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외래와 반가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11

길랭바레증후군, 열한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2년 10월 첫째 주


10월.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시기.

10월이 다가옴과 동시에 아침, 밤으로 하루 두 번 먹던 진통제의 횟수에 변화가 생긴다.
밤에 먹는 진통제는 유지하고, 아침에 먹는 진통제는 빼기로 한 것.
8월부터 줄기차게 괴롭혀왔던 꼬리뼈 쪽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개천절이 밝았다. 티비에선 개천절 행사를 중계가 한창이지만, 치료실은 정상영업 중.
늘 해오던 스케줄에 맞춰 치료실에 가고, 치료사 선생님들과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의 운동을 해낸다.

9월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치료 시간에 하늘자전거를 타고 있다.
햄스트링이 상당히 짧아져(근데 이전에도 짧긴 했다. 유연성 꽝이었음) 다리가 잘 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허벅지에 많은 고통(?)이 수반되고 있다.

하늘자전거가 이렇게 힘든 자세일 줄이야.
혼자 낑낑거리며 하는 와중에 이젠 발목에 모래주머니까지 차기로 한다.


"밍님, 이제 맨발로 하늘자전거는 잘 타는데 모래주머니 차고 해 볼까요?"
"네? 어떤.. 거요? 모래.. 주머니?"
"네. 1kg짜리 차고 한 번 해보는 건 어떠세요?"
"이거 대답 정해져 있는 거 아니에요?"
"잘 아시잖아요 ^^"

분명 1kg짜리였는데, 체감은 4~5kg은 되더라.


아니............
그렇게 1kg짜리 모래주머니를 양 발목에 착용한다.


"선생님, 1kg짜리 맞아요?"
"네. 1kg 모래주머니예요."
"?? 진짜 맞아요? 너무 무거운 거 같아요."
"자 이제 돌려볼까요. 다리 들고~ 자 돌리세요!"


다른 시간엔 엎드린 채로 두 다리를 붙이고 다리를 접어본다.
엥? 이게 웬일? 다리가 접히네?


"엎드려서 두 발 모시고 다리 접어볼게요. 오? 밍님 다리 접히네요?"
"그러게요. 이게 왜 되죠?"
"자 그럼 한 발씩 들어볼게요. 아니 허리 쓰면 안 돼요. 엉덩이랑 다리에 힘주고 올라와야죠."
"안 올라가져요."
"그러게요. 허리 보상작용이 좀 일어나네요. 자 그럼 이거로 운동합시다. 다리 접으세요. 하나, 둘, 셋, 넷..."


아? 아.....




옆으로 누워 다리를 들어본다.
왼쪽은 터무니없지만, 오른쪽은 조금이나마 들어진다.
새로 알게 된 정보(?)가 있다면, 옆으로 누워 다리를 들 때 엉덩이의 힘이 상당히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왼쪽은 다리를 들 힘조차 들어가지 않고 있던 거였고, 오른쪽은 약간이나마 다리를 드는 시늉을 할 수 있는 것이더라.

실상 왼쪽 엉덩이는 없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신경이건 근육이건 깡그리 없어 그저 형태만 남아있을 뿐, 그저 납-작 그 자체나 다름없으니.

그나마 들어 올리는 시늉이 가능한 오른쪽도 지난주에 비해 퍼포먼스도 잘 나오고, 힘도 더 잘 들어가는 것 같다.


오른쪽 엉덩이의 힘이 조금 더 생기니, 보행보조기를 잡고 걷는 데에도 약간의 진전이 생긴다.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연속동작이 나오지 않고, 툭툭 끊어가며 움직였던 몸동작에 약간의 연속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동작만 억지로 뻗어나갈 뿐, 연속적으로 발을 내딛을라 치면 골반이 춤추듯 툭 빠져버리는 현상이 생긴다.
그럼 하지 말아야지. 괜히 욕심부리며 억지로 동작을 수행했다간 골반만 더 틀어질 게 뻔하다.


