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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an 06. 2023

잘 살고 있는데 죄책감이 느껴진다

사람, 모순1, 그리고 소통

 잘 살고 있는데 죄책감이 느껴진다면... 이것은 잘 사는 것일까, 잘 못 사는 것일까?


 잘 사는 것은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외부로 드러나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났을 때를 표현한 말이다. 죄책감은 외부에서 일어난 일에 영향을 받은 내부의 부정적인 반응의 정서적인 형태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 말이다.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 맞부딪히는 것을 모순이라고 한단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은 지극히도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다가도 현재 내 자신이 그런 마음이다 보니 나의 지금을 모순이라고 하는 것도 모순적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이민 생활 6년 만에 영주권을 받았다. 청소, 이사짐센터, 페인트, 카페트 깔기, 잔디 깎기 등 이민자들이 초기 생활에서 할 만한 일들은 대부분 했다. 발가락에 금이 간 적도 있고, 허리가 아파 3개월 동안 수입 없이 살아도 보았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더랬다. 이렇게 저렇게 잘 버티며 감사하게도 영주권을 받아 비자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진지 3개월 되었다. 아이들도 무리 없이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고, 소통에도 더 이상 문제없는 수준이 되었다. 아내도 비슷한 업종의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들, 딸아이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모른다. 나 또한 고3 때나 했을 법한 진로 선택의 고민을 40대 중반에 다시 하게 되었다는 것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또 하나의 기회라면 기회려니 생각하기에 꽤나 괜찮은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아들네를 만나기 위해 부모님과 형이 한국에서 오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코로나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 드디어 가족들을 볼 수 있다니. 그립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그냥 같이 놀고 싶고, 맛있는 것 함께 먹고 싶고, 때로는 말싸움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 11살 때 남의 집에서 심부름하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버지의 올해 연세는 79세. 68년을 쉼없이 일하셨다. 비행기는 내가 결혼한 후에 가족 모두 제주도 여행 가면서 타신 것이 처음이었다. 극장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을리 만무하다. 일이 취미고, 일이 특기고, 일이 연애 대상인 분이 내 아버지다. 그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서 올지 말지 고민하고 계신다. 


 헐떡이는 목소리. 엄청 숨가쁜 말투. 물어보니 걷다가 전화가 와서 길가에 세워진 차에 기대서 전화를 받고 있단다. 나와는 달리 키가 크지는 않지만, 나와는 달리 손뚜껑 같은 손에 대장군 같은 기개가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힘들어서 차에 기대서 전화를 받는 모습이라니. 내 속에 아버지는 50대에 멈춰있나 보다. 4년 전에 만났을 때 허리가 약간 굽은 모습이 어색하긴 했어도 목소리는 까랑까랑했는데.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유쾌한, 희한한 매력을 지닌 분. 목숨 걸고 책임을 다하고, 맡은 일을 해낸다는게 영화 주인공이나 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하구나를 느끼게 만든 분. 옛날 아버지 같은데, 너무나 요즘 아빠 같은 분. 그런 분이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쳐서 그렇게 보고 싶은 손주손녀 보러 오는 길을 갈등하고 있다니. 도저히 믿기 힘든 소식이 전화 통화 첫 마디만으로 내 몸에 휘몰아치며 믿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열심히 살았고, 힘들어도 잘 버텨와서, 지금은 나쁘지 않게, 아니 꽤 잘 살고 있다. 매주 나가는 집세를 위해 여전히 매일 일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 또한 가족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여러 모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죄책감이 느껴진다.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나만 너무 잘 살고 있는건 아닌가? 아버지는 저렇게 헐떡인 숨을 삼키며 통화조차 쉽지 않은 상태로 또 어딘가 있을 병원을 찾아 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삶을 살아도 되는가? 


 마음속에 여러 가지 질문과 답과 반박이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이 한 마디만 남는다. 


 분명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죄책감이 올라온다. 

202301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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