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방황 사이, 그 어딘가에서#2
길랭바레증후군, 두 번째 이야기
○ 2022년 8월 1~2주 차
길랭바레증후군 발병 후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입원을 한다.
점심은 먹지 안 먹고 저녁은 오는 길에 빵 하나 먹은 게 전부였는데, 크게 배고프지도 않다.
당황함과 혼란을 헤매다 보니 배고픔은 안중에도 없다.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온 당일 저녁 10시 반 즈음부터 면역 글로불린 주사 투약을 시작한다.
오른쪽 팔 엔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왼쪽 팔 엔 링거를 꽂고 누워있다.
닷새간 꼼작 없이 양팔에 주사를 꽂고 있어야 한단다.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안정감을 찾을 즈음 배고픔이 미친 듯이 몰려올 줄 알았으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목이 마르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다.
이게 링거의 힘?
와중에 충전기와 이어폰을 챙겨 오길 잘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나.
그리고 난 내가 소변통을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 ^^
참.. 적응하기까지 꽤나 고생 좀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두 달이면 나갈 수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이 자리 잡는 시기.
새벽 4시 즈음 응급실에서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옮겨 간다.
코로나19 때문에 면회는 안되고, 간호간병통합병동 특성상 보호자가 머물 수는 없다고 안내받는다.
병동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주치의 회진 안내를 받고 아빠는 집으로 돌아간다.
주치의 회진시간을 안내받는다.
양팔에 꽂은 주사는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몸을 일으킬 때 양쪽 난간을 붙잡고 일어나야 하는데, 이때 팔에 힘이 들어가니 주삿바늘이 행여나 휘진 않을까 꽤나 신경 쓰인다.
척수액 검사, 심전도 검사, 호흡, 작업수행능력, 근전도 검사 등 각종 검사가 진행된다.
척수액 검사는 한밤 중에 진행됐는데, 침대 그대로 검사실로 이동한다.
검사 침상으로 몸을 옮기고 옆으로 누웠다. 옆으로 눕는 것도 쉽지 않다.
아, 이게 하체의 중요성이구나.
검사 선생님께서 주사가 좀 아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봐야 주삿바늘일 뿐인데,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겠냐며 내심 만만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주사 한 방을 놓는 순간부터 싹 사그라들더라.
'헉!!!!!!!!!!!!!!!!!!!!!!!!'
긴 주삿바늘이 등과 허리 부근에 쑥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와 아프다.
'그래도 이 정도 주사면 2~3방은 버틸 수 있어. 금방 끝날 거야.'
엥? 그런데 주사 2~3방으로 끝나는 게 아니네?
척수 라인을 따라 7번의 주삿바늘이 내 몸에 들어온다.
6~7번째 주사에는 진짜 억하는 소리가 새어 나올까 싶어 입술을 꽉 깨문다.
고통을 알고 나니 왠지 모를 압박감이 점점 조여 온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주삿바늘이다.
심전도 검사는 병실 자리에 누워 별다른 고통 없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받는다.
측정 기구가 자리로 오고, 몸 곳곳에 패치를 붙인 후 검사를 진행한다.
숨 쉬는 것 역시 검사대상에 포함되더라.
그땐 아무런 생각 없이 검사받으러 간 건데, 현시점에서 생각해 보니 숨 쉬는 근육에도 마비가 오진 않았는지 확인하고자 검사를 한 것 같다.
살아생전 숨을 쉬고 내뱉는 게 그렇게 힘든 건 줄 처음 알았다.
끄으으읕까지 있는 힘을 다해 숨을 들이쉬고, 끄으으읕까지 있는 힘을 다해 숨을 내쉰다.
헛기침이 나오기 직전까지 숨을 내뱉은 기억.
'하 숨차.'
작업수행능력은 뇌 인지기능과 손의 움직임을 검사하는 것 같다.
악력을 측정하고, 지금에선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판에 막대기 같은 걸 구멍에 맞춰 넣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타이머로 시간을 함께 쟀다.
악력은 지금껏 측정했던 사람들 중에 강한 편이라고 하시는 선생님.
막대기 꽂는 활동은 1초라도 더 기록을 단축(?)시켜보고자 했으나 쉽진 않더라. 그래도 빠르게 잘 수행하셨다고 말씀해 주신다.
근전도 검사를 받기 위해 역시 침대 채로 검사실로 옮겨진다.
검사 침상으로 옮기기 위해 잠시 휠체어에 앉았다가 침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다리 마비로 힘이 들어가질 않으니 잠깐 옮겨가는 데에도 쩔쩔맨다.
침상으로 겨우 옮긴 후 약 2시간 30분 간의 검사가 진행됐다.
무릎, 발목, 손가락, 팔 등 검사 부위마다 패치를 붙이고 전기신호를 보내 그 신호를 측정한다.
따끔할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
낯선 전기신호가 나를 반겨온다. 하지만 난 그 전기신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없었다.
전기 자극이 낮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조금 거슬리는 느낌이었으나, 높을 때는 어금니 꽉 깨물고 고통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
심지어 이 자극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해질 수 없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따끔거림이었다.
가히 '따끔하다'의 표현으론 정의할 수 없는 수준의 아픔이더라.(엄살 아님)
간호간병통합병동에선 얼마 머무르지 않고 일반 병동으로 올라갔다.
일반 병동으로 옮겨가기 직전 화장실을 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지 물어본다.
소변통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
휠체어로 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낙상 위험으로 인해 간이 변기를 가져다주신다.
아... 진짜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선생님들께선 환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런 경험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으나 다가오는 낙심은 지울래야 지울 수 없었다.
내 인간의 존엄성..
그렇게 볼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로 올라와 일반병동으로 옮겨간다고 가족에게 연락한다.
