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리기와 선물 사이, 그 어딘가에서 #49

길랭바레증후군,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2023년 6월 넷째 주


"밍님 이제 근지구력 기르셔야죠."

"아 그쵸. 근지구력도 길러야죠."

"이제 모래주머니 떼고 병동 두 바퀴씩 뛰시죠."

"네? 두 바퀴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에이~ 잘 들으신 거 맞아요~ 퇴원도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으셨는데, 이제 근력 말고 근지구력도 기르셔야죠."

"아 물론 그렇긴 한데.."


한 바퀴도 살려달라 소리소리 지르며 겨우 뛰는데, 두 바퀴를 뛸 수 있을까? 행여나 지난번처럼 발목에 힘이 완전히 사라져 신발 앞코부터 바닥에 닿는 불상사가 생기면 어떡하지?

만약 회복이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어 두세 달 전에 이런 제안을 들었다면 기꺼이 승낙했을 것이다. 두 바퀴 까지꺼 그냥 뛰어보자고. 그런데 퇴원을 한 달여 남짓 남으면서 절대 엎어지면 안 된다는, 지레 겁을 먹는 것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는 듯하다. 아니 그냥 귀찮은 건가?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치료사의 제안에 따라 모래주머니를 차지 않은 채 병동 두 바퀴를 달린다.


한 바퀴는 어영부영 달리겠는데.. 두 바퀴 즈음부터 뭔가 발이 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슬쩍 시선의 방향을 아래로 돌린다. 왼쪽 골반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휘청이는 거야 늘 보고 느껴오던 광경이었고, 오른발이 자꾸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는 현상을 목격하고야 만다.


'아 오른발 허벅지의 대퇴외전근이 받쳐주지 못하다 보니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는구나. 그래서 몸이 전체적으로 옆쪽으로 꺾어지듯 틀어지는 거였구나.'


이후 최대한 발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써보려 하지만, 응~ 어림도 없지~ 심지어 4kg 빈 봉을 들쳐메고 뛰려니, 빈 봉도 신경 써야 하는 와중에 발 모양까지 신경 쓰려니 여간 머릿속이 복작복작 해진다. 동시에 고장나버리는 몸.


"어어 밍님. 4kg 봉 그렇게 막 놓으면 안 돼요. 저 맞아요."

"후... 제가 안 맞게 잘 조절할게요. 괜찮아요. 저 믿으세요."

"힘 다 빠지신 거 같으니까 봉 내려놓고 천천히 걸어갈게요."


역시 멀티태스킹은 할 게 못 되는 듯싶다.




모래주머니를 양 발에 찬 채, 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걷는 와중 오른쪽 고관절에서 툭툭 소리가 난다.


"밍님 이거 무슨 소리예요?"

"아 이 툭툭 거리는 소리요? 이거 오른쪽 고관절에서 나는 소리예요."

"아프시거나 하진 않으시죠?"

"네. 괜찮아요. 통증은 없고, 모래주머니 차기 이전부터 나던 소리예요."

"음.. 왼쪽은 어때요?"

"왼쪽은 소리 아예 안 나요. 오른쪽에서만 나요."

"허벅지 근육이 아직 부족한가 보네요."

"그런가 봐요.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밍님 이제 퇴원도 얼마 안 남으셨잖아요?"

"그쵸. 이제 한 달 남았네요."

"그래서 균형운동을 좀 해볼까 해요."

"균형운동이요?"

"네. 옆으로 발 교차하면서 걷는 거랑, 발을 1자로 모아서 걷는 거 해볼게요."


옆으로 발을 교차하며 걷는 건 생각보다 잘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오 옆으로 잘 걸으시는데요? 속도를 좀 높여볼까요?"

"속도 높이는 건 좀 이른 거 같아요.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기서 더 빨라지면 균형 잃고 넘어질 거 같아요."

"아 그래요? 그럼 지금 속도 유지해 보도록 할게요."

"선생님 이거 모래주머니 차고 해도 될 거 같은데요?"

"모래주머니요? 흠 알겠습니다."


