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에 데뷔하였다

눈물을 쏟다

by 박퉁퉁증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앞으로는 병원이라 부르겠다)에 찾아간 2024년 12월은 회사를 퇴사하는 날이었다.


회사는 항상 바빴고, 4월에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너무 바빠 병원에서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7월부터 난리가 났다. 임원진이 몇몇 팀을 불러놓고 윽박지르고 책상을 손으로 내리치며 이 새끼 저 새끼 소리가 나왔다. 모든 일을 직원에게 책임을 돌리더니 급기야 사람들을 불러놓고 한명 한명에게 책임 추궁을. 그것이 매주 이어졌다. 불행하게도 그 타깃은 영업팀과 우리 팀이었다.


나는 3월부터 특수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10월에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마음에는 항상 여유가 없었다. 일주일에 2번은 부리나케 퇴근하고 학교에 갔고 집에 돌아오면 11시가 가까웠다. 점심시간에는 틈틈이 과제를 하거나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어학 시험 준비를 했다. 기왕 다니기로 한 대학원 성적에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결혼식은 최대한 간소하게 하고 싶었지만, 결혼식을 하는 이상 체크해야 될 것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주말에는 축구 직관이라는 취미 생활도 포기할 수 없었다. 따뜻한 봄날에는 축구장에서 앉아 졸았던 날들도 많았다.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한 해였다.


다시 회사 이야기로 돌아가면, 어느 순간 팀 내에서 나의 위치는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커머스 실무를 해본 적이 없는 팀장님에게 매 순간 보고라는 이름의 업무 설명이 이어졌고, 같은 팀 대리님은 경력직이었지만 카테고리는 처음이었던 탓에 자리 잡기까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회사 생활은 내 마음 같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고, 회사원이니 그저 눈앞에 있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벅찬 시간들이었다.


나의 증상이 악화된 것은 여름을 지나 회사의 책임 추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연초부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은 있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시간이 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전은커녕 악화만 되어 아무리 한숨을 크게 쉬어도, 하품을 크게 해봐도 가슴은 계속 답답했다. 심장 두근거림과 어지러움은 만성화되어 있었다. 한 번은 회의를 가장한 인격 모독의 자리가 끝나고 쓰러질 것 같이 어지럽고 토가 나올 것 같은 적도 있었다. 나는 알지 못했지만 회사 일이 나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식을 3주 앞둔 어느 날 난리가 났다. 팀의 해체 수준이었다. 같이 애썼던 팀원 3명이 밀려나듯 퇴사를 해야했고 결혼식을 앞둔 나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퇴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바보였다. 진행 중인 업무를 바로 놓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퇴사 시점이 한 달 반 정도나 밀렸다. 그때 나는 회사의 바닥을 보았다. 고생한 팀원들이 떠난 빈자리는 그들의 책임론으로 메꾸어졌다. 임원이 앞장서서 고생한 사람들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빈자리도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팀장님도 나를 포함한 팀원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다. 본인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모든 상황이 혼자 남은 나를 힘들게만 했다.


새로운 팀원들이 꾸려졌다. 곧 팀을 떠날 나는 그들과 융화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회사에 있는 시간은 그저 남은 업무를 잘 처리하고, 후임을 위해 인수인계 자료를 잘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회사에 대한 감정은 뒤로 하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한 회사 소속이고 업무를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회사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처리해 준다는 처음의 약속과는 다르게 퇴사 시점이 되자 말을 바꾸었다. 황당했다. 마지막까지 회사를 위해 나의 역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빠르게 노무사와 상의를 했다. 그리고 너무나 마음이 힘들어 집 근처의 병원을 예약했다.


퇴사 날까지도 바빴다. 오전에는 남은 업무를 쳐내고 인사를 돌았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커피 한 잔씩 하다 보니 시간이 빡빡했고 거래처에 퇴사 메일까지 돌렸다. 사정을 모르는 몇몇 사람들은 마지막 날까지 내가 퇴사하지 않도록 만류했다. 고마웠지만 더는 회사에 있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회사를 나와 그 길로 병원에 갔다. 그리고 선생님을 마주하고 의자에 앉아서 한마디를 떼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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