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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Feb 25. 2023

의지하는 쓸쓸함

고슴도치를 들이게 된 이유




 걷기 모임으로 만난 동네 친구와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솔로의 삶과 취미와, 그것 또한 노잼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 직장에서 퇴사한 그는, 퇴사 직전에 결혼 생각을 했다고 했다. 힘든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 버텨내기 위해 그가 생각한 것은 결혼이었다. 그가 연애 중이 아니었기에 의아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아버지와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던 엄마는 할머니의 추궁에 못 이겨 선을 봤고, 이번에도 결혼을 안 하면 안 보겠다는 할머니의 기세에 '에나 모르겠다' 하고 결혼을 했다. 인생을 건 도박을 한 그녀의 결혼생활을 순탄치 않았다. 그녀는 남편과의 힘든 결혼생활에도 8년 지나 늦둥이 자식을 낳았었다. 궁금했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오류였는지, 아니면 바라던 계획이었는지, 어떻게 계획적이었을 수 있는지 물어보면 어머니는 몇 가지 대답을 했다. 8살 많은 누나가 간절하게 동생을 원했다는 말이었고, 다른 대답은 '네 아빠랑 한번 살아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식'이라는 도박을 한번 더 감행한 것이었다.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 알랭드 보통은 결혼에 대해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으로 정의했다.  






 이 도박 같은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데 스스로도 비슷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작년에 고슴도치를 입양한 일이었다. 고슴도치를 일 년 동안 알아보고도, 데려오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다 고슴도치를 입양한 때는 의아하게도 여유가 없고 다급한 때였다. 벼락치기 시험을 준비하며 힘들 때였다. 얼른 공부하려 덮밥을 먹으면서 본, 그때 고슴도치 카페에서 본 입양 글에 이끌리듯 그날 입양을 했다.



 그렇게 가시를 가진 기이한 생명체를 차 뒷좌석에 태우고, 방지턱을 조심히 넘어 집에 데리고 오는 과정은 간단했다. 낯선 공간에 온 고슴도치는 조그만 소리에도 쉭쉭 댔다. 하지만 새벽이 되자 은신처에서 나와서 쳇바퀴를 탔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보며 고난한 시험 준비는 덜 중요해졌다. 그러나 원래 주인이 생후 8개월 되었다고 말한 고슴도치는 1년 8개월 된 고슴도치였고, 심한 비만과 피부병을 갖고 있었다.



 특수동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각질로 인해 약물을 떨어뜨린 목욕을 매일, 충분히 피부를 불려서 해주어야 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성년의 고슴도치를 목욕시키는 건 쉽지 않았다. 손으로 잡으려 할 때, 고슴도치는 빠르게 몸을 말며 가시로 할퀴었다. 그렇게 고단한 시험을 준비하던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더 고단해지는 선택을 했었다.



 삶의 중요한 선택에는 책임감이 따르는데, 그것을 짊어질 용기는 왜 삶이 코너에 몰렸을 때야 비로소 나오는 것일까. 결혼, 아이, 반려동물이라는 선택은 삶의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 일까, 의미나 희망이라도 가져보려는 시도인 걸까. 혹시 그저 의지하려던 것은 아닐까, 존재 자체에.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존재 자체에만 의지하는 일이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때 사람은 강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과 돈과 명예를 추앙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소유하고 있는 존재에 의지한다는 건, 갖고 있는 걸 추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추앙은 아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할머니라는 존재에만 의지하는 '지안'이 나온다. 그녀는 여섯 살에 병든 할머니와 단둘이 남겨졌, 성인이 되고서도 사채업자의 폭력으로부터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보살핀다. 그런 그녀는 무섭도록 강하다. 그런 그녀에게 착하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슬픈 삶을 도청하면서, 그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는 다음 작품 '나의해방일지'에서는 존재 자체에만 의지하는 일을 '추앙'이라 말하는 듯 하다. 극 중 미정이 구씨에게 추앙하라는 말은 의지이면서 반성과 다짐이였다.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볼 거라고"

"당신이 미워질 것 같을 때마다 얼른 속으로 빌었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기를,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하루도 없기를. 근데 난 불행하니까 욱해서 당신을 욕하고 싶으면 얼른, 어디다 화풀이를 해야 될지 모를 때마다.."



 누군갈 추앙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마음 속 불만은 쌓인다. 그 불만은 마음 속을 점점 채우다가 다른 대상을 찾아 결국 터뜨린다. 쌓여가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미운 놈 떡하나 더 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에리히프롬이 책 '사랑의기술'에서 말한 것처럼 명상이라도 해야할까.



 어김없이 찾아와 소중함을 무력하게하는 권태라는 거인 앞에서 지금 옆에 있는 것을 추앙하는 건 쉽지않다.

하지만 '지안'과 '미정'이 한 것처럼 어느 하나를 추앙하는, 성역의 대상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 것이다.  존재에만 의지할 수 있을 때 가장 소중했던 자신의 감정이 별거 아닌게 되는 경험을 할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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