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서른한 번째 이야기
겨울도 막바지에 접어든 무렵. 곧 다가올 자신의 퇴장을 새기기 위함일까? 늦겨울에 맞춰 병원에 감기 바람이 분다. 휘몰아치는 감기 바람을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따끔거리는 목을 감싸 쥔 채 치료실을 향하는 발걸음.
"밍님 감기 걸리셨어요?"
"네. 목소리 많이 티 나나요?"
"네. 이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정도인데요?"
"안 그래도 약 처방받아서 먹기 시작했으니 며칠이면 나을 거예요."
"몸조리 잘하시구요. 치료사들도 여기저기 감기 걸리고 난리도 아녜요."
약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지만, 할 건 해야지. 무릎 꿇고 스쿼트를 하고, 베드에 엎드려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등 운동으로 인해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약 기운에 나른하고 몽롱해지는 기분과 운동을 하며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에 의해 활성화되는 기분이 교차한다. 서로 다른 두 기분을 느끼자니 정신을 차리려야 차릴 수 없다.
심지어는 베드에 앉아 발목을 돌리다가 깜빡 잠에 들 뻔했다. 와 엄청 졸려. 와중에 보상작용을 하는 허벅지. 이제 발목 운동이야? 허벅지 운동이야?
"오른쪽 발목이 가동범위가 나오질 않으니까 허벅지에서 보상작용이 일어나네요."
"오 맞아요. 허벅지랑 엉덩이 엄청 땡겨요."
"그쵸. 아킬레스 건 쪽이 엄청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잡고 놔주질 않고 있어요. 운동하면서 근육을 수축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완시켜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스트레칭 꼭 해주세요."
아.. 스트레칭 진짜 고통스럽기만 하고 재미없는데.. :(
스트레칭 노잼!
다음 날 발목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발목 경사대 위에 잠시 서 있는 시간을 갖는다.
오른쪽 발목이 뻐근해져 온다.
"발꿈치 안 떨어지시죠?"
"네. 어우 엄청 땡겨요."
"그쵸? 이렇게라도 늘려줘야겠어요."
"와 오른쪽 발목 엄청 뻐근한데요."
"오 좋아요."
스트레칭이 끝남과 동시에 발목을 돌려본다. 어? 일시적이지만 효과가 있다. 어젠 분명 움직이지 않던 가동범위까지 발목이 돌아간다.
"와 이제 되네요."
"오 대박 진짜 신기해요."
이어서 조금 폭신한 경사대에 발을 올린 채 스쿼트를 한다. 발목과 종아리에 제대로 버텨주지 못해 한바탕 난리가 난다. 허벅지는 허벅지대로 오므려지고, 골반은 골반대로 틀어지고, 덩달아 몸은 몸대로 틀어지고. 총체적 난국의 향연.
"밍님 저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불안한데요."
"에이 단순한 거예요. 베드 위에 다리 살짝 구부려서 앉아주세요."
"네."
"이제 발꿈치에 힘을 줘서 몸을 앞으로 가져오세요."
발의 힘 만으론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가능하다. 이거 역시 손으로 버티고 몸을 움직이는 듯.
"음. 아직 안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자 이제 한쪽 무릎 꿇고 앉아주세요."
속에서 떠오른 한 마디. 선생님 이거 무릎 쏴 자세네요.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친다.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짐볼을 하나 건네주는 치료사. 이걸 쥔 채 손을 쭉 뻗고 좌우로 몸을 돌려보라 한다.
오른쪽 다리가 앞으로 나와있을 땐, 생각보다 수월하게 몸이 잘 돌아간다.
반면 왼쪽 다리가 앞으로 나와있을 땐, 자세를 가만히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 미친 듯이 떨려오는 몸뚱아리.
"아니 오른쪽은 잘 되더니, 왼쪽은 가만히만 있어도 몸이 미친 듯이 떨리네요. 무슨 일이에요?"
"하 그러게요. 머리는 이게 아닌데, 몸이 미친 듯이 떨려요."
"왼쪽 골반이 아직 받쳐주질 못해서 그럴 수 있어요. 왼쪽은 자세 유지만 해볼게요. 하나, 둘, 셋.."
셋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자세.
"어어. 무너지면 안 돼요. 밍님 다시 자세 잡고 처음부터~ 하나, 둘, 셋, 넷.."
또다시 무너지는 자세. 다시 심호흡을 내쉬고..
"밍님 열 셀 때까지만 버텨볼게요. 중간에 무너지면 처음부터 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반.."
다섯 반?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다섯 반이요? 다섯 반?? 제가 잘못 들은 거죠?"
"아니요. 잘 들은 거 맞아요. 다섯 반~ 여섯~"
하 내가 이름 진짜 기억한다.
치료시간 중 여러 치료사들이 오며 가는 모습을 보던 중 눈에 띄던 책 한 권. 스도쿠.
"선생님 여기 스도쿠도 있어요?"
"네. 인지 안 좋으신 어르신들께 종종 스도쿠 드리고 있어요."
"오 재밌겠다. 저 풀어봐도 돼요?"
"오! 마침 스도쿠 답 필요한 거 있었는데, 그거 드릴까요?"
"네네! 심심할 때 풀면 재밌을 거 같아요."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진 스도쿠 몇 장. 간만에 마주하는 소소한 재미.
아주대학교병원 입원 당시, 발병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장애등록신청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덧 발병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흐르게 됐고, 그때 안내받았던 기억을 살려 원내 사회복지사에게 문의를 한다.
"선생님 장애등록신청 할 수 있는 기간이 된 거 같은데 이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아 밍님 주소지 기준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제출하시면 되는데,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사람마다 달라요. 서류는 동사무소에 방문하시면 안내받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아 그럼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안내받고,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면 되는 거죠?"
"네. 근데 신청하시고 난 뒤에 최소 1개월 이상 걸릴 거예요. 심사 중 부족한 서류는 그쪽에서 연락 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평일 중 하루, 동사무소에 방문하여 장애등록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안내받았다.
하지 기능장애로 신청을 해야 했기에 장애진단서와 소견서, 근전도 검사결과지, 진료기록지가 필요한 시점. 근전도 검사결과지와 발병 당시의 진료기록지는 아주대 외래 시 받아오기로 하고, 장애진단서와 소견서, 6개월 간 경과기록지는 현 병원에서 준비하기로 한다. 서류는 약 1주일 정도 소요될 거라고.
최소 장애등급 기준을 살펴보는데 느낌이 온다. 아 이건 안 되겠구나. 현 병원의 주치의도 점차 호전이 되는 중이라 받기는 힘들 거라는 의견과 함께 그래도 준비는 해보겠단 말씀을 주신다.
와 근데 이게 뭐라고 또 한 차례 감정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네.
막상 예상은 했지만 장애등록신청 서류 안내를 막상 받고 나니 한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 억장 와르르 텐션. 한순간에 장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여럿 들어온 적 있으나, 막상 그 가능성이 생김을 직면하게 되자 새로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온다.
하... 여느 때와 같이 밤은 찾아오고, 어두워져만 가는 바깥 풍경에 맞춰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쏟아지는 눈물의 시간을 마주한다. 숨 죽여 눈물을 한 바탕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