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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Mar 02. 2023

혼밥-소모임-당근마켓

뻔뻔스러운 도시살이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먹고 싶은 걸 원할 때, 기다림 없이 오롯이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현관을 나가 조금 걸으면 다양한 식당들이 혼자를 맞이해 주었다. 한식, 일식, 중식 그 안에서도 선택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주변 테이블이 사람들로 차있을 때, 음식을 기다리며 초조해졌다. 금요일 저녁은 혼자 삭이기에 가장 번거로운 시간이었다.



 매일 가는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넓고 층고도 높은 카페는 유리창으로 하늘과 강을 담기도 했지만, 주변이 사람들로 가득해질 때, 그 경계심을 없애주진 못했다. 둘, 셋, 넷, 다섯, 여섯 명의 사람들이 주변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을 때,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구 씨의 대사처럼 다수에게 혼자는 경계대상이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 다수는 경계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이 분리에 대한 불안을 자세히 말했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인간적 힘을 사용할 능력을 상실한 채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무력하다는 것, 세계-사물과-사람들-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p25)






 어떤 외로움은 분리되었다는 느낌과 더불어, 스스로를 느끼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때는 무언갈 먹고도 보고도 맛있다고 멋있다고 하기 어려운, 하더라도 메아리만도 못한 공허한 소리를 듣는 순간이다. 그건 결국 맛과 멋을 느끼는 나라는 존재마저 무의미해지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대학 때 한 교수님은 영화 '클로저'에서 나탈리 포트만의 명대사 'Hello, Stranger(안녕, 처음 온 사람)'을 소개했다. 교수님은 처음 보는 이와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모임이 서울에는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에 갔을 때 네이버 카페를 통해 낯선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고 다시 받음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인식했다.



 혼자인 상태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외로움의 무게가 다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요즘 처음 보는 이들과의 모임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다. 최근에는 누군가 당근 마켓에서 같이 저녁 먹을 사람을 구하는 글을 보았다. 그렇게 세 남자가 모여 음식을 먹고 걸었다. 사람이 고플 땐, 뻔뻔스럽더라도 찾아 나서 만나면 나아졌다. 나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것은 누군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스스로가 착한지, 엉뚱한지, 악한지, 이상한지, 현명한지, 강한지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진출처: 구글스토어 소모임,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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