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3)에서 이민자들과 동물들을 태운 선박은 폭풍우를 만나 난파를 당한다. 이 이야기가 이목을 끄는 것은 소년 '파이'가 뱅갈호랑이와 보트에서 표류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소년 '파이'는 리처드파커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게,뗏목을 만들어 같이 표류한다. 가족을 잃은 파이는 리처드 파커부터 살아남기 위해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그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산다.
그런데 파이가 단 한 번도 호랑이라고 부르지 않고, 리처드 파커라고 부르는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로 은유되는 것은 분노라는 감정처럼 보인다. 호랑이는 영화 초반부에 이미 어린 파이와 만났었다. 어린 '파이'가 성당에서 형 때문에 누명을 썼을 때, 그때 파이는 동물원에 갇혀있는 에게 가 먹호랑이를 줬다. 이처럼 어린 파이가 형에 대한 분노는 키울 때, 아버지는 그것의 분출을 거세한다.
이전에도 파이에게 감정보다는 이성을 강조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파이가 보란듯이 살아있는 염소를 리처드파커에게 던져준다.염소가 리차드파커에게 뜯어먹히는 것을 어린 파이에게똑똑히 보게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분노에 대한 분노로써 아들의 분노를 폭력적으로 무너뜨린다.
이후 청소년이 된 파이는 자신의 이름을 원주율(파이)로 당차게 소개하던 어릴 적과는 달리, 감정이 억눌린 삶을 사는 사춘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가족들과 이민을 가던 도중에 선박에서 사고가 났고,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렸을 적 동경했던 리처드 파커(분노)에 의지한 것처럼 보인다.
리처드 파커와 표류하던 도중에 폭풍우를 만난 파이는 처음 신을 원망한다.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리처드 파커를 보며 하늘을 향해 "전 가족을 다 잃었고, 전부를 잃었다."라고 분노할 때, 파이는 신에게 이 분노(리처드 파커) 밖에 남지 않는 자신인데도 죽이려 하냐는 듯 따지는 듯하다.
이러한 파이가 구조되기 직전에 리처드파커를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것인지, 신에 대한 것인지, 어머니를 죽인 이에 대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 분노의 대상에 대해 용서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은 1884년 영국에서 호주로 가던 미뇨네트 호 조난 사건이다. 난파선에서 구조된 3명 중 선장은 죽어가는 선원 1명 살인하여 식인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선장은 이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들 살인은 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동정 여론에 힘을 얻어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분노에 의지한 것이 용서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