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명절과 소망 사이, 그 어딘가에서 #7

길랭바레증후군, 일곱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2년 9월 추석


병원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 추석.
명절은 그간 병원에서 보내온 다른 주말과 여타 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외출/외박은 코로나 19 이슈로 인해 제한되고, 대면 면회는 백신 추가접종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진행 가능하다.
난 백신 추가접종을 받을 시 병이 재발병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짊어지기 싫어 면회객들이 병원 로비로 들어오는 대면 면회는 불가능.
단지 병원 문을 사이에 두고 진행되는 비대면 면회만 가능하고, 면회에 대한 큰 의지 같은 것도 없어 오히려 지인들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형국이다.

명절을 맞이한 면회 안내 알림문


명절 내내 병원 로비는 면회객과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많이 오가는 소리.
연세를 드신 분들이 많다 보니 명절을 맞이해 온 가족이 함께 찾아온 경우가 많다.
간병인에게 요즘 차도가 있냐 질문하는 목소리, 엄마아빠에게 운동 열심히 해서 얼른 퇴원하자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 손자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재롱떠는 모습.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하지만 하나의 큰 맥락을 관통하는 소리가 로비를 가득 메운다.


"열심히 운동해서 퇴원해야지"




동생, 친척, 친구들이 찾아왔다.
동생은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며, 그간의 차도를 물어보며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을 거 같냐 물어온다.

"차도는 조금씩 있는 거 같은데, 퇴원은 글쎄.. 당장 이 회복속도로 봐선 병원생활이 좀 길어질 거 같아."

짤막한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동생이 건네다 준 커피와 빵을 먹는다.

오랜만에 먹는 사회음식의 맛(?)에 눈이 퍼뜩 뜨인다.

그래 이 맛이지.
찾아와 준 동생에게 친구랑 먹으라며 기프티콘을 하나 보내준다.

이어 수원에 사는 친척이 찾아온다.

역시 안부를 묻는다. 안부 질문은 여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된 일이야? 퇴원날짜는 언제래? 좋아지곤 있어?"

그간 있었던 일을 되새겨가며 다시 이야기하고 덧붙인다.

"길랭바레증후군이 사람마다 증상이 다 다르고, 회복속도도 다 달라서 정확한 퇴원일자를 모른대. 좋아지고는 있는데 지금은 좀 많이 기다려야 할 거 같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어."
"어렸을 때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농구를 좀 시켰어야 했는데. 이거 운동부족 때문에 그런 거 아냐?"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친척이 가져다준 햄버거를 먹는다. 역시 햄버거는 버거킹이지.

그리고 병실 사람들과 노나 먹으라며 사다 준 한아름의 빵.

병실 사람들과 빵을 나누고 역시 빵과 커피를 홀짝홀짝 먹는다. 일부 빵은 냉장고로 직행.

하루는 친구들이 찾아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고향 친구들.


"좀 걷거나 할 수는 있어?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대?"
"아무것도 모른대. 사람마다 증상이나 회복속도가 다 달라서 예측할 수 없대. 한동안은 계속 있어야 할 거 같다."
"흠 그렇구나. 야 근데 밍아 너 다리 되게 얇아졌다."
"그래? 그렇게 눈에 띌 정도로 얇아짐? 근육 다 빠져서 그런가."
"엄청 얇아. 장난 아냐. 그 다리로 걷는 건 딱 봐도 힘들어 보여."

짧은 순간이었지만 반가웠던 시간.


그래 이게 내 친구들이지.

역시나 약간의 농담조가 섞인 말들이 오가고 그간의 근황을 이야기한다.
연말이나 연초엔 네가 나와야 다 같이 모여서 망년회나 신년회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끝으로 친구들과의 짧은 시간을 마무리한다.




같은 병실 옆 자리에 계신 어르신께서 송편을 나눠주신다.


"아 가족이 다녀갔는데, 명절이라고 송편을 한 상자 가져왔어. 이거 좀 먹어~ 부족하면 이야기해~"

간병인이 자기는 별로 안 먹는다며 내게 몇 개 더 챙겨준다.

