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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13. 2023

이것만은 먹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꾸 먹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먹는데 꽂혔는지 먹는 글감이 튀어나오니 어쩔 수 없네요... 험험...


가지. 아이에게 간절히 먹이고 싶은 채소다. 왜냐하면 아이가 먹지 않는 단 하나의 채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것만 먹으면 100점인데 이거 하나 때문에 99점 인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쉽게 포기가 안된다. 어떻게 해야 가지를 먹일 수 있을까.


사실, 아이가 가지를 한 입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제 스스로 먹지 않기 때문에 먹이고 싶은 이상한 승부근성이 내 안에 자라는 중이다. 이 맛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받아들인 채소가 버섯과 가지다. 이상하게도 고기를 먹지 않았던 난 채소를 좋아했는데 그중 버섯과 가지만은 예외였다. 


그 빛깔이 이상하게 싫었다. 브라운도 아니고 회색빛도 아닌 미끌거리는 촉수처럼 생긴 버섯의 생김새가 징그러웠고 드라큘라의 입술색을 가진 가지의 식감은 질겅질겅 씹다 뱉은 물컹한 덩어리였다. 아무리 삼키려 해도 덩어리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이랬던 내가, 왜, 아이에게 그토록 가지타령을 하는 것인가. 나도 참 이해가 안 되지만(그까짓 거 포기하면 안 되겠어?) 이거 하나만 먹어주면 안 잡아먹지. 가 내 심정이다. 잘 먹지는 않더라도 거부하지 않는 편식제로의 인간을 만들고 싶다는 엄마의 이상한 욕심. 


사실 실토하자면 아이가 가지를 안 먹는 건 다 내 탓이다. 


그날 저녁, 난 아이에게 가지밥을 주고 싶었다. 저 보라 가지로 맛있는 솥밥을 해주고 싶은 요리흥이 끓고 있었다. 칙칙~~ 호기롭게 가지밥이 완성되었고 비주얼은 음... 잿빛으로 으깨진 물컹한 고구마들이 투투둑 뿌려진 모양이었다. 비주얼이 별로네... 재빠르게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후라이로 위장을 해주었고 고소한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 냄새로 자극시켰다. 어때 먹어봐봐. 


아이는 한 입 두 입 먹기 시작했다. 음~ 나쁘지 않나 보군... 그런데 숟가락질이 현저하게 느려지더니 급기야 입안에서 뭘 꺼낸다. 가지가지가지.... 한 입만을 애원해도 안된다 한다. 그렇게 그 날이후로 아이는 강력하게 가지를 거부하게 되었다. 




툭하면 나에게 문제를 맞혀보라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가지...

딩동댕! 절대 안 먹어!


아우 c... 가지 이대로 안녕인 거야? 먹이고 싶어. 네가 안 먹는다니 더 먹이고 싶다고!


어제저녁 드디어 비장의 출사표를 다시 한번 냈다. 내가 산 것은 아니고 엄마에게 또 얻어온 가지 한 봉지. (참 많이 얻어먹는다) 좋았어. 이번엔 가지를 네가 좋아하는 계란으로 다 덮어버리겠어! 같이 얻어온 애호박과 가지를 어슷 썰어 부침가루를 묻히고 계란에 퐁당 빠트려 노릇노릇 전으로 부쳤다. 잔치구나 잔치. 둘이 먹을 전인데 커다란 접시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언덕하나를 만들어 식탁에 내놓았다.


5시만 되면 배가 고픈 아이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전을 집었다. 그런데 노릇한 계란사이로 이상한 색깔을 발견했는지 여지없이 물어온다.


"이거 뭐야?"

"어... 가지... 먹어봐. 이건 정말 달라. 먹으면 깜짝 놀랄 맛이야"


그러더니 조심스레 가지전을 뜯어. 먹는다. 이미 싫어하는...이라는 감정이 있어선지 얼굴이 구겨진다... 제발 들어가라. 맛있다고 말해라... 플리즈 플리즈... 가지전을 조금 맛본아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보라 껍질을 못 먹겠다는 말을 한다. 보라... 그래 네 마음 안다. 그것까진 강요하지 않을게... 가지를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저녁 시간, 아이는 가지속전을 먹었고 나는 가지껍질전을 먹었다. 고맙다. 거부하지 않고 가지를 먹어줘서. 엄마는 새로운 가지요리에 도전해 이 말을 꼭 듣고 말겠어!


"엄마! 가지가 이런 맛이야? 너무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채소는?"

"가지!"

딩동댕~


보라색이 아닌 가지는 없을까요?

그럼 먹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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