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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Apr 22. 2022

작은 집의 쓸쓸함



 서울의 면적은 사실 부산의 면적보다 다. 서울의 면적에 서울의 인구수를 나누면 놀랍게도 63.3제곱미터 밖에 되지 않다. 이웃나라의 수도인 도쿄의 157제곱미터와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주거공간은 확실히 넓다.

 책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에서는 "중산층이라는 허황된 구호가 마치 삶의 의미를 깔때기로 모은 것처럼 집이라는 공간으로, 수도권 신도시의 32평 아파트에 모이는 것 같다"한다.



요즘은 좁지만 취향이 분명한 집들도 많이 소개된다. EBS '건축탐구 집'에서는 그러한 집들을 보여주는데, 진행자인 임형남 건축가는  공간을 차지하는 '안쓰는 짐'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가족과 좁은 오피스텔  필수적인 물건만 가지산 적이 있는데, 그 경험 이후 그는 쓰지 않을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살았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은 큰 평수의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공간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채우는 창고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스스로에게 알맞은 공간을 고심하고 그 공간을 잘 쓰려는 시도는 내 것이 아니었던 욕망을 절제하며 스스로의 것에 애정을 갖게 한다. 그러고보면 작가 에쿠니 가오리또한 신혼집을 살 때 자신은 단 두 가지만을 원했다고 한다. 욕실에 창문이 있고, 욕실 벽이 타일인 집이었다. 그만큼 목욕을 좋아했던 그녀가 결혼해서 집을 떠날 때, 그녀의 어머니는 "정말 양서류를 키우는 기분이었다며 물에 빠졌는지 이제 확인하러는 안가도 될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고.



 에쿠니 또한 선호했을 것 같은 4년 간 지낸 원룸은 거실에 비해 욕실이 비정상적으로 컸다. 몸만 한 머리를 가진 짱구 같았다. 커다란 플라스틱 욕조를 산 뒤로는 반신욕은 양치질같은 일상이 되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내 던지듯, 미온수가 받은 욕조에 몸을 매일 던졌다. 큰 욕실을 뺀 작은 원룸의 공간을 알뜰히 썼다. 가구를 옮기다가 '완벽한 배치다.'라는 결론이 서면 한동안은 완벽한 집에 사는 듯했고, 원룸에 알맞은 작은 소품들을 주문하고 기다릴 때면 더 좋은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좋았다.



 원룸이 마냥 답답하지 않았던 건. 바닥에서 천장까지 층고가 높았고, 그에 맞 큰 창문이 있었다. 창 밖에 높은 건물이 없 넓은 하늘을 그대로 볼 수 있었고, 서향인 덕에 노을빛 자주 들어왔다. 매일 찾아왔는 손님같은 노을을 유심히 본 날은 또 드물었지만 말이다. 원룸 숙소는 회사에서 운이 좋게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행운을 소중히 하려 했다.

원룸의 창문에서 본 계절


 그런 행운을 잡은 일이 스무 살 때도 있었다. 대학교 기숙사에 극적으로 들어간 일이었다. 대학교는 섬에 있었다. 섬에 있어서 등하교할 때 보트를 타고 갔다고, 나룻배에서 노를 저어 갈 때도 있었다고라고 말하면 믿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여행에서 만난 이가 인하대학교가 인천하와이대학교라는 장난 같았던 말에 장난으로 받은 것이었는데, 인하대학교의 유래는 사실이었다.

 하와이 교포들의 정성 어린 성금 등으로 인천에 설립된 학교였던 것이었다. 그에 반해 섬에 있는 학교에 오고 가기 위해 보트를 탈 일은 없었다. 육지와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뛰어서 5분이면 통과하는 다리가 있었다. 섬 내에 기숙사가 있었는데, 특히 1학년이 주로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 해를 말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에서 대학 신입생이라는 신분의 변화는 마치 채찍질당하는 당나귀 같은 삶에서, 당나귀를 타고 유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대학교 신입생들은 고난 끝에 관광하는 여행자들 같았고, 내일의 걱정은 접어두고 오늘을 즐겼다. 기숙사 동기들은 삼시 세 끼를 같이 밥 먹고, 마지막 사람이 다 먹은 걸 확인하고 같이 일어났다. 출출해지는 매일 밤엔 방파제를 건너 오래된 분식집으로 갔다. 항상 똑같은 메뉴와 막걸리를 시켰다. 알맞게 취해 파도가 쉬지 않는 방파제를 걸으며 낭만 속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2층 침대, 이어진 책상, 공용샤워실 등 좁은 공간의 기숙사는 짧은 낭만의 시간을 공유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좋은 시기와 좋은 사람, 그 둘을 단단히 동여맨 공간 안에 있었다. 고향을 물어보는 이에게 대학시절을 보낸 부산이라 말한 건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구해줘 홈즈' 정다운 작가는 집을 소개할 때 "집은 함께할 사람과의 추억을 만들어갈 곳"임을 강조한다. "얼마큼 오를지 호재를 알려주기보다, 집은 자산이고 자산은 곧 행복이다." 이라기보다 말이다.


 

 유튜브를 통해 젊은 미니멀리스트 커플을 볼 수 있었다. 둘은 24평의 주택에서 숙박공간을 운영하다 동해시의 8평 원룸으로 이사했다. 둘의 집에 가구는 큼지막한 책상 하나이다. 좁은 집이지만, 작업실로도 사용하며 수제노트 브랜드를 운영한다. 그들은 단순한 삶을 실천하고 그것에 대한 만족을 말한다. "잘 사는 건 집을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것이다."는 임형남 건축가의 말을 그들은 실천하는 듯하다.

 둘은 말한다. 넓은 집이 아닌 작은 집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 노동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이로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그만둘 수 있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은 자주 여행하고, 책을 읽고 운동하며 사색한다. 책 피로사회에서 말한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자,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발터 벤야민)라는 깊은 심심함에 다가가는 듯하다.




* 커버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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