"난 한두 개면 충분해. 젊은 총각 많이 먹어."

어르신께서 노나 주신 송편을 먹는다. 오 참깨에 꿀이 들어있는 송편이다.

물론 콩 송편이어도 맛있게 먹었을 것. 병원에서 먹는 송편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병원에선 점심으로 약과가 같이 나온다.

추석 명절이라 약과를 같이 준 것 같다.
확실히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먹을 복이 터진다.

옆 침대 어르신께서 나눠주신 송편과 병원에서 나온 약과




그렇게 먹었으니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순 없지.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하지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힙브리지 운동을 하고,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산 세라밴드를 다리에 묶은 채 양 옆으로 벌려본다.
양다리를 벌릴 때마다 이게 힘이 들어오는 건지 아닌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미세한 떨림만이 있을 뿐.

처참한 신경과 근육의 상태를 몸소 느껴본다.

침대에 걸쳐 앉아 발목을 까딱까딱 움직여본다. 올라오긴커녕 그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허허. 그래도 우얄꼬. 힘이 들어가는 자극만을 느끼며 계속 반복할 뿐.

보행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스쿼트를 반복한다. 골반이 툭 하고 빠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 선까지.

주저앉아도 바로 침대에 쓰러지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안정성은 확보되어 있다.

다리도 힘들지만 팔도 힘든 건 덤. 내가 아는 스쿼트는 팔로 하는 운동이 아녔는데......

어느새 팔운동으로 변모하고 만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팔로 몸을 끌어올리는 모양새이다.

그렇게 침상에서의 30분 ~ 1시간 자체 운동을 마치고 조금 휴식을 취하다 병동을 걷기 시작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뒤로 간병인이 따라붙는다.

걷는 걸 시도할 때마다 골반이 많이 빠진다.

이게 걷는 건지 휘청거리며 몸을 앞으로 움직이는 건지, 경계의 모호함 그 어딘가에 있다.

발을 살짝 앞으로 옮겼다가 툭 가져다 두는 느낌이 강하다.

몸은 오롯이 팔로 지탱하고 있다.

다리는 그냥 땅에 붙어있는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뿐.
병동을 2바퀴 즈음 돌았을 때 땀이 온몸을 감싼다.

'팔 아프다'




추석 달구경은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달구경을 위해 옥상으로 시간 맞춰 올라간다.

옥상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 행여나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과는 달리 구름 사이로 달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구름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온다.


"밍군, 안 추워요?"

같이 올라온 간병인이 묻는다.

"네! 괜찮아요! 제 몸이 워낙 열 발산을 잘해서 안 추워요!"
"역시 젊은 총각이라 그런가 추위를 안 타는 거 같네. 여긴 다들 옷 두툼히 입고 나와있는데."

구름 사이로 달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바쁘게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온다.
그 행렬에 나도 동참한다.

카메라를 프로모드로 바꾸고 감도와 노리개, 셔터스피드를 조절해 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본다.
썩 맘에 들진 않는데... 해상도의 한계인가? 문득 핸드폰을 바꾸고 싶단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달 사진 이쁘게 찍고 싶다.

옆에 있던 간병사가 찍은 달 사진을 보며 신기해한다.

"와 역시 젊은 총각이라 사진도 다르게 찍네! 진짜 이쁘게 잘 나왔다야!"

여기저기 다른 간병인들에게 이야기한다.

"여기 여 총각 달 사진 좀 보라. 우리가 찍은 거랑은 다르지 않나. 역시 젊어서 이런 거 다루는 게 우리랑은 다르다야."

보름달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소원을 빌어본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소원빌기를 해본다.

'2022년 중엔 꼭 나가게 해 주세요. 2023년 설은 밖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병원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이 지나간다.
반가운 얼굴들이 잠시나마 스쳐가는 순간.
재활치료 시간에 치료사들과 함께 했던 운동을 침대에서 반복하며 운동하며 보낸 순간.
지구를 공전하는 달에게 소중한 바람을 보내는 찰나의 순간.

이런 순간들이 모여 '2022년 베데스다병원에서의 추석'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다음 명절은 병원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지낼 수 있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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