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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렌지 Mar 03. 2023

어리광이 용기가 될 때

 


 어느 날의 실수에 대해 1년 동안 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다. 그 실수를 수습할 수 있는 기간은 눈깜짝할 새 끝나 버렸고, 책임만 남 상태였다. 그 일로 인한 장기적인 손해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후회했다. 그 일에 대 책임을 받아들이 않고, 위로를 바라기만 했다. 징징거리기만 했다.

 


 1년이 지나갈 때까지 그 일을 곱씹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스스로를 마주했다. 그제야 이게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심리 상담센터를 알아보며, 그 일 진지하게 마주했다. 거액의 상담료에 대해 놀란 후, 상담사라면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라고 며칠을 생각한 이후에야 그 일에서 상당 부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글 본사에서 HR(Human Resource)담당한 황성현 대표는 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왜 아시아 출신은 경영진이나 CEO로 성공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전문인력들과 3개월간 이유를 찾는다. 그중 한 가지의 이유로 아시아 사람들이 '약점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Vulnerability)가 부족한 것을 꼽았다.



 서양에 비해 아시아권은 문화는 집단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로 알려져있다. 그것은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해서 개인의 Vulerability가 평가절하된 이유이기도하지 않을까. Vulerability를 어리광으로 말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를 보다 어리광이 Vulerability로 번역되는 것을 보고 몇 번이고 되돌려 본 적이 있다.



 어떤 행동을 어리광으로 볼 것이냐 Vulerability이라는 용기로 볼 것이냐의 차이는 문제를 덮어둘 것이냐 파헤칠 것이냐의 차이만큼 크다. 방송에서 익숙한 오은영 아동 정신과전문의는 어린아이의 어리광을 Vulerability로 보면서, 아동의 심리적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했다. 이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어리광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했다.



 우리말에서 Vulnerability가 쓰일 때는 일상이 아닌 보안 분야이다. 취약점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Vulnerability는 '약점'보다는 '관리되는 결점'이라는 의미가 있다. 약점이 '떳떳하지 못한'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포함한다면, 취약점은 지속적으로 발견하여 보호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결점이다. 이렇듯 조직의 시스템에서의 취약점은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개인의 Vulnerability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TED 강연에서 브렌 브라운 박사는 우리가 개인의 취약성을 마비시키는(We numb Vulnerability)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채가 많고 비만이고 중독이고 약물을 복용하는 세대라고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문제를 덮어두는 세태는 "맥주 두어 개나 마시고 바나나 머핀이나 먹자."라고 결론지어지는 것이다. 이는 책 피로사회에서 한병철 교수가 말한 '긍정성의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 말한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다.



 사춘기때부터 먹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을 믿었다. 시간이 지나서는 미디어에서 고칼로리의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을, 의미 있는 놀이로 취급해주었다. 그런 탓만은 아니겠지만, 오랫동안의 과식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다. 잘 고쳐지지 않아 이 습관의 의미까지 생각해볼 지경이었다. 푸짐한 식사와 디저트까지 먹을 때의 만족감이 크다고 쳐도, 과식 후의 복부팽만감같은 더부룩함까지 감수하게 되는 건 왜일까.



 과식은 집에서도 긴장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고, 그러한 고통으로 온전한 휴식의 시간은 부족하게 됬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온전한 휴식에 대한 불안감이 과식습관을 부른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고보면 과식을 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도 했다.

 꾸준한 과식과 피로, 오랜만의 과음으로 배꼽이 염증으로 붓기까지 했다. 배꼽 농양이었다. 찾아갔던 종합병원에서는 그것을 절개했고 다시 재발할 경우 개복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매일의 식단에 채소를 추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식하는 습관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의 Vulerability를 지키려면 어떻게야 할까. 어리광이 아닌 용기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면 말이다. 네덜란드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작품은 '눈물 총'이다. 실리콘 깔때기를 얼굴에 착용해, 눈물은 모은 후 극저온의 작은 통에서 냉각시켜 총알로 발사하는 작품이다. 말 그대로 눈물이 총알이 되는 총인 것이다. 작품을 만든 이페이 첸은 타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숨기면서 통제하려던 슬픔을 '눈물 총'으로 시각화시키며, 그동안 혼자 속으로 삭였던 고통을 작품으로 표출했다.



 해결법이 보이지 않던 문제가 누군가 앞에서 쉽게 해결되는 모습을 볼 때, 나에게는 없고 그에게는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닐 때도 많았다. 그건 그 문제해결에 대한 진지함의 유무였다. 그건 어리광이냐 용기이냐의 차이이기도 했다.

 어리광이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회피동기에서 나온다면 용기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접근동기에서 나온다. 어리광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면, 용기는 책임을 떠안고 그 상황과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의지 같다. 그건 상황과 감정에 빠져 있을 것인지, 빠져나올 것인지 진지함과 간절함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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