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 동작과 무미건조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48

길랭바레증후군, 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3년 6월 셋째 주


"선생님, 저 오랜만에 스티프 데드리프트 해보고 싶어요."

"밍님, 허리 괜찮으시겠어요? 지난번에 허리 쪽 무리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하지 근육이 좀 더 붙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아~ 좋습니다. 대신 무리 오면 바로 말씀하세요. 복압 유지 잘하시구요."


흡! 숨을 들이 마쉬며 복압을 유지한 채 스티프 데드리프트를 시도한다. 오! 이제 허리에 무리가 오지 않는다. 10개 한 세트를 수행한 뒤 잠시 쉬는 시간.


"밍님 허리는 괜찮으세요?"

"네! 허리 무리 하나도 안 와요."

"자 좋아요~ 그럼 이어서 해볼게요."


다만 가동범위가 극도로 짧은 게 흠.

스티프 데드리프트를 마친 뒤 밸런스볼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밍님 저 잡지 마시고~ 어어~ 잡지 마세요~"


행여나 발목이 훅 꺾이진 않을까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조심스레 밸런스볼 위로 몸을 올린 후 잠시 균형을 잡고, 다시 바닥으로 한 발씩 천천히 내려놓는다. 바닥으로 내려오기 무섭게 휘청이는 몸.


"밍님 중심 잘 잡으세요! 자 좀 더 빨리! 쉬지 말고! 연속으로!"

"잠시만요 잠시만요."


동작이 아직 몸에 익지 않은 탓이었을까? 연속은커녕, 한 번의 동작을 수행할 때마다 숨 고르기 바쁘고,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기 바쁜 시간.




양 발에 2kg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리를 높게 들며 걷는다. 처음 몇 걸음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걸어갈 수 있기에 잠시 자만심(?)에 취해 본다.


'어? 할만한데?'


찰나의 자만심은 잠시 후 가쁜 숨소리와 춤추는 골반으로 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에 힘이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하며, 발은 턱! 턱!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지기 일쑤. 덩달아 골반 역시 힘이 빠지며 제자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춤추기 시작한다. 덩달아 다리 역시 제기차기 모양으로, 온전히 내전근의 힘으로만 다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한다.


"힘 빠졌어요?"

"네.."

"쉬어요 쉬어요."


드디어 치료실 배드 높이를 계단 오르내리듯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치료사가 앞에서 손을 잡고 균형을 잡아준다는 전제 하에. 왼쪽은 이전부터 허벅지가 튼튼했기 때문에 골반 쪽에만 살짝 균형이 무너지는 감이 있는 반면, 오른쪽은 골반은 튼튼한 대신 허벅지에서 잡아주는 힘이 부족하여 온갖 반동을 동원해야 겨우겨우 몇 차례 올라갈 수 있는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에 내심 신기함을 느낀다.


이어 서전트 점프와 제자리멀리뛰기를 시도해 본다. 발병 후 처음 시도해 보는 점프 동작.


"하나 둘 셋!"


치료사의 구령에 맞춰 있는 힘껏 점프를 시도한다.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찰나의 느낌을 받은 후 바로 착지하는 발. '뛰었다'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높이와 거리지만, 그럼에도 어느 발목 하나 꺾이지 않은 채 진짜 오랜만에 '체공'이란 것을 경험한 시간.




"초밥 먹고 싶다."
"스시오 고?"
"오 굳."


주말을 맞아 친구들과 스시오로 초밥을 먹으러 갔다. 이번 외출 목적지는 수원역. 지난주, 분당까지 지하철을 무사히 타고 온 경험을 감안하여 수원역까지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외출 장소를 잡는다.

스시오에서 초밥을 후딱 해치우고 오랜만에 설빙을 방문한다. 망고빙수와 커피를 시키고 홀짝거리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 날 빙수집이 너무 추웠던지, 감기에 걸렸다던 친구. 연약한 녀석 같으니.

KakaoTalk_20230723_221351270.jpg 디저트로 즐기는 설빙 망빙. 설빙 망빙? 빙자 돌림이자너!


외출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와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던 중, 기존에 사용하던 패드의 수명이 다했음을 느끼고 엑스박스 4세대 정품 게임 패드를 하나 구매한다. 올해 병원에서 맞이하는 내 생일을 기념으로(?)

KakaoTalk_20230723_221351270_01.jpg 흰색이 이쁘긴 해.


쿠팡이 쿠팡 했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로비로 나가 택배를 수령하고 새 게임 패드의 그립감과 키감을 느끼며 다시 취미에 열중한다.

아 진즉에 살 걸 그랬나. 이제야 버튼 안 눌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네.




근래 감정선에 차츰 변화가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불과 얼마 전까진 위아래 롤러코스터를 타던 감정선의 변화폭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는 것. 변화 폭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며 점차 무미건조함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발병 이전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변화.

지난 1년 간 숱하게 휘몰아쳐 오는 감정선의 변화폭을 애써 무시하기도 해 보고, 온전히 몸을 맡겨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무미건조함의 것까지 마주하기 시작하는 요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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