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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Aug 05. 2022

No Love, No Life?!

사람, 사랑, 그리고 소통

사랑이 없으면 자기 것만 집요하게 구한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만 기분 좋고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인
지극히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 된다.

 매일 매일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의 지향점이 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가족과 툭닥거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들인 나의 노력과 열정이 인정받지 못 함에 좌절한다. 이런 자신을 보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과 공존과 공생을 이뤄나가는 것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까? 좀 더 들어가서... 사람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철 없는, 아니 철 지난 질문을 해본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쁘고, 먹고 살만하면 뭘 먹을지 메뉴를 고르고, 이런 것들이 세팅(?)이 되면 뭘 입고, 뭘 사고, 어디에 살지에 몰두하는, 끊임없이 불안정한 모습 속에서 사랑이 어디 있는가 고민해본다.


 사랑이 없으면 자기 것만 집요하게 구한다, 즉 집착한다. 넘넘 맞는 말이다. 맞장구를 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랑하면, 인간의 본성을 뒤집게 된다는 뜻이다. 나의 안위와 형편과 처지가 절대 우선인 인간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너’를 먼저 떠올리고, 너를 먼저 배려하고, 너를 먼저 존중한다. 그 순간과 그 계기는 언제이고, 무엇일까? 가장 먼저 부모님이 생각난다. 보통은 엄마를 말하지만, 내게는 ‘아버지’도 큰 의미가 있다. 아마 지금 내가 아빠에서 아버지로 가는 변이 과정에 있어서이지 않을까... 엄마의 따뜻함과 헌신, 아버지의 무게감과 열정은 양쪽 모두 내게 중요하다. 내게 부모는 사랑의 또 다른 말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이성간의 사랑이다. 연애 중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썸 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부모님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화학적인 케미가 확 오가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와는 다르게, 인스턴트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속된 말로, 수 틀리면 성질 가는대로 갈 수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결별이나 이혼이 요즘 더 사회적 이슈 또는 예능 프로의 소재가 된 것이 아닐까? 사랑이 갖는 고귀함과 그 사랑이 깨진데서 오는 불편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오만가지 감정과 봄처럼 불어왔다가 겨울 냉기로 식어져버린 칼바람이 주는 그 무언가 때문에. 


 사실 사랑하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은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마치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있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무엇인가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말 그대로 없는데서 오는 헛헛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랑이 없든, 신뢰가 없든, 부모가 없든, 배우자가 없든, 먹을 것이 없든 헛헛하다. 정작 당사자는 인식하기 힘든 수준의 허전함과 헛헛함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삶의 한 꼭지를 꼭 꽉꽉 채우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이 발전과 진보의 자양분이 되었으니 플러스 요인이지만,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요인으로 보인다. 결핍이 주는 헛헛함에서 오는 욕구. 그 욕구 말이다. 이 욕구가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 욕구가 사랑을 깨지게도 만든다. 여기서 오랜 시간 회자 되는 영화 대사 한 마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봄날은 간다’ 중(허진호 감독, 2001년작)

 

 지금 쓰고 있는 말들은 사랑 자체에 대한 고찰은 아니다. 사람에게 사랑이 갖는 의미를 찝적이는 정도다. 사랑이 변한다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답도 없고, 결론을 내릴 수도, 내리지도 못 할 질문들이다. (내심 글이 산으로 가고 있음을 느끼는 지점이 왔다ㅎㅎ) 


 적어도 나는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이 삶을 가장 나은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는 부류다. 그래서 매순간 INFJ답게 그 사랑을 고민하고, how to love를 생각하고, 판을 짠다. 물론, 역시나 상대가 누가 되었든(심지어 아내도) 내 ‘사랑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들 나름의 사랑의 법칙이 있고, 그것이 나와 맞춰지지 않은 것 뿐이겠지. 


 서두에 나눈 글의 그 다음은 이렇다. 


사랑은 그 반대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게 무엇이든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에 결혼하기 직전까지 나는 결혼을 못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가장 큰 이유는 얼토당토 않게도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짝사랑이 그런게 아니던가? 나는 주고 싶어하는데, 상대는 받고 싶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는 나에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 내게 짝사랑은 로맨스지만, 너에게는 나이트매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과한 짝사랑이 스토킹으로 분류되는가 보다.(어릴 때 내 모습으로 지금 시기를 살았다면 몇 번이고 기소당했지도...ㅠㅠ) 


 주는 것이 사랑이기에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주기만 하면서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주는 걸 받는 상대는 주고 싶지 않아 하는데서 오는 이 언발란스한 상황과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이런 느낌 자체가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일까? 


 사랑하며 살고 싶지만 사랑하기가 쉽지 않아서 잠시라도 사랑의 고민을 내려놓는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사랑을 결심하겠지. 고민만 하다 사랑하는 삶을 살지 못 하고 죽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런 프로세스도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인지... 


 참으로 사랑은 골 때린다. 인생처럼... 


20220822 - 2022080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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