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희망 사이, 그 어딘가에서 #5
길랭바레증후군, 다섯 번째 이야기
○ 2022년 8월 4~5주 차
8월 23일 화요일 오전 아주대학교병원에서 퇴원수속을 마친 후 사설 구급차를 타고 베데스다병원으로 이동한다.
근 3주 만에 쐬보는 바깥공기. 비록 도심 속 공기일지언정 나에겐 상쾌한 숲 속 공기나 다름없다.
약 2분 쐬었을까? 바로 구급차 내부공기를 마시며 들것에 실린 채 재활병원으로 이동한다.
오후 1시 좀 넘은 시간에 베데스다 병원에 도착,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안내받는다.
배정된 병실은 8인실.
병실이 넓고 창도 북동향으로 큼직하게 나있어 타 병실에 비해 밝고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내 자리를 안내받고, 책상엔 점심이 놓여있다.
짐을 풀고 밥과 찬 위에 덮여있는 뚜껑을 주섬주섬 열어젖힌다. 그와 동시에 터지려는 눈물샘.
눈물을 참아보려 밥을 꾸역꾸역 넘긴다. 옆에서 밥 먹는 나를 지켜보며 울고 있는 엄마.
여기서 나까지 울어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스쳐온다.
'지금은 울면 안 된다.'
꾸역꾸역 밥과 반찬을 목구멍 뒤로 넘긴 후 엄마를 보낸다. 그 뒤 절반 채 먹지 못한 밥을 정리한다.
지금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8개의 침대 중 나포함 6개의 침대가 차 있다.
간병인은 3명으로 총 9명의 사람이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게 됐다.
당분간 공동간병을 활용하여 병원생활에 적응하기로 했다. 간병인은 안 써도 된다고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고 있다고 숱하게 말하였지만, 끝내 엄빠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침대 머리맡에 창가가 자리 잡고 있다. 초록초록한 여름이었다.
나와 같이 공동간병을 쓰는 할아버지 한 분.. 충청도 분이고, 한화팬이시라던 할아버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통성명하면서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난 000입니다. 젊은 친구는 이름이 어떻게 돼?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됐어. 사고당한 거야?"
그간 있었던 발병 내역을 쭉 읊조린다.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할아버지.
"뭔 그런 괴팍한 병이 다 있나 그래. 많이 놀랐겠어. 그래도 젊은 친구는 나이가 어려서 금방 회복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어."
병원에서 사용할 휠체어를 대여하고, 다음날 받을 물리평가와 작업평가 스케줄을 확인한다.
옮겨온 병원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8월 24일 수요일. 물리평가와 작업평가를 받는다.
물리평가는 몇 가지 자세를 수행해 보며 현재의 운동역량정도를 측정한다.
다리 들어 올리기, 누운 채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기, 팔 들어 올리기, 앉아서 팔 뻗어보기, 땅에 있는 물체 집어보기 등.
이때 하이워커로 걷는 것을 처음 시도해 보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걸었던 건 대체 뭐지?? 그건 꼼수로 걸었던 건가 보네.'
단순히 일어서있는 것조차 힘들다.
일어나기 무섭게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오며 곧잘 넘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일어나는 것도 어딘가를 팔에 의지한 채, 팔에 힘을 많이 주어야만 일어날 수 있다.
작업평가는 현재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점을 구두로 진행됐다.
용변조절, 샤워, 옷 갈아입기, 계단, 휠체어 생활여부 등.
내가 지금 어떻게 병원생활을 하는가에 대해 떠올리며 최대한 상세히 이야기를 한다.
약 1시간가량의 평가가 끝나며 하루 스케줄이 마무리되어 간다.
25일부터 스케줄에 맞춰 재활치료가 진행될 예정이란 안내를 받는다.
재활 프로그램을 배정받고 해당 스케줄에 맞춰 치료가 진행된다.
물리치료 두 타임, 작업치료 한 타임, 모토메드 두 타임, FES(기능적 전기자극치료) 두 타임, 통증치료 한 타임.
총 3시간 30분.
하루 총 8타임의 재활 스케줄을 소화했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시간엔 치료사 선생님과 운동을 하고, 모토메드 시간엔 자동으로 페달을 돌려주는 자전거에 몸을 실은 채 페달을 밟는다.
FES 시간엔 패드를 발목, 종아리, 허벅지 등에 붙인 채 전기자극을 준다.
통증치료 시간엔 꼬리벼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전기자극 치료를 받는다.
스쿼트를 시도하려다가 조금만 내려가도 곧바로 주저앉을 것만 같다. 힘이 들어와야 버티던가 할 터인데.. 허허.. 그래도 해야만 한다.