"보폭을 좁히고. 천천히. 엉덩이에 힘을 꽉 줘서 골반이 틀어지지 않게 하셔야 해요."


매일 듣는 이 이야기를 머릿속에 몇 번이고 되새겨가며,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떼 본다.
물론 이게 팔로 운동을 하는지, 다리로 운동을 하는지 아직은 마냥 헷갈리기만 하다.




이렇게 숨을 한 차례 헐떡이고 나면, 치료사이 텀이 있을 때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곤 한다.

잠시나마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치료시간 사이 텀이 있을 때, 종종 옥상에 올라가 햇살을 쬔다.




아주대학교병원으로 두 번째 외래를 간다.
첫 외래땐 신경과와 재활의학과 모두 다녀왔으나 이번 외래는 신경과 진료 예약만 잡혀있다.
수납을 하고 진료 순서에 맞춰 진료실에 들어간다.

물론 휠체어를 탄 채.


"걸어서 오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요. 그래도 마비가 다시 오거나 안 좋아지진 않으시죠?"
"네. 재활치료받으면서 조금씩 신경이 돌아오고, 근육도 붙는 거 같아요."
"다행입니다. 간혹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발생하긴 하거든요. 그래도 밍님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회복세가 기대했던 것보다 느리지만 천천히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네요. 보통 말초신경이 회복되는 데에 최장 2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봐요."
"흠.. 2년이요? 그럼 그 뒤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회복이 더 천천히 되는 건가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발병 6개월 정도까진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다가 그 이후부턴 점차 회복속도가 떨어지긴 합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후에 회복이 안된 신경은 후유증으로 남는다고 봐요."


후유증이라는 단어에 지레 겁을 먹는다. 후유증이라... 난 생각지도 않은 단언데.
그럼 내 다리가 영영 이 상태로 남아있을 수도 있단 얘기잖아?
그런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염두에 둬야 하나. 이게 현실..?
이런 현실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한 것과는 달리 진짜 현실을 마주한다.
10월 내엔 퇴원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으니 휴직계를 연장해야 했고, 이를 위한 소견서를 신청 및 수령한다.
갖고 있는 핸드폰으로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 휴직계 연장 서류를 작성하고 결재를 올린다.


그래 이게 진짜 현실이다.
이른 퇴원이라는 희망은 조각조각 났고,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만 간다.
급작스레 찾아온 병치곤 얻어가는 게 참 많군.




이번 주말에도 친구들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게 된 친구들.


"밍아 필요한 거 있냐?"
"필요한 거? 음.. 책? 아 총균쇠 읽어보고 싶은데 혹시 그거도 가능?"
"ㅇㅋ"


그렇게 총균쇠와 어린 왕자, 슈, 목베개를 들고 찾아왔다.
어린 왕자는 내 최애 책이어서 넣어준 것이고, 총균쇠는 익히 들은 그 악명(?)을 병원에 있는 이 기회에 느껴보기 위해 요청한 것이었다.


근래 분홍분홍한 소식을 들고 온 친구에게 한 마디 거든다.


"제가 님의 행복을 응원하고 있는 거 아시죠? 화이팅입니다! 잊지 말아 주세요!"
"아 일단 퇴원부터 하고 오십쇼 ^^"
"그건 멀었지만 아무튼 화이팅입니다 ^^ 응원합니다!"


근 1시간의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언제 봐도 서로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 친구들.
친구들과의 만남을 마무리 짓고 병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로비에서 걷기 운동을 하시던 어르신께서 말을 해오신다.


"친구들이랑 있으니 말을 잘하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라서 많이 이야기한 거 같아요."


치료실에서 병실을 오며 가며 인사만 드리던 어르신.
평소엔 말이 거의 없는 모습만 봐오다가 막상 이런 모습을 보니 재밌으셨나 보다.

오랜만에 텍스트 다운 텍스트를 마주할 수 있어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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