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이번주도 어김없이 달린다, 병동 복도를.
"밍님 이제부턴 코너에서 쉬지 않고 쭉 달려볼게요."
"네, 해볼게요."
복도 끝자락에서 시도하는 코너링. 코너링을 시도하자마자 발목에 힘이 툭 빠진다. 아이고 민망해라. 행여나 넘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속도를 확 줄여 걷다시피 하다 얼마 안 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 날부턴 양 발목에 2kg 모래주머니를 매단 채 병동을 달리기 시작한다. 무게감이 확연히 다르다.
"밍님 어때요? 무게감이 확실히 다르죠?"
"네. 와 2kg씩 단 거뿐인데 발이 안 나가요."
"그쵸? 확실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게 보여요."
길랭바레증후군 발병 이후 처음으로 휠체어 없이, 지팡이만 가지고 외래를 다녀왔다.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채 걷는 날 보고, 진료실을 두세 걸음 걷는 걸 보시곤 소견을 제시하는 주치의.
"지금 계속 재활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거죠?"
"네."
"지팡이 짚고 걸어 다닐 정도면 굳이 거기 계실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오히려 퇴원하고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게 차도가 더 좋을 거 같습니다."
아주대학교병원 외래를 마치고 돌아온 재활병원. 간호병동에 주치의 면담을 요청한 뒤, 주치의에게 외래 결과에 대해 간략히 얘기하며 퇴원일을 조율한다.
"아주대학교병원 주치의가 이 정도면 퇴원해서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게 차도가 더 좋아 보일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아 그러셨군요. 생각해 두신 퇴원일정 같은 게 있으실까요?"
"7월 말 즈음으로 생각하는데 괜찮을까요?"
"아 그럼요. 한 달 좀 더 남았는데, 거기 맞춰서 남은 치료도 진행하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퇴원일'이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정을 잡게 됐다. 여기까지만 11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찰나의 순간 '오! 퇴원한다!' 하는 좋은 감정이 듦과 동시에 한편으론 '아.. 직장 구해야 되네.. 후..' 현실의 찬물이 확 끼얹어지며 찰나의 감정을 없애버린다.
기존 담당하던 작업치료사 선생님이 갑자기 안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분명 내 골반 틀어진 거 보여준다며 사진 찍어주고선, 다음날 보기로 인사했는데? 퇴사..는 아닐 텐데? 소식을 듣자 하니 다리 골절이라고..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러다 퇴원일까지도 복귀를 못 할 수 있겠는걸? 그럼 그냥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야지.
이로 인해 다른 작업치료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몇 번 담당 치료사의 연차로 커버 들어오신 적 있는 분이었다.
벽에 손을 대고 서전트 점프를 시도한다. 떨어지긴 하는 거 같은데.. 발바닥이 쿠션감 없이 쿵! 내려앉는다. 애당초 쿠션을 줄 수 있는 발바닥 상태가 아니니까. 호.. 이러다 무릎이 나가는 건 아니겠지?
이어서 까치발을 시도해 보는데.. 오른발은 어찌어찌 뒤꿈치가 떨어지는데 반해 왼발은 힘이 들어가는 거 같으나, 뒤꿈치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내 뒤꿈치는 바닥을 많이 좋아하나 보다. 껌딱지 마냥 착 달라붙어 있네.
이번 주말엔 5월 말, 병원 인근으로 청모를 했던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지하철을 타 볼 기회이기도 했고, 병원에서 20분 남짓 거리이기에 용기 내어 다녀와볼 거리라 판단됐기 때문.
결혼식장으로 가는 지하철은 자리가 널널하여 편히 앉아갈 수 있었다. 다만, 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땐 자리가 없어 내내 서서 왔는데, 약 30분 남짓의 시간을 서있었을 뿐인데 다리가 많이 뻑적지근하더라. 무엇보다 왼쪽 뒤꿈치가 많이 아팠다.
작년에 식을 올린 친구도 보고(입원 관계로 식엔 참석 못했지만), 대학교 동기도 보았다. 동기는 날 알아보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는 후문.
토요일엔 식장을, 일요일엔 이전에 봤던 전시 작품 중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 지인과 함께 수원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새>라는 작품. 같은 피조물을 표현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각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비춰지는 모습이 재밌더라. 처음 작품명을 모르고 봤을 땐, 왼쪽부터 나무 위에 앉은 새/물고기/욕조 속 장난감이라 생각했고, 작품명을 본 후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니 다 같은 새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같은 형태의 것이라 한들 각 노출된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에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미술관 전시를 마치고 지인 집들이에 놀러 갔다. 최초 6월 첫 토요일에 하기로 예정했으나, 나의 외박일에 맞춰 조정한 집들이 일정.
집들이는 역시 먹을 걸 빼놓을 수 없지.
매운 족발(?)과 모둠회, 막국수, 진미통닭을 야무지게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6월에 있을 생일을 미리 축하한다며 챙겨 준 아이스크림 케이크.
그렇게 모든 걸 야무지게 먹고, 병원까지 태워다 주셔서 무사히 돌아왔다.
퇴원일을 확정함과 동시에 이제 맘껏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날이 한 달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게으른 사람이고 싶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