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과 좌절 사이, 그 어딘가에서 #3

길랭바레증후군, 세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2년 8월 2~4주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처방받고 마비 증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신경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이전됐다.

재활의학과 이전 후에도 회진 때마다 간단한 운동기능 측정은 계속된다.


이때 하지 쪽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기기를 하나 받는다.
하지에 근육이 빠져버려서,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떡이 질 수도 있다고.

그래서 이를 예방하고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서 쓰는 기기라는 설명.
공기압 마사지기 비슷하게 생긴 걸 쓰게 됐다. 원리는 간단해 보인다.

연결된 호스를 통해 공기를 주입하여 다리를 압박해 주고, 공기가 빠지면서 압박이 풀리는 정도.
근데 자꾸 삐-삐-하는 경고음이 나서 원인을 살펴보니, 호스에 틈이 생겨 공기가 새어나오고 있던 중이었다.
이건 간호병동에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병동에서 회수했고, 난 다른 기기가 오길 기다린다.

대략 비슷하게 생겼다.


그럼 그 사이엔 어떻게 했을까?
압박스타킹을 주셔서 임시로 압박스타킹을 신고 생활한다..


더불어 물리치료 스케줄도 전달받는다. 오전, 오후 각 한 타임씩 하루 총 두 타임.
먼저 현재 몸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 몇 가지 운동기능을 수행해 본다.
휠체어에서 기립훈련용 스탠딩테이블로 옮겨가기 위해 일어나려는 찰나.

팔에만 힘이 들어가고 다리가 일절 지탱해주질 못한다.

치료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기립훈련용 스탠딩테이블에 몸을 고정시키고, 스쿼트 자세와 까치발 자세 등을 해본다.


"까치발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인상을 찌푸리며) 으으, 이게 전부예요."
"네, 알겠습니다."


물론 까치발은 들어지지 않는다. 발가락과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다음은 보바스 테이블로 이동하여 여러 동작들을 수행해 본다.
다리 들어 올리기, 발목 접었다 폈다 하기, 무릎 굽혔다 펴기 등
간단한 평가가 진행된 후 본격적인 재활치료가 시작된다.




오전 시간엔 보행보조기(휠워커)로 병동을 걸어본 후, 다리를 풀고 몇 가지 근력운동이 진행된다.
오후 시간엔 사이클을 10여 분 탄 후, 오전과 마찬가지로 다리를 풀고 몇 가지 근력운동을 수행한다.
보행보조기로 병동을 걸어 다닐 땐 팔로 걸어 다니는 것 같다.

다리는 그저 몸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느낌.


'내 몸뚱이 아래 다리가 두 개 있네.'


보행보조기로 병동을 '걷는다'라곤 하지만, 사실상 팔로 보행보조기를 앞으로 가져간 뒤 팔로 버틴 채 다리를 가져가는 동작을 수행했던지라 '다리로 걷는다' 보단 '팔과 보행보조기로 몸을 이동해 간다'의 느낌이 강하다.


처음엔 50m의 거리를 이동했다. 이후엔 70m, 100m로 거리를 늘린 후 타이머로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
시간을 재기 시작하니 은근 경쟁심이 생기더라.
최초로 시간을 쟀을 땐 100m 이동하는데 12분이 걸렸다.


'어제보단 빨리 가야지'


란 욕심에 날로 기록은 단축되어만 간다. 7분 - 5분 40초 - 5분 - 4분 45초.
그런데.... 기록이 단축되면 될수록 이상하게 팔만 더 힘들어진 느낌이 든다. 분명 다리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지???
아 물론 마비가 온 다리에도 아예 진전이 없던 건 아니다. 감각이 미세하지만 조금 더 돌아온 느낌?


그땐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미세한 차이에 불과했다.
매번 이렇게 병동 반 바퀴를 돌고 나면 몸과 환의가 땀에 흠뻑 젖는다.

어르신들이 끌고 다니는 걸 쉽게 볼 수 있는 보행보조기. 내가 이걸 쓸 날이 오다니.


보바스 테이블에선 다리를 들고, 무릎을 굽혔다 펴는 것과 다리를 뒤로 차는 것 등 하지근력 전반에 걸쳐 운동을 진행한다.


"길랭바레증후군 환자 중에 처음부터 이렇게 걸을 수 있는 분은 처음 봐요. 상태도 금방 호전되실 거예요."


라고 말씀하시던 물리치료사 선생님.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진짜 간절했다. 아주대병원을 퇴원할 때 즈음엔 두 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길 바랐다. 당시엔 이런 희망에 가득 차있을 때였다. 마치 현실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래서 더 재활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고, 더 필사적으로 재활시간에 집중했다.


물리치료시간은 지루하긴커녕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다. 치료사 선생님께서 뇌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오.. 흥미롭다.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가 이런 뇌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환자분들께선 재미없어하시는데, 밍님께선 재밌어하시니 다행이네요."
"진짜 신기하고 재밌어요! 저도 전공이 순수과학 쪽이어서 더 귀에 잘 들어와요!"
"물리치료 시간에 운동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하면서 보낼 수 있겠네요."


