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평일과 버팀목 사이, 그 어딘가에서 #8
길랭바레증후군, 여덟 번째 이야기
○ 2022년 9월 둘째 주
병원에서 보내는 첫 명절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평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재활스케줄을 소화한다.
오전에 물리치료와 통증치료를 받은 후 모토메드를 돌리고, 오후에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받고 모토메드를 돌린다.
보행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계속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근 한 달여간 제대로 걸어본 적 없다고 걷는 법을 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걷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1.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2. 한쪽 발을 내딛고
3. 몸의 체중을 내디딘 발에 실은 뒤
4. 다른 쪽 발을 앞으로 뻗는다.
말초신경도 없고, 근육도 다 빠진 발인지라 동작 하나하나에 혼을 싣는다.
내 기억 속엔 없는 걸음마를 뗄 적의 내가 딱 이렇게 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걸음마를 처음 시도했을 땐 수십 번을 넘어져도 괜찮았겠지만, 지금은 단 한 번이라도 넘어지면 골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일 것이다.
치료사 선생님이 보조해 주시는 덕에 넘어질 리는 없겠지만 몸의 긴장감은 당최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보행보조기를 붙잡고 있는 손에 많은 힘이 가해지며 거의 9.5 : 0.5의 수준으로 상체에 많은 힘이 가해진다.
그 덕에 골반이 흔들리는 현상은 많이 줄어든다.
근데 이젠 몸이 뒤틀리네. 헤헤.
동작 하나하나 어디 쉬운 게 하나 없다.
오전 물리치료 시간이 끝나면 보행보조기를 사용하여 병실까지 걸어오기 시작한다.
30m 남짓의 짧은 거리임에도 까마득히 먼 길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당장의 나에겐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30m 남짓의 평평한 복도.
한 발 한 발 내딛을 적마다 치료시간에 익히기 시작한 '걷는 법'을 적용하려 해 보지만, 몇 발자국 떼기 무섭게 골반이 틀어지며 몸이 휘향 찬란하게 들썩이기 시작한다.
팔로 움직이는 건지, 다리로 움직이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걸음걸이 속에 천천히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스케줄이 끝나면 거의 매일같이 옥상에 올라가 바깥바람을 잠시나마 쐬고 내려오곤 한다.
그나마 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 게 하나의 낙이 됐다.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을 바라보며, 우수히 쏟아지는 노을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는다.
병원생활의 낙, 옥상 하늘 구경.
주치의 회진이 진행된다.
"밍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마비 진행은 이제 아예 멈춘 것 같고,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아요."
"아 그러세요. 밍님 아직 나이가 젊어서 회복속도가 좋을 걸 기대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대치보다 회복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나빠지지는 않고 천천히 회복되고 있는 중이니 재활치료 계속 유지해 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지난 피검사 때 간수치가 조금 높게 나오긴 했는데,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네, 하지 외에 추가로 불편한 곳은 없어요."
"네, 다행이네요. 그럼 간수치 조절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 언제 간수치가 올라간 거지??
새로운 혼란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온다.
몸에 더 이상의 이상반응은 없긴 한데...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먹고 있어서 그런가?
왜 갑자기 간수치가 올라간 것이지?
"선생님, 혹시 입원기간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면 좋을까요? 저 직장문제 때문에 대략적으로라도 알면 좋을 것 같아서요."
"길랭바레증후군이 사람마다 증상도 다르고, 회복속도도 달라서 정확하게 몇 개월정도다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그래도 약 3~6개월 정도 입원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아.. 3~6개월이요? 알겠습니다. 혹시 그전에 나아져서 퇴원할 수도 있나요?"
"네, 그러는 경우도 있긴 한데.. 사람마다 워낙 속도가 달라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긴 어렵네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소 3~6개월이라면.. 어디 보자.. 내 무급휴가가 11월 중순까지일 텐데..
이러다 강제 실업자 되게 생겼군.
이모할머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밍아, 아빠한테서 연락받았다. 그래, 몸은 좀 어떠니?"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할머니. 몸은 조금이기는 하지만, 초기에 비해선 차도가 있긴 있는 것 같아요."
"그랬구나.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도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네. 명절 음식 못 먹었지? 음식 좀 싸다 주려고 하는데 병원에 들를 수 있니?"
"네! 연락 주시면 제가 로비로 나가서 받아갈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점심시간 맞춰서 갈게. 몇 시까지 가면 될까?"
"병원 점심시간 12시라서 그즈음 오셔도 괜찮습니다!"
이모할머님께서 챙겨주신 음식. 나도 요리 잘하고 싶다.
명절을 잘 보냈냐며, 명절음식 못 먹었을 것 같으니 챙겨주시겠다던 이모할머님의 연락.
음식을 받고 진짜 맛있게 먹는다.
왜 내 요리는 이런 맛을 내지 못하지??라는 의문을 가득 품은 채.
꾸준히 약을 복용한 결과 간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간수치 조절 약도 먹지 않게 됐다.
먹는 약이 하나 줄어든 셈. 이젠 진통제만 먹는다.
진통제도 그만 먹고 싶긴 하지만.. 그 시기는 꽤 멀리 떨어져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납작하기만 하던 왼쪽 엉덩이와 힘을 주는 듯해도 감감무소식이던 왼쪽 종아리에 신경이 미세하게나마 돌아온 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힘을 주면 약간의 수축반응이 보이기 시작한 셈.
그 반응이 미세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긴 하다.
말 그대로 '힘이 들어온다'일뿐이지, 근육이 붙는다는 느낌은 일절 없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신경은 미약하게나마 회복되고 있는 중이라는 거?
이런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큰 위안을 얻으며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