울음보가 터져 나오더라. 팀장님께 전화 걸었을 적보다 더 울음보가 터져 나온다.
독립적인 성격 때문인지, 가족이 나 때문에 병원에 들락날락하며 간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괜스레 피해를 끼치는 거 같아 울음보가 터져 나온다.
옆에 계시던 전공의 선생님께서 왜 우냐고 등을 토닥여주신다. 오히려 마비가 왔을 때 울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이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 순간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반 변동으로 올라가자마자 48시간은 보호자가 상주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는다.
오잉..? 난 그런 안내를 받은 적 없는데??
핸드폰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는지 알아보고 또다시 전화를 하고.
"지금 마땅히 간병 올 사람이 없는데, 다시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갈 순 없나요?"
"코로나 때문에 어려워요. 48시간 상주할 수 있는 보호자 있으셔야 해요."
다행히(?) 동생이 7월에 코로나에 걸려 PCR 검사 없이 1회에 한 해 출입이 가능했고, 동생이 최초 48시간 보호자로 함께하게 됐다.
원내 업무처리 부서를 안내받는다.
병실 자리는 복도 바로 앞, 에어컨이랑 가장 먼 자리.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병실 내 모든 침상 커튼이 쳐져있었기 때문에 에어컨 바람 순환이 잘 되지 않아 유독 더 덥게 느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와중에 병실 환기시킨다며 다른 사람이 창문을 열어두는 순간... 와 바깥 더운 공기가 훅 들어오면서 불지옥으로 변모한다.
그래도 다행히(?) 세면대는 내 자리에 바로 붙어있다.
그렇게 약 1주일 내내 화장실을 갈 때와 밥을 먹을 때는 제외하곤 내내 누워있기만 하는 신세.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자세를 바꾸기 위해선 오직 팔 힘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양팔에 꽂혀있는 주삿바늘 덕분에(?) 움직임에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엔 팔 위치가 닿는 곳에 내가 당장 사용해야 하는 용품을 뒀다.
휴대용 선풍기, 핸드폰, 이어폰, 칫솔, 치약, 물 안 쓰는 샴푸, 물티슈 등등
화장실을 갈 때엔 무조건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있는 게 불가능하여 무조건 좌변기에 앉아서 볼 일을 처리해야 하고, 심지어 번갈아 간병하고 있는 동생과 아빠의 도움을 빌어서야 휠체어에서 좌변기로 옮겨 앉아갈 수 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볼 일을 처리하는 것도 정말 고역이다.
매일 오전, 회진이 진행된다.
양다리를 각각 들어본다. 왼발은 얼추 들어지는데, 발이 바깥쪽으로 돌아가면서 들어진다. 반면, 오른발은 택도 없다.
누워서 상체 일으키는 것은 큰 문제가 있지 않고, 양팔을 들어보는 것도 문제없다.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는 닷새동안 다리 올리기, 상체 일으키기, 팔 들어 올리기 등 간단한 신체 활동 점검이 이루어진다. 오전 회진시간과 오후 전공의 혹은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체크하신다.
"길랭바레증후군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말초신경이 녹아 마비가 오는 증후군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밍님은 장염으로 인해 이 병이 발병된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게 발에서부터 마비가 시작되어 점점 올라오고, 심할 경우 호흡기와 안면까지 마비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마비의 피크를 찍고 나면 서서히 회복되는 병입니다. 간혹 팔이나 머리에서부터 마비가 시작되는 경우도 나타나긴 합니다.
길바레증후군은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세가 다르고, 회복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언제 다 나을 거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녹아내린 말초신경은 매일매일 조금씩 재생되기 때문에 시간은 조금 필요하더라고 완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제발 마비 그만! 상체까진 제발 안돼!'
를 수 천 번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이 말은.. 옆에서 엄마가 언제 다 낫냐고 매일같이 물어볼 때마다 매 번 돌아오는 답변이었다.
엄마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매 회진 때마다 내 옆에서 주치의, 전공의에게 언제 낫냐고 물어보는 게 나에겐 가장 힘들고 짜증 나는 시간이었다.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는 나흘째 되는 날부터 마비 증상은 멈춘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더 이상 몸이 안 움직이거나 힘이 안 들어가는 부위가 추가로 발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리 들어 올리기, 상체 일으키기, 팔 올리기는 계속 확인하였다. 매 번 동작을 확인할 때마다 긴장의 연속인 건 사실이다.
'어제까지, 아니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곳이 갑자기 안 움직여지면 어쩌지?'
급작스런 마비로 인한 두려움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상황.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은 후에도 간혹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 가능성이 나에게도 열려있는 것이니 더더욱 심적 부담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다시 맞는 일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닷새간 함께한 면역 글로불린 주사. 이젠 보지 말자.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는 닷새의 기간 동안 씻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
주사를 양 옆으로 꽂고 있다 보니, 상의를 탈의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
어쩔 수 없이 구비해 둔 물티슈를 이용해 몸을 닦는다. 머리는 물을 쓰지 않는 샴푸를 사용한다.
샴푸는.. 머리를 감았다는 느낌을 주진 못한다. 이게 머리를 감은 게 맞는 건지, 시늉만 한 건지 싶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어쩌랴. 물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상황은 더더욱 아닌 걸.
이 당시 면도는 하지 않았다.
이왕 입원한 거 수염을 한 번 내버려 두어보자 싶은 생각이 들어, 약 1주일간 방치했었다.
면도 안 한 수염이 덥수룩해지는 걸 확인하곤 다시 면도를 시작했다.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다 맞고 난 뒤 이틀 후.
마비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뒤, 신경과에서 재활의학과로 담당과가 이전된다.
이번 글을 쓰면서, 잠잠했던 감정선이 다시 복받쳐 오른다.
충분히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