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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an 02. 2023

7주간의 역처가살이

사람, 처갓집, 그리고 소통

 내일은 코로나 3년 동안 손주들을 만나지 못하셨던 장인, 장모님께서 이곳에 오시는 날이다. 2주, 1주, 3일,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점점 뚜렷해지는 생각 한 가지.


 ‘7주? 왜 이렇게 길게 잡았지?’ 


 며느리가 아무리 딸 같아도 며느리이고, 사위가 아무리 아들 같아도 사위일 뿐이다. 결혼 12년차, 내게 두 분은 불편함 보다는 어색함의 대상 되시겠다. 결혼 초에는 장인어른과 함께 탁구도 치며 땀 흘리는 시간도 있었고, 장모님과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편에 속했다. 하지만 이곳에 터를 잡은 지 6년이 되니 그 전의 가까워졌던 6년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그러니 어색할 수밖에. 


 아마 없는 말 같은데, 억지로 작명(?)을 해보니, 나는 앞으로 7주 동안, ‘역처가살이’를 할 처지에 놓였다. 내 집인데, 장인장모님께서 오시니 내 집이 주는 편안함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동시에, 두 분도 편하시기야 하겠는가? 손주손녀가 너무 보고 싶고, 큰 딸 만나려고 그 먼 길을 비행기 타고 오시지만, 막상 오셔서 며칠 만 지나면 외국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될텐데 그 일상이 편할 것인가 말이다. 두 분의 경우에는 내가 느낄 어색함 보다는 불편함이 더 가까울 것이다. 


 크지 않은 거실에는 희한하게도 양쪽으로 열고 닫는 문이 달려있다. 그러니 그 문을 닫으면 방이 된다. 그곳이 두 분의 숙소(?)다. TV와 소파도 있는 그 공간에 라텍스를 깔고 주무셔야 하니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다. 이곳은 교통도 좋지 않아서 버스 타고 나가기도 어렵다. 동네는 여느 외국처럼 오후 4시가 지나면 조용하다 못 해 바람소리가 스피커를 통한 것 같이 증폭된다. 마트나 쇼핑센터를 가려고 해도 꼭 차를 이용해야 하고, 10분 이상은 나가야 한다. 이러니 얼마나 불편하실까... 


 그런데 말이다. 요상하게도 내 마음 한켠에 이 역처가살이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있다. 이곳에서의 6년 동안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민 생활 초기에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지고, 심지어 경계하기에 이르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정말 이곳에 살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고 나서야 돌아보니 내가 사람에 대해 강박을 갖고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재소자들이 교도소에서 출소 후, 사회에 진입하기가 힘든 것은 낙인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한 번 OO이라고 찍히면 그 도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이런 걸 프레이밍(framing)이라고도 하더라. 지난 6년 이 곳에서 나는 내가 남들을 프레이밍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다. 내 자신을 보호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에 대비한답시고 미리 다른 사람들을 프레이밍하며 폐쇄적으로, 더 정확히는 자기주도적 폐쇄를 선택한 것이다. ‘아,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어디 가서 말을 옮길지도 모르겠구나. 그냥 입 닥치고 있자.’ 그렇게 6년을 살다보니 내가 전한 말이 없으니 내가 딱히 판단 받을 근거가 없어서 별일 없는 것처럼 느꼈었다. 단 심각한 부작용 한 가지.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말을 통한 소통인데,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사소한 것도 내심 바들바들 떨며 조심하고, 말을 가리니 스스로 보호되는 것 같은 기분은 들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아무도 주변에 있지 않은 것이다.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가 겪는 비극적인 결과 중 하나가 이런 것일까? 과잉보호 받은 자녀가 안전한 학교생활을 했을지는 모르나 친구 하나 없이 졸업식을 앞두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뭐 그런 모습들... 


 이런 처지에서 약간이라도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누군가를 경계하며 프레이밍해야 한다는 무게감을 제쳐놓고 말하고, 대할 수 있는 분들이 오시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위가 장인장모를 자기 부모 대하듯이 모시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7주 동안의 역처가살이를 통해 나는 그 동안 강박적으로 조여왔던, 관계에 대한 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일종의 CPR을 시도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와, 대박! 장인어른 오신다! 야호!’ 이런 환희에 찬 즐거움은 당연히 아니다ㅎㅎ ‘그래. 그래도 자연스러운 나를 아시는 분들이니 이번 기회에 숨 좀 돌리자.’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네는 앞으로 뭘 할 계획인가?”


 장담컨대 장인어른을 픽업해서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그분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실 것이다. 아내도 흔쾌히 동감했다^^;; 한국에서 이직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사위로서 들었다면,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7주 간 역처가살이에서 이 질문을 해주신다면, 나는 기꺼이 주저리주저리 떠들겠다. 누군가를 프레이밍할 필요도 없고, 자기 보호라는 미명 아래 내 자신을 숨기고, 또 숨기고, 꼭꼭 숨기는 일 따위도 하지 않으면서 앞뒤 따지지 않고 수다를 떨겠다. 이 또한 자기 보호일지 모른다. 약간의 방향을 틀었을 뿐... 


202301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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