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2월 29일, 23년에서의 마지막 진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듯, 찰나의 진료를 위해 소요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지하철과 버스를 3차례 갈아타고 아주대병원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결제를 하고, 신경과 로비에서 기다리는 시간만 약 1시간이 소요됐다. 그나마 책을 한 권 가져가서 망정이지, 그 마저도 가져가지 않았다면.. 졸다가 간호사의 호명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지팡이 짚고 오셨네요. 이제 안 짚어도 될 거 같은데."
"네. 경사 있는 길이나 길에 있는 장애물에 행여나 발이 걸릴 때를 대비해서 짚고 왔습니다."
"흠.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시면 아무래도 반응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지만, 환자분은 나이가 젊으셔서 안 짚고 다니셔도 될 거 같아요."
라고 하지만, 출퇴근길의 경사가 상당히 가파를 뿐만 아니라, 계단 등을 오르내릴 때의 발 걸림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 때문에 계속 들고 다니기로 한다.
"선생님, 혹시 알코올 섭취는 가능한가요?"
"안됩니다. 신경 재생에 가장 방해되는 게 알코올이에요."
"다 낫고는 괜찮을까요?"
"다 낫고 난 이후엔 괜찮겠지만, 지금은 안 돼요."
"넵, 알겠습니다."
"그럼 반년 뒤에 뵙겠습니다."
"선생님, 반년 뒤에 근전도검사도 같이 하나요?"
"가장 최근에 했던 근전도검사로는 아직 재생되지 않은 신경값이 보였어요. 근전도검사는 자주 해봐야 크게 의미가 없어서, 반년 후에 경과를 지켜본 후에 결정하도록 하죠."
"넵. 감사합니다. 반년 뒤에 뵙겠습니다."
"반년 뒤엔 지팡이 짚고 오지 않길 바랄게요."
"넵. 감사합니다."
왕복 3시간, 대기시간 1시간. 그리고 진료시간 5분. 허허.
반년 뒤를 기약하며 23년의 외래는 모두 마무리됐다. 요즘엔 왼쪽 발목과 발가락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중이다. 발가락 접기가 시나브로 가능해지는 중. 그와 동시에 허리를 들어 다리를 앞으로 이동하는, 골반이 틀어지는 현상 역시도 거의 없어진 느낌을 받고 있다. 최근 회식 당시, 대표님께서도 처음 면접/출근했을 때 봤던 것에 비해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만 까치발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2년도 하반기부터 함께한 길랭바레증후군은 올 해도 내내 나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언제까지 따라다닐진 모르겠지만, 24년 중엔 나의 꽁무니를 그만 따라다니는 날이 오길 소망해 본다.
지긋지긋해~ 이놈의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