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변화와 아쉬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10
길랭바레증후군 열 번째 이야기
○ 2022년 9월 넷째 주
여타 늘 해왔듯 모토메드를 돌리던 중, 모토메드에서 삡- 삡- 경보음과 함께 모니터에 에러메시지가 출력되기 시작한다.
처음 에러 메시지가 출력됐을 땐, 페달에 너무 강하게 저항을 주어 그에 따른 오류가 출력되는 줄 알았다.
"어? 선생님! 이거 에러 메시지 계속 나요!"
"흠.. 이런 적이 없었는데.. 또 뜨면 말씀해 주세요."
(약 5분 뒤)
"어? 선생님! 또 나와요!"
"페달을 너무 세게 밟아서 그런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상하게 밍님만 타면 그러네요."
"오.. 그럼 제가 드디어 하나 해먹은 건가요? 이 기회에 새거 살 수 있는 거죠? 오히려 좋아."
"에이~ 밍님은 맘껏 쓰셔도 돼요. 괜찮아요. 근데 새 거는.. 아마.."
"아 새 거 안 사줘요? 에잉 별로네요."
때마침 옆에 있던 모토메드가 비어있어 그것으로 옮겨 탄다.
엥? 옆에 건 소리 안 나고 잘되네.
그리고 얼마 뒤 모토메드의 기판이 오래돼서 나오는 에러메시지라는 결론이 난다.
"밍님! 소리 나던 모토메드 오래돼서 나는 소리래요~ 기판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아 이거 내부 메인보드 오류메시지 였어요? 오! 그럼 진짜 새 거 가능한가요?"
"하하.."
마지막 타임에 모토메드를 탈 때, 옆에서 SCI FIT을 돌리던 중년분이 한 분 계셨다.
그 분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곤 한다.
"밍님은 어떤 병으로 여기 오게 되셨어요?"
"전 길랭바레증후군이요. 자기면역질환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마비가 찾아왔어요."
"아 그래요? 처음에 많이 놀라셨겠어요. 지금은 좀 어때요?"
"큰 차이는 없지만 발병 초기에 비해선 미세하게나마 좋아진 거 같아요."
"정말 다행이네요. 나이도 젊어서 금방 좋아질 거예요. 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요."
"파킨슨병이요?"
"네. 그것도 길랭바레증후군처럼 자기면역 질환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퇴행성 질환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돼요."
이젠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어떠한 말인들 섣불리 하면 안 된다는 걸 이젠 알게 된 느낌이랄까.
"며칠 전 외래 갔을 때 파킨슨병을 판정받은 한 젊은 친구를 만났어요. 밍님과 나이대도 비슷할 거예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펑펑 울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감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오히려 그 친구한텐 이렇게 말해줬어요.
지금처럼 병이 아직 악화되기 전일 때, 마음껏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내가 지금은 걷기 힘들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지금 너무 낙담하지 말고, 지금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고."
아.. 이 분의 말을 들을 때 진짜 '어른'이구나 싶더라.
"그리고 밍님은 아직 젊고, 또 시간이 지나면 차츰 회복되는 병이라고 하니 다행이에요. 사회에 복귀해서도 지금의 극복했던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될 날이 분명 올 거예요. 물론 낙담할 때도 있을 거지만, 지금 이 시간에 겪는 감정이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 말씀을 끝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던 분은 얼마 안 있어 퇴원을 하셨다.
아마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신 것 같다. 연락처라도 여쭙고 받아둘걸..
나는..이게..정말..좋다.......정신과..시간의..방이...있다면..바로..이..기구일..것이다............
위 이야기를 해주신 분의 퇴원으로 SCI FIT 자리가 비게 됐고, 그 자리는 곧 내가 채우게 됐다.
처음 SCI FIT을 돌리던 날, 신명남을 주체하지 못해 다음의 말을 치료사에게 하고야 만다.
"선생님, 이거 진짜 재밌는데요!"
"네? 아니 밍님 무슨 말씀이세요?"
"모토메드랑은 아예 차원이 달라요. 진짜 재밌어요!"
"강도 안 높이셨죠?"
"어..?"
그놈의 입이 문제라면 문제.
다음날부터 강도를 올리게 됨과 동시에 이 말이 쏙 사라진다.
"하...."