아예 안 될 것 같은 동작이었는데,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움직여지는 다리. 아 물론 손은 치료사와 맞잡는 등 어느 정도의 균형과 안전장치는 잡혀있어야 한다. 이어 1자로 발을 모으며 걸어본다. 동작을 수행하기 전, 행여나 넘어지진 않을까 큰 숨을 들이마시며 맘을 다잡는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앞으로 내디딘다. 얼추 흉내는 내보지만, 왼발을 고정한 채 오른발이 앞으로 나갈 때면 오른손에 곧잘 많은 힘이 들어간다. 확실히 왼쪽 골반이 아직 충분히 받쳐주지 못함을 이렇게 확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가끔씩 왼쪽 엄지발가락 관절 쪽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규칙적이거나 지속적이진 않고, 가끔 찌르르하는 통증이 왔다 사라지는 정도. 통증이 너무 심하거나 하진 않고, 약 10~20초 정도 잠깐 왔다 사라지는 통증. 회진 때 주치의에게 이야기를 해본다.


"밍님 컨디션은 좀 괜찮으세요?"
"선생님, 요즘 밤 시간대만 되면 왼쪽 엄지발가락 관절 부근에 가끔 통증이 찾아오더라구요."

"아 그러시구나. 통증은 많이 심하신가요?"

"많이 심하진 않고 해당 부위를 좀 조이고 찌르르한 느낌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요."

"아침이나 낮엔 그러시지 않으시구요?"

"네. 아침이나 낮엔 통증이 느껴지지 않고, 밤 시간대만 통증이 생겼다 사라져요."

"음.. 근육통으로 보이진 않고 신경통으로 보일 수 있는 증상인데, 우선 좀 더 지켜보고 통증 심하시면 진통제 처방 해드릴게요. 다음 주 신경과 외래 잡혀있으시니까 그때까지 통증 유지되면 말씀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당장은 진통제가 필요한 수준의 통증은 아니라서요. 심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폼롤러로 종아리 근육과 인대를 풀어주는 치료사. 와 근데 왜 이렇게 아픔? 한술 더 떠 양쪽 다 동일한 세기로 아픈 게 아닌, 왼발에 비해 오른발이 좀 더 아픈 느낌이 온다.


"밍님 인대가 많이 짧아져 있네요. 인대를 늘리긴 하는데, 여기가 좀처럼 쉽게 늘어나는 곳은 아니에요."

"끄으으으으으으"


치료사의 차분한 설명과는 달리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느라 바쁜 나. 특히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뒤로 젖힐 때, 발바닥에 툭 튀어나오는 인대 쪽을 압박할 때가 제일 고통스럽다.


"평소 양반다리 하며 앉아계실 때 있으시면, 종종 인대 늘어날 수 있게 조금씩 눌러주세요."

"네. 끄그으으으으ㅡㅇ"


스트레칭(이라 쓰고 괴롭힘이라 읽는) 시간이 지난 후, 지난주와 동일하게 서전트 점프와 제자리멀리뛰기를 수행한다. 연속 점프는 아직 어림도 없는 도전이고, 한 번 뛰고 숨 고르고, 한 번 뛰고 숨 고르고의 반복. 조금씩 조금씩 점프하여 전진하는 모습을 우연히 다른 치료사가 보더니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어? 밍님 이런 말씀드리기 뭐 하지만, 황소개구리 같아요."


??? 아니 웃겨서 중심 무너질 뻔했네.




친구들이 보내준 생일선물이 속속 도착한 때. 보내준 선물을 잘 받았다며 인증샷을 찍고 한 명 한 명에게 연락을 한다. 그러던 중 문득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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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 올려서 자랑해야지. 히히.'


이 생각이 들고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생각이 찾아온다.


'?? 아니 자랑하라고 받은 게 아닌데.. 이걸 굳이 그렇게까지 자랑하고,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걸까?'


순간 스스로가 한심하단 생각과 동시에 선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 생각이 미친다. 과연 선물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SNS 따위에 올려 자랑질이나 하라고 주는 선물인가? 그것은 결코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택배 상자를 분리하며 든 첫 번째 생각에 스스로 모멸감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해야겠단 생각이 들며 곧바로 실행으로 옮김과 동시에 해당 어플을 내 폰에서 지운다.


한동안 어플의 위치에 무의식적으로 손이 갔으나, 일정 시간이 흐르자 해당 증상도 사라지고, 다시 스스로의 삶으로 되돌아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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