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심장부를 중심으로 온몸을 휘감는 혈관 옆에, 커피 혈관이 하나 있다.
나의 신체뿐만 아닌, 나의 삶을 관통하는 커피 혈관.
심지어는 입맛도 까다로워 산미를 내는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원두를 골라야 하는 곳이면 항상 물어보는 질문.
"산미가 안 나는 원두가 어떤 건가요?"
믹스커피로부터 출발한 나로선 가히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어렸을 때의 커피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마시는 흙탕물 색의 무언가'였고,
어린애들은 마시면 안 된다며 으레 핀잔을 듣던 때였다.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시는 날이면 종종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때 그 믹스커피의 달달한 맛이란...
중고등학생시절엔 학원에서 졸지 않기 위해 캔커피를 들이부었고,
대학생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곤 했다
당시에는 달달한 커피를 좋아했던터라
나의 메뉴는 어딜 가던 항상 캬라멜 마끼야또였다.
카페에서 일을 할 무렵,
캬라멜 마끼야또를 만들어 먹기 귀찮아지자
아메리카노만 마시기 시작했다.
샷만 내리면 바로 마실 수 있었고,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벌컥벌컥 마시기 좋았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커피 혈관의 성향이 변한 것임에 틀림없다.
한 번은 친구네 북카페 운영 준비를 위해 커피 시음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내리 5-6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니,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 이게 카페인 부작용이구나.
그럼에도 그때 그 원두가 맛있어서 몇 잔을 더 내려마셨다.
현재, 매일 같이 일정 수준의 커피 혈관 농도를 유지시켜야
정신 말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출근 후, 컴퓨터의 전원을 켠 뒤 커피머신으로 가 커피를 내린다.
아침 한 잔으로 오전을 버틴다.
점심 후 한 잔을 더 내리며 오후를 버틴다.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면,
연하게 한 잔을 더 내리고 밤을 버틴다.
휴일 아침.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하려는 찰나,
몸의 기운이 축 처져있거나 편두통이 반겨주는 날이 종종 있다.
이럴 땐 다른 어떤 것보다 공복에 들이붓는 커피 한 잔이 제일 특효약이다.
커피를 마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활력이 돌고, 편두통이 사라진다.
'밥 보다 커피'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아무튼 오늘도 나는 커피를 마신다.
일정 수준의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나의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