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콜과 구공탄 Feb 03. 2023

지금 제겐 시간이 중요합니다

사람, 여유, 그리고 소통

 ‘차를 수리하는데 까지는 10일 정도 걸립니다. 단, 부속품을 구하는데 드는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23년을 구입한지 1년 밖에 안 된 2011년 7인승 차의 고장으로 시작했다. 몇 곳의 정비소를 거쳐 어느 한 곳에 정착(?)한지 이제 열흘 정도 되었다. 그 전의 정비소에서 3주 동안 부속을 찾지 못 해서 결국 다른 곳을 알아보게 되었다. 자동차에서 미션이란 부분이 엔진 다음으로 중요하고, 비싸다는 것을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다. 수리 가격을 듣고 놀랐고, 부품이 안 구해져서 더 놀랐다. 내가 타는 차는 7인승 중에서는 이 나라에서 나름 국민 패밀리카이기 때문이다. 


 차를 잘 몰라서, 영어가 온전히 다 안 돼서 몇 번 시도해보았던 정비사와의 현장 대화를 그만 두었다. 외지로 휴가를 와 있는 탓도 있지만, 결국은 변명일 뿐. 전화로 현지 정비사와 영어 대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내가 사는 곳에 있는 지인 찬스를 써서 부탁해 정비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에서 거의 두 달의 일정으로 와계신 장인장모를 차 문제로 제대로 모시지 못 해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 2주가량 있으면 귀국하시는데 차 수리는 함흥차사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현지 정비사에게 전달되기를 바람으로 답신을 쓴다. 


 문제...라기 보다는 꽤 심각한 변수가 생겼다. 의도를 전달할 만큼의 답장은 썼는데, 나의 이 애끓는 간절한!!!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일까? 이 표현을 쓰고 싶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속을 누가 돌로 가득 막아놓은 것 같았다. 무거웠고, 인풋된 것들을 아웃풋시킬 수 없었다. 


 ‘지금 제겐 시간이 중요합니다.’ 


 시간은 영어로 time이다. 그런데 이걸 ‘Time is important now.’라고 하면 나의 급박하고, 절절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글쎄... 20년 넘게 영어를 익혀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외국어, 특히 영어는 일대일 번역 형태가 아닌, 상황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말을 바꾸는 연습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It’s beautiful. 라고 한다고 하면, 이게 언제, 어디서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내가 중학교 때 알파벳 배우고 거의 처음 들었던 단어 중 하나인 beautiful은 ‘아름답다’라는 한국인도 평상시에 잘 쓰지 않는 말의 의도로만 쓰이지 않는다. 사람이 예뻐도, 풍경이 좋아도, 스치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도, 새로 리모델링한 집 내부공사가 잘 됐을 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결국 ‘beautiful = 아름다운’이라는 방식의 단어 암기는 한국인이 영어표현이나 단어를 적절하게 쓰지 못 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교육법이라는 (생뚱맞은 결론의) 생각이 든다. 문득 15년 전 영어 강사로 지원했던 대형 C 어학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의 풍경이 떠오른다. 한 번 수업 때마다 치르는 찰나의 단어 시험을 위해 이 삼 백개의 단어를 매번 외워야 했던 아이들은 버스고, 학교고, 집이고 두꺼운 암기장을 들고 다녔던 불쌍 그 잡채였다. 그때 암기장 앞쪽에는 beautiful이 있었고, 뒤쪽에는 아름다운 이 있었더랬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버스 안에서 친구들이랑 장난도 못 치는 십대들이라 안 돼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외운 beautiful을 막상 쓰려고 했을 때 맞닥뜨릴 그 난감함이 치열하게 외운 열의에 비해 얼마나 큰 상실감과 좌절로 돌아올지가 가늠이 되어 더 큰 씁쓸함으로 남았다.  


 그럼 나는 ‘지금 제겐 시간이 중요합니다.’를 영어로 어떻게 써 보냈을까? 자존심 상하고, 쪽팔리고, 어이없고, 허망하지만... 그 말은 쓰지 않았다. 일단은, 정확한 어감을 전달할 자신이 없었고, 아무런 표현도 결국은 생각해내지 못 했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뭐랄까... 관망의 여유? 랄까? 그런 게 생겼다. 전에는 쉬워 보이는 표현을 모르면 나 자신을 굉장히 학대하고 몰아부쳤다. 그 셀프 채찍질을 에너지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영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 나의 심리적 체력에 스스로 스크래치를 내가면서 배워서는 안 됐고, 그렇게 한다고 영어가 되는 것도 아니더라. 설령 되더라도 나중에는 엄청난 숙취처럼 반드시 부작용으로 돌아온다. 다행히, 못 하면 못하는 대로 놔버리지는 지경까지는 안 갔다. 두고두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이것을 관망이라고 부르고 있다. 20년 전에 내가 보면 웃기고 환장할 노릇이다ㅎㅎ 


 time은 여전히 내게 important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period나 duration, hour나 minute가 될 수도 있고, 중요한 정도는 depending on priority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차 수리에 대한 내 끓는 답답함을 표현할 말을 도저히 모르겠더라. 시간이 중요한데, 마치 시간이 상관없는 것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데 이렇게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참 우습다^^;;


 내가 모르는 뭔가를 마주할 때, 낯선 상황에 부딪혔을 때, 원치 않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 드는 느낌과 올라오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려움과 불안.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받아치는 그 후의 나의 뤼애액션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 짜증낼 것인가? 관망의 여유를 가져볼 것인가? 동기부여로 삼을 것인가? 모르면 모르는데로 살 것인가? (god의 노래처럼) ‘포기할텐가 주어진 운명(또는 상황)에 굴복하고 말텐가?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고, 만나는 사람이 적을수록 마주하는 어려움과 위기와 좌절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40대 중반에서라도 이런 걸 알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정말 행운이지 싶다. 너무 좋아 황홀한 정도인 여행지에서 조차 느끼는 생소함 앞에서도, 고쳐지지 못 하고 있는 차를 고쳐달라는 간절함도 전달하지 못 하는 무식(?) 앞에서도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다. 시간을 막 보내지는 않은 것 같은 나만의 위로로 아침을 열어본다. 그나저나 역시나 인생은


시간이 중요해^^


20230203 08:54

작가의 이전글 공감하면 잘 살 줄 알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