"밍님 괜찮으시죠? ^^ 재밌으시죠? ^^"
"저 스스로 너무 자만했네요. 이것이 오만.. 강도 낮추면 안 될까요" :(
"안 돼요~ 얼른 퇴원하셔야죠."
"그쵸...하..."
언제 어디서나 입조심.
맨바닥에서만 하던 운동을 발 매트 위에서 하기 시작한다.
발을 올려놓으면 발 모양에 맞춰 살짝 들어가는 발 매트.
그와 동시에 발이 미친 듯이 떨려온다.
특히 왼발이.
"선생님, 저 가만히만 있는데도 발이 미친 듯이 떨려요."
"그쵸? 이런 살짝 폭신한 곳 위에 올라가게 되면 발목이 균형을 잡아줘요. 밍님 발목이 그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죠. 근데 발목에 힘이 부족하니 엄청 떠는 거예요."
그리고 그 위에서 행해지는 몸 돌리기와 스쿼트.
두 팔을 양 옆으로 뻗고 몸을 돌리기만 하는데도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넘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과도한 긴장. 몸은 당최 이 긴장감을 풀 생각이 없다.
곧바로 이어지는 스쿼트.
확실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지해서인지 허벅지는 자꾸만 안쪽으로 몰린다.
"밍님, 허벅지 안쪽으로 모아지면 안 돼요."
"그게 맘대로 안 돼요 헝."
"알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니 분명 매일 4~5명의 치료사를 만나는데 왜 말하는 건 다들 똑같지?
이거 참 미스터리네.
더불어 기립근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슈퍼맨 자세.
아 물론 다리는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다리는 고정한 채 상체만 들어 올린다.
하루가 다르게 기립근이 곧잘 올라온다.
오 이게 신경이 온전히 돌아온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근육 붙는 속도의 차이인가?
처음 슈퍼맨 자세를 했을 때와 2~3일 지났을 때의 가동범위가 확연히 달라진 게 느껴진다.
다리도 이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치료시간에 보행보조기를 이용해 걷다가 힘이 다 풀렸는지 발이 턱턱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니 무슨 소리가 나길래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밍님이 내는 소리였어요?"
"어.. 그런가 봐요."
"힘이 다 풀렸나 보네요. 조금만 쉬었다 갑시다. 그래도 골반이 이전처럼 막 틀어지진 않네요."
"헤헤 치료사 선생님 덕분이죠."
대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과 치료사 선생님이 때마침 하하와 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밍님 혹시 하하랑 별 소식 들으셨어요?"
"아 그 딸이 저랑 같은 길랭바레증후군 걸렸다는 소식이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 그거 보자마자 밍님 생각났잖아요. 근데 소식 진짜 빠르시다."
"아는 동생이 마침 공유해 주더라고요. 성인인 저도 놀랐는데, 아기가 그런 거면.. 그 부모랑 아기는 오죽 놀랬을까요."
"그쵸. 진짜 처음에 놀랐을 거 같아요."
"맞아요. 그래도 한 달 만에 곧잘 회복돼서 다행이에요."
"밍님도 회복될 수 있을 거예요! 열심히 운동합시다."
"허허. 좋습니다."
주말을 맞아 친구들이 병원에 다녀갔다.
고등학생 때 잠깐 같이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
이제 어엿 13년 이상 연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다리는 좀 괜찮냐? 하체운동하면 어떤 거 하냐?"
"스쿼트나 다리 들어 올리기 같은 거? 근데 풀스쿼트 한 개가 안돼."
"아 이거? 스쿼트가 안돼? 이 자세가 안돼?"
누가 친구들 아니랄까 봐 적나라하게 풀스쿼트를 몇 개 해내 보이는 친구 한 명.
역시 이래야 내 친구지 ^^
손 소독제를 한 바가지 뿌려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친구들이 주스와 메탈소재의 배 모형 만들기를 건네준다.
친구들이 준 배 모형 만들기. 맨 손으로 뜯어지질 않아서 만들지 못했다.
"어? 주스? 어? 여기 설마.. 뭐 그런 거 들어있는 건 아니지?"
"아니 무슨 소리야. 그냥 주스야."
"아 오키오키. 고맙게 잘 쓸게 ^^"
"아니 그냥 주스라고! 주스밖에 없다고!"
"에이 그렇게 숨기지 않아도 된다 이거야."
병원 문을 사이에 둔 채 이뤄지는 짧은 면회를 마치고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병실로,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