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소개합니다

by 이다

난 집안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길을 걷다가도 저 많은 베란다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각각 다양한 방법으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그 순간 몸에선 찌릿찌릿한 전파가 피어오른다. 누군가의 취향이 궁금하다면 집안에 들어가 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곳엔 그 사람의 모든 취향이 파일처럼 쌓여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알고 싶어서 집에 다짜고짜 들어갈 수는 없다. 오직 내 집에서 나의 취향을 파고 연구할 뿐이다. 이런 내가 10년 동안 가구를 옮기며 항상 생각한 것이 있다. 나의 인테리어 취향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어디에 정착하게 될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북유럽풍 인테리어였다. 가보지도 못한 추운 나라, 하얀 피부를 가진 그들의 인테리어가 매일밤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하얀 벽에 둘러싸인 감각적인 집안을 구경하는 순간, 잠은 저만치 달아났다. 클릭과 캡처를 반복하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냐 하면 마치 지금 글을 쓰는 것과도 흡사한 느낌이다. 지금은 글 쓰는 게 그만큼 재미있다. 그때 글을 알았더라면.


아침이 되면 거실을 바라보며 구상을 한다. 오늘은 이 구조를 연출해 보자. 결심이 서면 소파를 밀어낸다. 이런 일상이 5년 넘게 계속되다 보니 사실 꾀가 나고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옮기기 전에 다시 한번 과거를 떠올려보는 식이다.


'역시 지금이 더 나아'

'아. 이것도 괜찮았네'


북유럽에 한참 눈이 익어 맹숭맹숭 해질 때쯤 모던한 인테리어가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화이트와 그레이를 기본으로 대리석이 자주 보였다. 깔끔했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와도 잘 맞았다. 그런데 어쩐지 차가워 보였다. 미니멀하고 깨끗한데 거기 누우면 온몸이 시릴 것 같았다.


피겨스케이팅을 할 수도 있는 완벽한 클리어함.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난 어떤 분위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일까. 마냥 구조만 바꿔가던 패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즈음 결혼 후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오래된 아파트 2층이었지만 집을 보러 들어선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거실 창밖의 나무였다. 창문의 반 정도까지 올라와 있던 무성한 나뭇잎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리색 몰딩도 오래된 장판도 강아지 오줌 냄새도 어느새 다 잊히고 눈앞엔 오직 드넓은 정원이라도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은 고치면 되는 거니까.


그때까지 따로 인테리어 공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전 집들이 정해진 배경 안에서 나름대로 취향을 연구한 시간이었다면 세 번째 집으로 이사하면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시공을 하게 되었다. 벽과 몰딩은 기본적인 화이트로 마감했고 바닥재는 최대한 밝고 자연스러운 컬러를 골랐다. 올 화이트의 캔버스 같은 하얀 집. 나는 그곳에 나의 취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얼음느낌 나는 차가움은 싫다. 완벽하고 싶지 않다. 기본은 깨끗하게. 난 그 안에서 자유롭게 퍼져있고 싶다. 마치 동남아시아 리조트에 휴가를 온 사람처럼. 왜 꼭 그곳에 가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집을 그런 분위기로 바꾸면 되는 거잖아.


더 이상 북유럽의 화이트와 모노톤만 고집하지 않았다. 색에 있어서도 자유롭고 싶다. 빈티지느낌이 나는 갈색 2인용 소파를 들였다. 갈색소파를 놓으니 하나의 자연이 거실에 들어온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커다란 화분이 10개 정도 있으니 소파옆에 무심히 세워 휴양지 카페 느낌을 내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아이가 치는 피아노는 한쪽 벽에 무심히 두어 언제라도 공연을 하게 배치한다. 색을 쓰고 싶은 나는 그린 컬러의 서랍장도 거실에 세워둔다. 모든 물건은 제 각각 숨 쉴 공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가구든 빽빽하게 붙여놓지 않는다.


가구 하나, 소파하나, 그림 한점, 화분 하나가 모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최상의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시너지를 더해준다. 거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면 마음이 차오른다.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 비싼 가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몇 개 안 되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 놓인 물건이 언제나 내 눈을 즐겁게 한다. 아. 여기가 내 집이구나. 이게 나란 사람이구나.라는 정확한 느낌을 준다.


아이도 이 풍경을 눈에 담아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나를 닮아 가구 옮기는 걸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준다.


"아름다운 집에서 살 길 바래. 그럼 그 공간에서 적어도 12시간은 행복할 거야. 집이란 그런 곳이란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소독원이 되어 온 아파트를 돌아다니고 싶다. 두근두근하며 정기 소독을 하러 띵동 벨을 누르고 화장실에 들어가 소독제를 칙 뿌리고,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칙 뿌리고, 세탁실로 이동해 칙 뿌리고, 베란다에 나가 칙 뿌리며 흘깃흘깃 남의 집안을 구경하고 싶다. 내 집을 매일 들쑤시더니 이제 남의 집을 들쑤시고 싶다. 아무래도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를 했어야 했다. 이것이 인테리어 취향을 매일 밤 고민하면서 알게 된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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