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과 담담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1

길랭바레증후군, 첫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발병과 담담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1

○ 2022년 8월 1주 차


바야흐로 22년 8월 첫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오후 3~4시 즈음이었을까?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뜨려는 찰나.
불과 몇 분 전까지와는 다른, 사뭇 무거운 느낌이 다리에 전해진다.


'왜 힘이 들어가질 않지?'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절뚝이며 자리로 돌아온 후, 옆 자리 직원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본다.


"선임님, 허벅지에 힘 안 들어가 본 적 있어요?"
"스쿼트 엄청 하고 나서요."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다고 지난 일요일에 하체를 못 움직일 정도로 힘들게 운동한 것도 아니었다.
일요일은 다니던 헬스장이 운영을 안 하는 날이었던지라, 휴식을 푹 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과 1~2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움직이던 다리였다.


'에이 집에 가서 하루 푹 쉬면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느 때와 같이 퇴근을 한다.

늘 거닐던 퇴근길이지만 유독 길고 불편함만 느껴지는 시간.


왼쪽 발목과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리를 들다시피 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약국에 들러 간단하게 증상을 말한 뒤 약을 받아온 후 먹고 침대에 몸을 뉘 운다.

머릿속엔 이 불편한 발을 이끌고 어떻게 출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가득한 상황.

아 이게 직장인..


이땐 알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발을 이끌고 온 이 날이 22년의 마지막 출퇴근이 될 줄은...




비가 내리는 아침이 찾아온다.

여전히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발로 출근 준비를 마치고, 평소보다 조금 빠른 출근길에 오른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든 채 몇 발자국 걸어가 본다. 금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심상치 않은 발의 무게에 이건 출근이 불가능한 정도의 것임을 직감한다.

이른 시간, 아직 일어나시지도 않았을 팀장님께 전화를 건다.


"팀장님, 저 밍 선임입니다. 이른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네 선임님,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왼발에 마비가 온 것 같아 출근이 어려울 것 같아요. 몇 발자국 걸어봤는데 신통치가 않네요. 혹시 당일 연차처리 후 병원에 방문하여 진료받고 경과를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 진짜요? 발이 갑자기 안 움직여요? 네 알겠습니다. 병원 잘 다녀오시고,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 동네 신경외과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진료를 보러 간다.
다리를 접었다 펴고, 고무망치로 무릎을 툭툭 치는 등 간단한 몇 가지 신경테스트를 해본 후 MRI를 찍는다. 디스크는 조금 튀어나왔으나, 마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평과 지난밤에 술을 많이 먹고, 딱딱한 곳에서 다리를 옆으로 뉘어 잤냐는 등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다.
술은 먹지 않았고, 매트리스 위에서 잤다는 말에 연신 같은 말만 반복하는 원장님. 비골신경마비로 진단을 내어준 후, 한 가지 말을 강조하신다.


"발가락부터 마비가 점점 올라오는 병이 있는데, 그 병일 수 있어요. 시간이 경과하면서 오른쪽 다리, 팔 등 다른 곳에 증상이 오는 것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받은 뒤,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이동하던 중 우당탕 한 번 넘어진다. 아프긴 했으나 창피함이 더 큰 건 덤.

물리치료를 마친 뒤,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팀장님께 경과를 말씀드리기 위해 전화를 한다.


"팀장님, 몇 가지 신경 테스트와 MRI 촬영했습니다. 디스크가 살짝 튀어나온 것으로 보이긴 하나, 다리 마비에 증상을 줄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먼저 비골신경마비로 진단 내려주셨고, 다른 병일 수도 있으니 경과를 살펴보자고 하시네요."

"네, 알겠습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푹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경과보고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뒤 비골신경마비 키워드로 검색하기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알아낸 정보는 차츰 풀려 2주 내외면 마비가 사라진다는 것.


'2주쯤이야, 괜찮네. 그럼 소개팅은 잠시 뒤로 미뤄둬야겠다.'


움직이지 않는 발가락을 쥐어짜 내가며 영상 속 스트레칭을 따라 하기 바쁘다.
그날 밤, 아침에 원장님이 말씀하신 말이 유독 신경 쓰였기 때문일까.

여태껏 잘 움직이던 오른발을 꼼지락거려본다. 괜한 기분 탓이었을까?

발가락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잠에 든다.

그리고 이 둔해짐이 기분 탓이 아닌 진짜였을 줄이야.



다음날 아침, 밤엔 잘 움직이고 힘도 들어가던 오른쪽 발가락에도 마비증세가 찾아온다. 기분이 묘하다.


'움직여지지 않네?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제대로 서 있기 조차 힘든데..? 왜 나에게 갑자기 이런 일이 닥친 거지?'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고? 왜? 왜 하필 나한테 찾아온 거야?'

현실을 마주하기 힘든 시간.
억울함 가득한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지만, 그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려 애쓴다.

그리고 팀장님께 전화를 건다.


"팀장님, 오른쪽 발가락에도 힘이 들어오지 않아, 오늘 출근도 힘들 것 같습니다."


