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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Feb 05. 2023

왜 저러고 살까

사람, 사연, 그리고 소통

 노사연, 노라이프. 무슨 뜻일까? 글을 쓰려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 말로 시작해야겠다 싶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종종, 아니 어쩌면 매일 우리는 왜 저러고 살까 싶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옷깃을 스치고, 동시에 깊이 얽히며 살아간다. 그 모든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렇다. 그저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는 틀리고, 나는 옳은 삶을 살아간다는 확신에서 출발한 자기만족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자기애의 근간은 나를 진정 사랑해서 라기 보다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너가 틀렸다는 희한한 명제가 주는 흐뭇함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 8시. 휴가 마지막 밤에 한 번도 가지 못 한 시내 구경을 아내와 나갔다. 잘 정돈된 환경에 시원한 풍광을 제공하던 낮과는 또 다른 나름의 밤문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감히 한국의 바닷가 밤문화에 비할까 싶은 생각으로 시작한 발걸음이 가면 갈수록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술김에 싸움이 붙어 경찰이 오고, 씨름선수 보다 더 큰 덩치의 원주민 남성 하나가 크게 넘어져 경찰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거리에는 가족들과 연인들, 친구들이 주를 이뤘지만, 스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과 얼핏 눈길을 준게 다인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길 없는 눈빛의 깊이를 갖고 있는 사람도 꽤 보였다. 어디서 왔고,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궁금했다. 


 무슨 사연을 엎고 여기 있을까?


 그러던 중 오늘 제목을 생각나게 한 사람을 만났다. 정확히는 먼발치서 보았다. 그는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좋고, 오른쪽 귓불이 시원하게 뚫린 귀걸이를 했다. 삼색으로 땋아 찬란하지만 관리를 못 했는지 부스스하기만 한 백인 남성이었다. 이리저리 해변을 둘러보고 있던 나와 아내는 200미터 가량 반대쪽 해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뭐지? 막상 불길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그냥 불이구나 정도만 확인 가능한 ‘불기’였다. 궁금증이 올라오는 바람에 아내에게 가보자고 했다. 이틀 내내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어 jaw-dropping하고, breathtaking한 경치들에게 시선을 빼앗기며 폰카만 찍어댔더랬다. 여유가 생겼는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집들과 사람들을 이제야 바라보게 되었다. 집에 가기 전날에서야 말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익숙하던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낯선 것들에서 평소 감히 꺼내보지 못 했던 호기심과 신선함을 찾으며, 만나기 쉽지 않던 나를 알아가다가 그조차 다시 일상이 되어 익숙해질 때면 돌아갈 집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 뭐 그런... 여하튼 그 불기를 향해 걸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은 사라지고 없었고, 원형의 인파와 그들 모두의 시선이 꽂혀있는 한 지점에 한 남자가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이 사람 범상치 않다


 말 그대로 사연이 장난 아니겠구나 싶은 텐션과 외모, 말빨과 연기. 거기에는 이상하게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애환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물론 그에게는 그 많은 사연들조차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 간이 플라스틱 책상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박스를 놓고 그 위에 마사지 원통 같은 걸 놓은 후 그 위에 다시 널빤지를 얹는다. 손에는 중세 고문도구처럼 생긴 칼과 톱니가 달린 막대기를 각각 들고 있다. 등 뒤에 있던 생수병에 갖고 있던 다른 긴 봉을 담근다. 가만히 들어보니 기름이었다. 거기다가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많은 사설과 한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결의 농을 관객들과 주고받은 후 드디어 시작한다. 올라가는데만 5분이 넘게 걸린다. 말하느라. 결국 균형을 잡고 올라가 세 개의 위험한 물건들을 저글링한 후, 한참을 또 관객들과 소통하고 내려온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돈을 선사한 손님이 20불이었는데, 만일 이 중에서 50불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은 그 사람 집에 같이 가겠단다^^;


 꼭 부정적인 시선으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 생각은 아니지만, 앞서 뒤섞이고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가졌던 차원과 같은 맥락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왜 저러고 살까? 집 없이 이곳저곳 유스호스텔이나 하루 잘 수 있는 아무 곳에서나 묵으며, 자신의 장비를 때때마다 챙겨 세상이 요구하는 학력도, 경력도, 기술도 아닌, 그냥 자신만의 유흥??으로 먹고 사는 남자. 어쩌면 먹고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기에 기꺼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불안정해 보이는 삶을 감당할 수 있는 간담의 소유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호응을 즐기는 듯하면서도 희한하게 그 눈빛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와 불안해 보이는 아이가 동시에 살고 있는 어른아이. 


 그가 이 글을 보면 말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쏘리라고 해야지. 이런 그만의 삶의 방식 속에서 내 삶의 방식도 돌아본다. 


 왜 이러고 살까?

 이 또한 반드시 부정적인 차원은 아니다. 다만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방향을 틀어 도전하거나 변화를 주는 것에 손톱 밑에 가시를 빼는 것이 나은지, 잘라버리는게 나은지 고민하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방황하는 눈동자로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는 것뿐이다. 


 나는 내 삶과 내 꼬라지와 내 진로와 내 직업과 내 생각과 내 미래와 내 습관과 내 말투에 관심이 많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극도로 자기애적이다. 그러다보니 앞서 말한 것들을 갖고 살아갈 다른 사람에게도 지극히, 극도로 관심이 많다. 결과적으로 눈치 보는 성격이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겠지.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 것 같다. 배려가 때로는 눈치 보는 방식이 되고, 보다 나은 것을 위해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이 남의 처지도 모르면서 오지랖 부리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그때 물과 같이 살아야겠지 하면서도, 물이 가진 융통성과 투명성 보다는 수천년의 시간을 들여서라도 돌과 바위의 모양을 바꾸고야 마는 고집만 취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래서... 내 자신을 갉아먹고, 옆사람을 놓치는 것만 조심한다면, 그냥 계속 이런 식으로 사연 만들어가며 살련다. 


 왜 이러고 살면 어때서?


20230204 15:24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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