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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an 09. 2023

차를 몰라서 알게 되는 나

사람, 무식, 그리고 소통

 뭔가를 모르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면 짜증이 확 올라온다. '그럴수도 있지' 혹은 '다 알 수 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몰라서 짜증나고, 모르는 세계에 발을 디뎌 헤매는 것도 싫고, 이해(또는 포기)하게 되는 과정 중에 겪어야 할 지식 습득이 주는 고통도 영 별로다.


 최근에는 차가 그랬다. 정확히는 그러고 있다. 기어를 바꾸는데 턱!턱! 거린다. 거슬린다. 차를 운행하다가 60km가 넘어가면서부터 rpm이 미친 분(?) 널뛰듯이 지 맘 대로다. 불안하다. 정차해 있다가 주행을 시작하려고 악셀을 밟으니 rpm은 올라가는데, 차가 나가지를 않는다. 뭐 이런... 뼛속부터 문과 혈통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관심 있는 것만 눈 여겨 보는 외골수라 그런지, 이상주의적인 인프제라 그런지, 비싼 차, 멋진 차, 빠른 차, 고급 차, 전기 차... 따위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게 차는 교통수단이자 생활용품의 차원이지 시간을 내고, 돈을 써가며 알아가야 할 애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럴까? 이런 차가 내게 애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이다. 마침 와계신 장인장모께서 내색은 안 하시지만, 차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를 않으니 얼마나 불편하실까 하는 마음에 괜시리 죄송스럽다. 우리 가족끼리만 있었어도 아주 불편한 상황이긴 하지만, 어른들까지 와계신데 마음 편히 차로 모시고 다니기가 수월하지가 않아 마음이 참 거시기하다. 


 한국인 정비사에게 뒷통수 세게 맞고, 동네 서양인(?) 정비사에게 갔다. 이들의 일반적인 속도를 훨씬 뛰어넘어 하루가 안 되어 미션 오일을 교환하고, 진단을 내리는 DC 플래쉬 급으로 일처리를 해주었다. 문과인인 내게 이과 공부는 넘사벽의 그것이다. 머리가 하얘지는게 아니라 까매진다. 자동차 지식이라는 암흑 속을 걷는 중이다. 오랜만에 흰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라는 말이 생각난다. 또한 외골수가 내 세상 밖의 것까지 힘을 내어 쳐다보려니 눈이 빠질 듯이 아프고, 스트레스가 차오른다. 평소 같으면 모르는 내 탓을 하며 짜증 지대로 낼 텐데, 40대 어른답게 짜증낸다고 될 일도 없고, 자동차 정상화를 위해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찾았으니 내일 아침에 부품 찾아 삼만리를 하면 된다는 성숙한 마음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주어담기에 바쁘다... 하더라도 몰라서 헤매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내가 별로다. 


 또 한 편으로는, 20년 넘는 시간 동안 영어가 그랬다. 21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하던 내 시절에 영어는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외국어 영역의 문제가 이런 뜻이구나 정도의 수준으로 지방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인가. 영어 과목의 과제를 발표하던 내게 담당 교수님이 한 마디 하셨다. “OO이는 조금만 더 공부하면 번역가를 해도 되겠어!!ㅎㅎ” 이후에 나는 번역가가 되었을까? 글쎄... 어릴 때는 밥술을 뜨다 말면 숟가락으로 머리를 얻어맞거나 세차게 욕을 먹었다. 밥상머리에서 그러는거 아니라고, 복 다 나간다고. 나는 밥술을 뜨다 만 번역ㄱㅏ였다. 그래서 번역가의 복이 나가버린걸까? 번역을 했으나 출판이 된 적은 없고, 번역사 시험을 준비했으나 시험에 응시하지는 않았다. 듣기. 특히 듣기가 정말 shit이었다. 지금도 20년 넘게 크고 작게, 굵고 짧게, 깊고 얕게 영어 익히기를 연명해온 나보다 영어로부터 자유로운 마인드로 살아가는 아내가 훨씬 더 영어를 잘 알아듣는다. 잘 해야지 하는 강박이 긴장하게 만들고, 틀리면 안 된다는 완벽주의가 모두 알아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다 놓쳐버리게 되는 그 순간, 이미 앞의 문장들은 슈슈슉~ 흘러가버렸고, 그 때문에 멘탈이 철저히 바사삭 된 나는 듣고 있는 말에도 마이동풍이 철저히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으나, 대학생 때 교수님의 칭찬 한 마디가 내가 영어로 인정받을 수 있구나 라는 점을 깨달아 동기부여가 된 순기능이 있는 반면, 어쩌면 외골수인 내 관심 밖에 있던 영어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며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는 일을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놓지 못 하며 ‘잘 못 해도, 잘 몰라도 나는 영어를 놓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위안 삼고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현재까지는 내 평생 사람이 그랬다. 알아도 알아도 모르겠고, 모르니 모르는데로 살겠다며 내팽겨 치려다가도 놓지 못 하고 알고 싶은게 사람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인생이 지랄맞을 때도 있고, 지랄맞은 사람 때문에 지랄 같은 기분일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라 골백번이다. 그래도... 사람을 알고 싶다. 사람만큼 애증이 수시로 오가는 매력적인 대상이 또 있을까? 사람 공부(도를 아십니까와는 상관이 없다ㅎㅎ)도 해보았고, 관련 직종에도 있어보았고, 어려서부터 내가 누군지, 사람은 왜 사는지, 나는 쟤랑 왜 이렇게 안 맞는지, 이렇게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왜 받아주는지 등 사람에 대한 고민이라면 별의별 희한한 질문들을 해온 나란 사람이지만, 오늘도 여전히 사람은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사람만큼은 알고 싶다.  


 어떤 것에서 +1이 되어 득템하면 뿌듯하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고, 내가 보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으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기분 좋은 일이 한 가지 일어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기분 안 좋은 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보, 희생, 인내, 노력, 긍정, 감사... 와 같은 말들은 정말 많이 들어본 익숙한 말이지만,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나는 딱 이 정도의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좋은 사람이나 위대한 인물이 갖고 있는 특성들은 내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앞으로도 장착하기는 쉽지 않을 듯. 쥐어짜낸 자기 합리화로 오늘 하루의 차짜증을 물리치자면,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을 정말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도...(테스 형이 한 말과 비슷한가??^^;) 모르는 것을 알지 못 하게 될 때마다 자신을 바보 취급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바보 취급하면서 바보처럼 행동하게 되더라. 노력해도 모르는 것이 알아지지 않으니 내가 나를 등신 취급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등신 취급해온 시간 동안에 나는 내 살 깎아먹으며 내 존재감을 내가 까먹고 있더라. 


 가수 양희은 님이 말씀하셨던가? 


그러라 그래.

 무식이 주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져갈수록, 내가 나를 좀 더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어간다 하겠다. 신경이 아주 안 쓰이지는 않겠지만, 주변 사람들이야 그러라 그러고.


 2023010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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