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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ey Jan 15. 2021

나의 옷, 나의 인생


 매일 차려 입으려 한다. 날선 팬츠의 모습, 가지런히 꽂힌 셔츠 카라 사이의 타이핀. 내게 어울리며 꾸미는 것을 잘 알아서 공식처럼 스타일이 정해져 있다. 타인이 봤을 때 어렵게 느껴지는 포멀 스타일이 내게는 제일 쉬운 것임을 가끔은 잊는다. 매우 포멀하고 정돈되었지만 그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몇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만의 공식을 만들었고 샤워를 하면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 그만큼 내게는 그게 행복이자 나를 표현하는 즐거운 놀이 중 하나이다.


출처 :그레이트 뷰티 중 한 장면 / 언제까지나 이렇게 늙고싶다.

 서른 중반이 넘고 월급이 조금은 만족스러워진 연차가 된 후로, 내 워드롭은 풍부해졌다. 대부분의 돈을 옷에 투자하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불과 대학생 시절에는 자라 같은 스파 브랜드에서 사는 5만원짜리 셔츠에 몇 주간은 고민했었지만 이제는 50만원 수트를 하루 이틀 정도 고민하고 구매한다. 이렇게 채워놓은 옷이 과연 몇 벌일지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수트는 40벌이 넘고 셔츠는 50벌이 넘는다. 12평 짜리 투룸에 살면서 안방을 옷으로 채운 건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괜한 생각이 든다. 나의 선택이 맞는 것일까.

 각자 자기의 삶이 있다지만 우리 사회는 비교를 많이 한다. 30대 후반이 되면 어느 정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결혼과 자손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라고 말이다. 사회 생활이 남들보다 조금은 늦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어디 가서 나름 재밌게 이야기할만한 경력을 가졌다. 하지만 난 늘 결혼과 자손에 대해서 평균치에 미달이었다. 그 아무리 대기업 출신이라 해도 결혼을 못한 노총각 계열에 올라섰다는 것이 사회와 주위의 시선이다.

 자가 주택이 아닌 세입자로 살고 있고 차는 없다. 집을 구매할 엄두는 애초에 내지 못했고, 차는 필요치 않았다. 서울을 벗어날 일이 잘 없고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음주를 하기에 차를 가져도 그다지 활용도가 높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특히 차를 유지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에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잘 맞는 비스포크 슈트를 입으면 삶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다만 옷에 대한 투자는 남다르다. 수트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 베이직한 블랙, 네이비, 그레이 싱글 2버튼 수트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베이지 컬러의 솔라로 원단 (햇빛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컬러가 베이지-브라운-레드로 보이는 독특한 원단) 수트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졌다. 그 안에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비스포크 수트에 다양한 타이핀과 행거치프, 그리고 타이가 함께 한다.

 구두는 일관성 있는 블랙으로만 유지하되 디자인의 다양성을 가졌다. 잘 맞는 스페인 메이드 구두만을 고집하여 한 켤레에 보통 40~50만원 하는 '까르미나 구두'를 다양하게 구매하였다. 처치스나 알든 같은 단단하고 투박한 구두보다는 까르미나처럼 부드럽고 날카로운 디자인의 구두가 나에게 잘 맞았다. 구두야말로 고집있게 컬렉션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처럼 나는 누구보다 옷에 대해 진심이다. 늘 꿈꾸던 나의 모습은 포멀 그 자체이다. 회사, 식당, 바 어디를 가던 여유있는 혹은 열정적인 포멀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나의 마음가짐과 능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워드롭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했고, 옷을 선택했다. 결혼, 집, 차 보다는 옷이 내가 꿈꾸던 모습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나는 옷을 선택한 것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내가 대답해 줄 것은 하나다.

 "만약 내가 옷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도 옷에 대한 대화도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언제까지나 나만의 스타일과 영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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