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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ul 15. 2022

등짝 스매싱

사람, 찐친, 그리고 소통

“중2냐? 중2?! 이게 뭐라고 팔뚝에다 이 지랄을 해놔? (등짝 빡!) 당장 지워!”
“아 미쳤어? 왜 남의 등짝을?!”
“싸가지가 없어도 등짝 한 대 후려쳐줄 사람이 없다는 건 니 인생에서 가장 딱한 일이야. 난 너 그렇게 불쌍한 놈 안 만들어. 이제 너는 나의 착한 아들이고, 매가 약이라면 나는 때린다고. 알겠어?

<쌈, 마이웨이> 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속 어수선한 분위기. 집안에만 있는 나날이 계속된다. 다양한 일을 시도해본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드라마 몰아보는 맛이 꿀(?)이다. 워낙 집에만 있다 보니 최신작부터 십 년이나 된 버럭 셰프와 공블리까지 소환하고 있다. 지인들이 그렇게 재미있게 볼 때 나는 때마침 해야 할 일들이 매일매일 많았던 시기의 드라마, '쌈, 마이웨이'를 이제 정주행 하다시피 하며 끝을 봤다.  


 드라마가 거의 끝나가고, 모두가 다 아는 드라마 속 비밀들이 밝혀진다. 여 주인공의 사라졌던 엄마가 자신의 양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싸가지가 없어도 등짝 한 대 후려쳐줄 사람이 없다는 건 니 인생에서 가장 딱한 일이야.” 우아씨... 정말 등이 시리다. 세상을 등진다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세상을 등진 등이 그렇게 시리면, 세상과 마주 보고 앞으로 가야 하는 가슴은 얼마나 더 시릴까. 가슴이 쎄하고, 휑하고, 뻥진다. 


 싸가지는 있게 살아온 거 같은데, 나만의 착각인가? 싸가지 있게 살아온 나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줄 말 한마디, 내가 싫어도 입 바른 소리 하나 해줄 사람 하나 여태껏 두지 못 한 내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고, 자세가 발라진다. 당연히 등짝 맞는 게 포인트는 아니다. 등짝 스매시를 통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너’가 엄한 짓을 하지 않기를, 그 인생이 딱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인트겠지. 어쩌면, 잘 살고 있는데 등짝을 때릴 수도 있겠지. 그건 그것 나름대로 부럽다. 마치 시트콤의 고전(?)이 되어버린 ‘세 친구’나 ‘남자 셋 여자 셋’에 흔히 나올법한 그런 장난치고, 엉기고, 농담하는 모습들. 2020년을 사는 나와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나이에 맞게, 위치에 맞게,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추기 급급한, 그렇다고 흔쾌히 그렇게 살아주지는 못 하면서, 또 마이웨이를 하지도, 못 먹어도 고를 하지도 못 하는 그런 어중간한 삶. 그래서, 등짝 한 대 때려줄, 나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너'가 고픈가 싶다. 


 한 대의 등짝 스매시에 서러워지는 밤, 눈물이 도둑같이 슬쩍 맺히다 만다. 


20200422 00:26 - 202207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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