동시에 자세 교정도 함께 받는다. 왼쪽 골반이 많이 올라가 있다는 평.
"왼쪽 골반이 많이 틀어져 있어요. 나중에 고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이것도 교정하면서 운동해 보도록 할게요."
힙브리지와 스쿼트, 다리 뒤로 들어 올리기 등 하체와 관련된 다양한 운동이 진행된다.
매 시간마다 몸과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무엇보다 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스트레칭.
햄스트링이 워낙 짧아져있던지라 다리를 쭉 펴고 20도만 들어 올려도 햄스트링에 찌릿찌릿한 자극이 찾아온다.
"으아 ㅈ..자...잠깐만요 으아으아ㅏㅏㅏ"
치료실을 가득 울려 퍼지는 나의 비명소리는 덤. 내 비명소리만 아득히 울려 퍼진다.
오히려 치료사 선생님은 재밌어하는 모습. 그 짧은 1~2분의 시간이 제일 고통스럽다.
물론 막 병원에 왔을 땐 다리도 내 힘으로 들어 올릴 수 없어 그 고통은 더욱 배가 된다.
오롯이 치료사의 손에 의해서만 다리를 올리고 내릴 수 있다.
모토메드 시간엔 휠체어에 그대로 앉아있는 채 모토메드 기기 페달을 돌린다.
양 발을 모토메드에 고정하고, 저항과 속도를 설정한다.
설정한 값에 맞춰 다리에 힘을 주어 페달을 약 30여 분 동안 움직인다.
돌리는 동안 양 발에 힘의 균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막대수치로 보여준다.
"여기 양 발 균형이 50 대 50으로 맞춰지도록 돌려주시면 돼요."
생각은 쉬운데 몸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상하게 오른쪽 엉덩이가 엄청 아파온다.
'휠체어 의자에 뭐가 있나? 아닌데.. 없는 거 확인하고 왔는데.'
그땐 머릿속에 이런 의문만 가득 담은 채 아무 생각 없이 돌리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리에 페달을 돌릴 힘이 부족하여 엉덩이로 대신 힘을 끌어다 쓴 것 같다.
당시의 오른쪽 허벅지는 그냥 말캉말캉 그 자체였으니까.
모니터에 표기되는 막대에 집중하며 열심히 돌리다.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돌린다.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괜찮아졌으니, 단순 근육통이겠거니 하고 지나간다.
솔직히 제일 지루한 시간이다. 가뜩이나 유산소를 싫어하는데 그걸 강제로 하고 있으니...
바로 여기가 시간과 정신의 방이다.
계기판은 다르나 비슷하게 생겼다.
FES 시간엔 전기패드를 하지 특정 부위에 붙이고 전기자극을 준다.
마비가 온 부위에 전기자극을 흘려보내주어 근육이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
제 힘으로 근육을 움직일 수 없으니, 전기자극을 주어 강제로 수축시켜 주는 기구이다.
이 시간엔 전기자극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원하는 근육 수축이 이루어지도록 같이 해당 부위를 움직여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살짝 찌릿하지만 근전도검사 했을 적의 그 정도 수준으로 전기를 흘려보내진 않았다.
"전기 자극이 오면 자극에 맞춰 발목을 들어 올려주시면 돼요. 근육이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입니다. 전기가 너무 아프면 말씀해 주세요."
패드를 자극을 주려는 부위에 붙인 후 기기로 전기 세기를 조절한다.
통증치료 시간엔 꼬리뼈 위쪽과 기립근 부근에 패드를 붙이고 전기자극을 흘려주면서 열을 쐬어준다.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가만히 치료실 침대에 잠자코 누워있다.
이땐 눈을 감고 잠깐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되면 기계 알람음이 울리며 치료는 마무리된다.
안내받은 재활 스케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되고, 토요일엔 오전에만 1~2타임만 진행된다.
토요일은 매주 스케줄이 달라졌기 때문에 매 번 확인해야 한다.
아주대학교병원에서부터 11월 중순까지, 전 직장에 속해있던 팀 단톡방에 그날그날 진행한 운동과 강도, 개선 과정 등에 대한 느낌을 꾸준히 보고(?)했다. 어느 날은 쓸 말이 많다가도, 그렇지 않은 날은 짧게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응원해 주던 팀장님과 팀원들. 보고 싶네 갑자기.
하루하루 재활 스케줄을 소화하고, 샤워를 하고 환의를 갈이 입고. 본격적인 재활병원 생활이 시작된다.
'이 스케줄대로 계속 받으면 한두 달이면 번듯하게 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