꾹꾹 억눌러왔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휴대폰을 붙잡은 채, 팀장님께 펑펑 울며 한 음절 한 음절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그 누구보다 놀랬을 팀장님이 아니었을까. 월요일에 멀쩡히 퇴근한 사람이 갑자기 울며불며 전화를 하고 있으니...


"우선 병원 재방문해 본 후 다시 경과 말씀드리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홀로 있는 자취방에 앉아 수십 여 분을 목놓아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한다.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이기 싫다.


"진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왜? 왜 나지? 왜 나냐고!!!"


당장 계단을 내려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구급차를 불러야 했음에도, 더더욱 떨어지지 않는 손.
다시 멍 때리기를 수십 여 분. 더 이상 지체하면 되지 않을 것 같아, 정신을 겨우 붙들어 맨 채 119에 전화를 건다.
그 정신에 어떤 직감이 들어서였을까. 충전기와 지갑, 신분증을 에코백에 주섬주섬 챙겨 넣고 구급대원을 기다린다.


원칙상 응급실로밖에 이송이 되진 않으나, 다행히 최초 진료를 봤던 민간 병원으로 이송을 도와주신.
거기서 진료를 마치고 사설 구급차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큰 착각이었다.
들것에 실려온 날 보신 원장님께 경과를 말씀드렸다. 이젠 오른쪽 발가락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어제 말한 밑에서부터 마비가 올라오는 병인 것 같아요. 소견서를 써 줄 테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들어가세요."

"여기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나요?"

"네, 없습니다."


다시 한번 구급대원에게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씀을 하신 후, 그렇게 나는 소견서와 함께 대학병원으로 실려 들어간다. 최초 방문지는 부천성모병원.
신원을 확인하고, 체온을 잰 후 들어가려는 찰나 체온이 조금 높게 나와 코로나 격리실로 들어가야 한단다.
그런데 현재 격리실이 모두 꽉 차있어 입원이 안된다고.

결국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이동 중 구급차에서 체온을 몇 번이고 재보는데 체온은 정상범주로 나온다.


신원확인을 하고, 체온을 잰 후 응급실에 입원했다. 구급대원은 다른 출동을 받고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피검사, 심전도 검사 등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됐고, 코로나 백신을 맞은 시기, 코로나를 앓았던 적, 장염, 독가 등을 최근 앓았던 적, 먹는 등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다. 그 뒤 생전 처음 듣는 병명을 의사로부터 듣게 됐다.


"길랭바레증후군으로 의심되네요."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찬다. 대체 그게 뭔데???


길랭바레증후군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7월 말에 장염을 앓았던 것으로 보아 그것이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세, 속도 등이 모두 다르다. 회복되는 것 역시 사람마다 다 다르다. 빠르게는 수 일에서 수년까지 회복되는 증세가 다르며,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고, 혈장 내 독소를 제거하기 위한 혈장 분리 반출술을 활용한다. 혈장 분리 반출술은 경과를 지켜보며 진행하기로 하고,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위해 입원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한다.


본가와 가까운 아주대로 입원을 하기 위해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

양다리에 마비가 왔고, 길바레증후군이라고 하는 병이 의심된다고 한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주사 치료를 위해선 입원을 해야 한다. 그럼 아주대로 입원을 하는 게 낫겠나, 순천향대병원에서 바로 입원수속을 거쳐 주사를 투여하는 게 낫겠나.


아무래도 본가와 가까운 아주대가 낫겠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여 아주대 응급실을 거쳐 입원수속을 밟기 위해 다시 움직인다.
인생 처음으로 휠체어에 몸을 싣는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눈물 속엔 당황함과 억울함, 막막함이 섞여 주룩주룩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잠깐 자취방에 들러 쓰레기만 정리한 뒤 아주대병원으로 향한다.
아주대병원으로 가는 길에도 마비증상은 점점 올라오고 있더라.

멀쩡히 움직이던 오른쪽 허벅지가 갑자기 움직여지지 않기 시작한 것. 덜컥 겁이 난다.


'이거 왜 이렇게 진행속도가 빠른 거 같지? 내일이면 손도 안 움직여지는 거 아니야? 진짜 그러면 어떡하지?'


코로나 19 검사 음성을 확인받은 뒤, 응급실 입원수속을 밟는다.

그 사이 코로나 19 검사소에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고역이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간이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필사적으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올라간다.


'여기서 넘어지면 난 그대로 골절행이다.'

험난했던 화장실 이용을 마치고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응급실 병상으로 향했다.

응급실 병상에 누워 충전기 꽂을 수 있다고 좋아하던 나.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 길랭바레증후군으로 의심된다는 말이 들려온다.

주사 투약 금액과 비급여 항목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점을 안내받고, 오후 10시 반 즈음부터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투약하기 시작한다.
단 사흘사이에 급작스레 일어난 일에 아직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길어야 1~2달 뒤면 훌훌 털고 일어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두 달 좀 쉬고, 다시 돌아가면 되겠지? 큰 일은 아닐 거야.'


그렇게 나의 길랭바레증후군 입원 생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