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치료와 무너짐 사이, 그 어딘가에서 #6

길랭바레증후군, 여섯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2년 9월 1주 차

끝을 알 수 없는 재활병원 입원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왼쪽 다리에 미세한 변화가 찾아온다.

단순히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던 것을 지나, 약간이나마 들어 올린 채로 다리를 굽혔다 펼 수 있게 됐다.

미세한 변화임에도 머리엔 희망이 가득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렇게만 좋아진다면 10월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힘이 들어가는 느낌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스쿼트를 할 때마다 당최 주저앉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니 팔의 도움을 구하기로 한다.
보행보조기를 팔로 붙들어 맨 채 스쿼트를 한다.
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안도감 덕분이었을까?

바짝 서있던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고,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자세로 스쿼트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인 마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깨작거리는 느낌이 강하고, 다리로 몸을 끌어올릴 힘이 부족하니 팔 힘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그 진동은 붙잡고 있는 보행보조기에 전달된다.
달달달다라라랄ㄹㄹㄹ


"아니, 팔 힘으로 다 일어나시면 안 돼요. 팔은 올려두기만 하는 거지, 힘 빼셔야 해요."
"머리는 아는데 몸이 안 돼요"
"알죠. 그래도 최대한 힘 빼셔야 해요."


이후에도 팔힘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부들부들부들부드ㄹ




보행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걸음 연습을 한다.

사실상 훈련과 다를 바 없다.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몸을 지탱하고, 다리를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근육이 없다시피 하다 보니 허리를 들어 다리를 옮겨놓기 바쁘다. 자연스레 골반이 옆으로 툭 빠지는 건 덤.
거기에 다리로 몸을 지탱할 수 없으니 팔로 보행보조기를 눌러 다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거기에 풋드랍까지 있으니....
발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발목이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툭툭 떨어진다.

그래서 더더욱 다리를 들어 올려야 한다.

걷는 방법을 몸이 잊어버린 걸까? 옮기는 다리 하나하나가 매우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다리에 근육이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보폭도 넓게 가져가니 골반이 더 빠질 수밖에 없어요. 보폭을 진짜 조금만 줘도 힘들어요. 보폭을 좀 줄여서 걸어볼게요."


치료사가 골반을 잡아주고, 나는 보폭을 줄여본다.

보폭을 줄이니 귀신같이 골반 덜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팔로 지탱하는 힘이 빠지는 건 아니다. 팔에 힘을 빼는 순간 바로 골로 갈 것을 직감한다.

넘어지지 않겠다는 본능은 생각보다 강했다.


전진하기 위해 한 다리를 내밀고, 그 다리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연습을 한다.
이 간단해 보이는 동작조차도 큰 산처럼 느껴진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옮겨 간 무게중심이 현실의 몸에는 하나도 반영이 되어 있지 않다.


"내디딘 발에 무게를 실어요. 더더. 안 넘어져요. 괜찮아요."


안 넘어질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은 그렇지 않다고 반응한다.


"몸에 힘 빼세요. 괜찮아요. 안 넘어져요."


본의 아닌 치료사와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힘을 빼라고 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힘겨루기가.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첫 외래를 다녀온다.
주치의는 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길랭바레증후군은 점차 나아지는 병입니다. 나이도 젊은 편이시니 금방 좋아질 거예요. 다음엔 걸어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처음 나오는 외래이다 보니 이것저것 챙길 서류들이 많게만 느껴진다.
수납창구에서 수납을 하고 난 후 진료를 본다. 진료 후 수납창구로 가서 세부내역서를 뗀다.
사본실에 가서 지금 입원 중인 병원에 제출할 서류를 뗀다.


사람이 바글바글하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가는 데에 시간이 한창 걸린다.
신경과가 있는 1층과 재활의학과가 있는 지하 1층을 오가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다.
신경과와 재활의학과 외래를 마친 후, 지하식당에서 라면에 김밥을 먹는다.

라면과 김밥이 어찌 나도 그렇게 그립던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오후 재활스케줄을 소화한다.

옥상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9월 6일에 보고 싶었던 공연이 있었다.

병이 발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엔 이 날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이는 그저 희망이었을 뿐.

현실은 나의 이런 기대감을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이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재활스케줄을 소화하고, 정해진 시간대에 나오는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정신이 다시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생활을 해야 할까?'

이 한 마디에서 출발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퇴원은 할 수 있을까?'
'휴직계 동안 퇴원을 못해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할 수도 있겠는데?'
'구직을 시작한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이 공백기가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막연한 퇴원일자에 대한 막연함 속에 한없이 눈물이 솟구친다.
한밤 중 고요한 병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 없이 흐느낀다.


앞이 한 치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을 헤맨다.
이 어둠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이 어둠의 끝은 언제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 도달할 수는 있을까?

다시 걸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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