 동네 구석구석 쓰레기통을 다 뒤지고 다니다 이슥한 밤이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갔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못 찾을 거라는 말만 돌아왔다. 여행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고 친구는 여권과 돈만 남겨져 생필품 쇼핑으로 하루를 다 보냈다. 급기야 신경이 팽팽해진 우리는 프라도 미술관 앞에서 큰 소리로 대판 싸웠다. 


스페인. 집시가 우글거린다더니. 와. 정말 눈뜨고 코 베이는구나. 억울하고 분했다. 유럽. 살기 좋은 곳 아니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소매치기가 많은 거냐고!


신경이 바짝 쓰이고 길을 걸어도 누군가가 내 몸에 손을 댈까 긴장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한참 그런 생각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그 이상한 공기가 또 내 등뒤에서 느껴지는 게 아닌가! 얼굴을 돌려 슬쩍 뒤를 보니 웬 여자가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내 배낭 안에 넣고 있었다. 그 순간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다 필요 없고! 넌 눈을 마주쳤는데 도망도 안 가냐!


"야!!! 손 빼!!!"


스페인 소매치기는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챠오를 외치며 능글맞게 웃으며 가던 길을 그냥 가는 것이다.

뭐 이런 씨.......


이게 내가 유럽에서 경험한 마지막 소매치기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우리나라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카페에서 자리가 있다는 신호로 떡하니 놓여있는 가방을 보면 맥도널드 소매치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음. 가방 정도는 두고 화장실 갈 수 있는 이곳이 조금은 맘에 드는 것이다. ^^



소매치기를 만났을 때 가장 유용한 표현은 "야!!!"입니다. 아주 큰 소리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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