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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Aug 20. 2022

한숨도 버거웠다

사람, 공황, 그리고 소통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수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이하이의 <한숨> 중


 연이어 메가 히트를 친(나에게는 그렇다^^;;) TV 경연 프로에서 어느 남자 가수가 커버한 이 노래를 들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무엇으로부터인지도 모른채 난데없는 공감을 받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날 원곡을 서둘러 찾아 들었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처음에는 노래가 좋아서 이런 나의 급발진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차에서 들으며 드는 생각 하나.


 '내가 참 이해받고 싶었구나...'


 어느 날부터인가 희한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생인 딸아이가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요즘 여자아이들처럼 걸그룹 노래도 잘 모르는 아이가 나도 좀 헤아려 달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아빠 편을 들어주려고 하는지 차만 타면 이 노래를 틀어달란다. 7세 여자 아이가 즐겨 듣기에는 너무 처지나ㅎㅎ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이제는 여한없이 들어봐 그러다 말겠지 하는 마음에 순순히 틀어준다. 멜로디를 외우고, 가사를 외우고, 심지어 노래를 안 들을 때도 흥얼거린다.


 '너도 아빠처럼 이해받고 싶은거구나...'


 201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내가 한숨도 버거워하는 증상이 나타난 것은... 작년에 두드러지기 시작하며 올해 초에 굉장히 심해졌다. 이게 그건지(?) 며칠 전에야 알아챘다. 바보 같으니... 머리가 조여진다. 숨 쉬기가 버겁다. 식은 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운전 중에, 특히 차가 멈춰있으면 미칠 것 같다. 급히 창문을 연다. 올해 두 번 정도는 꽤 심각했다. 차를 정차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예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에 노래를 크게 부르거나 무릎을 세게 치면서 미련하게 계속 운전을 했다. 마치 정신 차려, 이러면 안 돼 라고 나 자신을 깨우는 것 같이. '공황'이 온 것이다. 2017년 9월 처음 가본 작은 교회의 홀에서 이유도 모른체 쓰러졌다. 정신은 살아있었다. 주변 사람이 보였고, 그냥 내가 스윽하고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확 달아올랐다가 식어가는 느낌이 들어 오싹했다. 낯선 남자가 괜찮냐고 묻는다. "물 한 잔 갖다 드릴까요?" "...고맙습니다..." 5분 여 정도 누워있다가 몸 기댈 곳을 찾으며 등받이 의자에 힘겹게 내 몸을 기대놨다. 드러눕지만 않았지 다른 신체 컨디션은 그때보다 요즘이 훨씬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공황 장애를 겪게 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니 지겨움? 같은 낯익은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뇌전증을 앓았다. 바뀐 병명이 예전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ㅎㅎ(이전에는 어감이 완전 비호감이었다!!) 이 병이 내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25년 정도 걸렸다. 30대 초반에 만나 결혼한 지금의 아내가 아니라면 여전히 내 꼬라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훨씬 전에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생활 초기까지도 나는 스스로를 병신 취급하고, 끊임없는 자괴감과 원망감에 시달렸다. 그런 내가 공황이 온 것이다. 사실 전조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어쩌면 견딜만(?) 한지 모른다. 공황 장애도 심각한 사람들은 졸도를 한다고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뇌전증과 산다는 것을 웬만큼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공황은 웬지 모르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지 않은가? 다만 어릴 때는 부모님과 형이 고생했고,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이 고생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부딪혀서 터지고, 어디 걸려 찢어져 피흘리는 이 몸집 큰 나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집으로 옮겼던 아버지와 형, 옆에는 사고로 죽다 살아난 아들 만난 양 내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엄마. 결혼 후에는 사고(?)가 터지고 난 후, 깨보면 걱정스러운 눈으로 괜챦냐고 물으며 부딪힌 곳을 쓰다듬어주는 아내. 그런데 아이들은 음... 아이들은 좀 다르다. 아이들은 최후의 보루로 남기고 싶다. 아들과 딸만은 사고 현장에 쓰러진 나를 보면 안 된다. 절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서 가장 살맛나는 인생 중인데, 아이들이 사고 당한 나를 본다면, 그때는 살맛이 피맛으로 바뀌는 순간일터이다. 그리고 그 일 자체가 사고가 된다.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유독 내가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답답하면 의식적으로 한숨을 쉰다. 코와 입으로 산소가 밀려오고 폐가 부풀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허리가 펴지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 듯 하다. 더 이상 참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소심한 결을 가진 나라는 사람을 이제 나는 잘 안다. 그러니 참는 것도, 숨는 것도 내 자신을 돕는 길이 아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른 의미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이 드는게 이런건가 싶다. 나를 점점 받아들이게 되는 것.

 

 여전히 한숨 쉬기도 버거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런데 그 한숨도 내가 버겁겠지?^^; 그러니 나도 한숨을 기꺼이 쉬어가며 부끄러워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집세도 부족하고, 통장은 빈약하다. 직업을 찾을 수도, 취준생이 될 수도 없는 입장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있어도 심지어 뭐하나 하고 싶은대로 되는 것도 없는 건 매한가지다. 그래도 한숨 한 번 찐하게 쉬고 다시 내 길을 걷는다.


 "한숨 조차 버거웠던 나에게 그 한숨을 이제 허락하노라..."


20220517 - 202208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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