재활을 쉬는 주말과 공휴일엔 침대 난간을 붙잡고 혼자 30분씩 운동을 한다.
낙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필사적으로 운동을 한다. 스쿼트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사물함에 몸을 의지한 채 까치발을 들어 올리는 시늉이라도 한다.(물론 까치발은 들어지지 않는다.)
스쿼트도 사실상 몸만 깔짝거릴 뿐이지 조금만 내려가면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다.
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위아래로만 조금씩 움직이던 오른쪽 발목은 조금씩 원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 밥 먹는 시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재활시간, 잠자는 시간 외엔 무얼 하며 보낸 걸까?
미드를 보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원체 겜돌이의 세포를 지니고 있던지라..
미드는 대학생 때 잠깐 보다 말았던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 당시 시즌 5 초반부까지 봤던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전부 다 보자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다. 볼 때마다 취향 저격의 과학개그가 나를 반긴다. 꼭 한 번 봐보도록 하자!


게임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Slay the Spire)'라는 덱빌딩 로그라이크 게임을 즐겼다. '킹갓겜 슬더스!'를 외치며.


아주대학교 병원 생활을 함께한 핵꿀잼미드 빅뱅이론과 킹갓겜 슬레이 더 스파이어.




어느 날 의외의 복병이 찾아온다. 바로 엉덩이 쪽 통증. 어느 순간 급작스레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낮엔 그렇게 통증이 크게 느껴지지 않고, 밤이 되면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처음엔 그냥 참아보면서 잠을 청하려 했는데, 그 수준의 고통이 아니더라.

괜스레 억울해진다. 영문도 모른 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서러운데 잠도 못 잘 정도로 아픈 고통을 겪어야 하다니. 그것도 언제까지 이러한 고통이 함께 수반될 줄 모른 채...


회진 때와 물리치료를 받을 때 이 통증에 대해 여쭤보니 근육통이라는 동일한 답변이 돌아온다.

답은 그저 시간뿐이라는 것.

밤마다 통증이 너무 심하게 찾아와 아침저녁으로 진통제를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조금이라도 없어지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에어매트리스를 최대로 높여야 겨우 잠에 들 수 있는 지경이다.


그렇게 아침에 깨어나 바로 앉아있으면 어떻게 될까?
엉덩이가 진짜 불에 덴 듯한 아픔이 와서 1초 이상 앉아있을 수도 없다.

한 20분을 스트레칭하고 어찌어찌해야 겨우 참을 수 있을 만큼의 통증으로 가라앉기 일쑤.

통증을 수반한 채 아침을 꾸역꾸역 먹고, 치료 이외의 시간엔 침대에 엎드려있기 바쁘다.

하루를 보내고 다시 밤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통증은 다시 찾아온다.
밤이 찾아오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기엔 진통제를 먹어도 가라앉지 않던 통증이 조금씩 조금씩 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
처음 느꼈을 때에 비해 2주 뒤엔 밤에도 그나마 버틸만한 수준까지 내려가긴 했다.

물론 진통제는 가장 센 것을 복용하고 있었고, 바른 자세로 누워 자진 못했다.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지 않고,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입원하여 받을 수 있는 재활치료 시기 2주가 다가온다.
하... 처음 입원했을 땐 3주~한 달이면 다 낫고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있었다만 막상 그 시기가 다가오니 걸음은커녕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되지 않는다. 품었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며 한 차례 무너져 내린다.


'난 언제쯤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걸까? 아니 다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하...
이젠 다른 재활병원으로 옮겨가야 할 시기. 전원을 위해 관계부서에 연락을 했고, 수원 소재 베데스다 재활병원에 컨텍하였다. 본가랑 가까운 게 가장 컸다.


아주대 퇴원 직전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하고 사진을 찍고 보험사에 제출하려는데, 엥? 퇴원 주 바로 직전 금요일에 요청했던 주치의 소견서가 빠져있다. 문의해 보니 주치의가 작성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다음 외래 때 준비해두겠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대학교병원에서의 입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설 구급차를 불러 베데스다 재활병원으로 전원을 한다.




문득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기재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엔 있던 연차를 선소진하고, 2주 치 병가를 받았다. 그 이후엔 무급휴직으로 처리하였다.
무급휴직은 최대 3개월까지의 기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난... 이 3개월이라는 시간 내엔 걸어 나갈 수 있을 거란 확신에 차 있었다.


'3개월이면 충분히 걸어 나갈 수 있을 거야. 올해 이직한 직장으로 다시 출근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팀장님과 동료에겐 이 말을 꼭 했었다.


"팀장님, 선임님. 제 자리 잘 지켜주세요. 저 늦어도 11월엔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 한 마디에 많은 희망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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