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처갓집, 그리고 소통
내일은 코로나 3년 동안 손주들을 만나지 못하셨던 장인, 장모님께서 이곳에 오시는 날이다. 2주, 1주, 3일,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점점 뚜렷해지는 생각 한 가지.
‘7주? 왜 이렇게 길게 잡았지?’
며느리가 아무리 딸 같아도 며느리이고, 사위가 아무리 아들 같아도 사위일 뿐이다. 결혼 12년차, 내게 두 분은 불편함 보다는 어색함의 대상 되시겠다. 결혼 초에는 장인어른과 함께 탁구도 치며 땀 흘리는 시간도 있었고, 장모님과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편에 속했다. 하지만 이곳에 터를 잡은 지 6년이 되니 그 전의 가까워졌던 6년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그러니 어색할 수밖에.
아마 없는 말 같은데, 억지로 작명(?)을 해보니, 나는 앞으로 7주 동안, ‘역처가살이’를 할 처지에 놓였다. 내 집인데, 장인장모님께서 오시니 내 집이 주는 편안함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동시에, 두 분도 편하시기야 하겠는가? 손주손녀가 너무 보고 싶고, 큰 딸 만나려고 그 먼 길을 비행기 타고 오시지만, 막상 오셔서 며칠 만 지나면 외국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될텐데 그 일상이 편할 것인가 말이다. 두 분의 경우에는 내가 느낄 어색함 보다는 불편함이 더 가까울 것이다.
크지 않은 거실에는 희한하게도 양쪽으로 열고 닫는 문이 달려있다. 그러니 그 문을 닫으면 방이 된다. 그곳이 두 분의 숙소(?)다. TV와 소파도 있는 그 공간에 라텍스를 깔고 주무셔야 하니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다. 이곳은 교통도 좋지 않아서 버스 타고 나가기도 어렵다. 동네는 여느 외국처럼 오후 4시가 지나면 조용하다 못 해 바람소리가 스피커를 통한 것 같이 증폭된다. 마트나 쇼핑센터를 가려고 해도 꼭 차를 이용해야 하고, 10분 이상은 나가야 한다. 이러니 얼마나 불편하실까...
그런데 말이다. 요상하게도 내 마음 한켠에 이 역처가살이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있다. 이곳에서의 6년 동안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민 생활 초기에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지고, 심지어 경계하기에 이르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정말 이곳에 살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고 나서야 돌아보니 내가 사람에 대해 강박을 갖고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재소자들이 교도소에서 출소 후, 사회에 진입하기가 힘든 것은 낙인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한 번 OO이라고 찍히면 그 도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이런 걸 프레이밍(framing)이라고도 하더라. 지난 6년 이 곳에서 나는 내가 남들을 프레이밍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다. 내 자신을 보호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에 대비한답시고 미리 다른 사람들을 프레이밍하며 폐쇄적으로, 더 정확히는 자기주도적 폐쇄를 선택한 것이다. ‘아,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어디 가서 말을 옮길지도 모르겠구나. 그냥 입 닥치고 있자.’ 그렇게 6년을 살다보니 내가 전한 말이 없으니 내가 딱히 판단 받을 근거가 없어서 별일 없는 것처럼 느꼈었다. 단 심각한 부작용 한 가지.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말을 통한 소통인데,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사소한 것도 내심 바들바들 떨며 조심하고, 말을 가리니 스스로 보호되는 것 같은 기분은 들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아무도 주변에 있지 않은 것이다.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가 겪는 비극적인 결과 중 하나가 이런 것일까? 과잉보호 받은 자녀가 안전한 학교생활을 했을지는 모르나 친구 하나 없이 졸업식을 앞두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뭐 그런 모습들...
이런 처지에서 약간이라도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누군가를 경계하며 프레이밍해야 한다는 무게감을 제쳐놓고 말하고, 대할 수 있는 분들이 오시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위가 장인장모를 자기 부모 대하듯이 모시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7주 동안의 역처가살이를 통해 나는 그 동안 강박적으로 조여왔던, 관계에 대한 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일종의 CPR을 시도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와, 대박! 장인어른 오신다! 야호!’ 이런 환희에 찬 즐거움은 당연히 아니다ㅎㅎ ‘그래. 그래도 자연스러운 나를 아시는 분들이니 이번 기회에 숨 좀 돌리자.’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네는 앞으로 뭘 할 계획인가?”
장담컨대 장인어른을 픽업해서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그분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실 것이다. 아내도 흔쾌히 동감했다^^;; 한국에서 이직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사위로서 들었다면,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7주 간 역처가살이에서 이 질문을 해주신다면, 나는 기꺼이 주저리주저리 떠들겠다. 누군가를 프레이밍할 필요도 없고, 자기 보호라는 미명 아래 내 자신을 숨기고, 또 숨기고, 꼭꼭 숨기는 일 따위도 하지 않으면서 앞뒤 따지지 않고 수다를 떨겠다. 이 또한 자기 보호일지 모른다. 약간의 방향을 틀었을 뿐...
20230102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