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쉰세 번째 이야기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구두를 찾아 신는다. 과연 지금의 발이 구두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일단 가보기로 한다. 결국엔 익숙해져야 하는 자극이기도 하거니와 직무를 살려 일을 하기 위해선 필히 신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마치 베타테스트를 하는 느낌이랄까?
얼마 만에 메는 넥타이인지. 행여나 까먹진 않았을까 싶었으나, 넥타이를 쥔 손은 마치 어제 넥타이를 맨 것 마냥 슥슥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 죽지 않았군.
그렇게 정장을 차려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오른손엔 지팡이를 쥔 채 한 발자국씩 조심스레 나아간다. 간호병동에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떠들썩해진 간호병동.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어머, 밍님! 완전 딴사람 같은데?! 선생님들! 얼른 와봐요 얼른."
"뭔데 뭔데. 어머~ 밍님 대박이다. 다른 사람이야 완전히~"
간호스테이션에 있던 선생님들의 놀라는 반응을 뒤로한 채 유유히 병원 밖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
얼마 가지 못해 왼쪽 발목이 한번 꺾이는 사소한(?) 이슈가 생겼다. 아차 싶었다. 이대로 발목이 접질린 건 아니겠지? 지레 겁이 났으나 다행히 주저앉지 않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꺾인 발목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새끼발가락만 살짝 부은 느낌을 받았다. 휴 십년감수했구먼.
한 번 꺾인 것 외에 추가로 넘어지거나, 발이 꺾이는 등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병원으로 돌아와 잠시 치료실에 기웃기웃거리는데...
"어? 와, 대박! 못 알아볼 뻔했잖아요. 잠깐만 있어봐요. 치료사들 불러올게요."
"아냐아냐아냐. 그러지 마요. 안녕히 계세요."
마주친 치료사에게 인사를 하고 병실로 돌아가는 길, 간호스테이션을 지나치는 길에 갑자기 우르르 달려오는 치료사 무리들. 무슨 일이 생겼길래 저렇게 우르르 몰려오나 싶었는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다.
"와~~~~"
"와 대박 진짜 다른 사람이네요!"
"와 역시.. 남자는 키가 중요하군요."
무수히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어쩔 줄 모르는 나. 빨리 가라고 훠이훠이 손사래를 치며 그 무리를 뚫고 병실로 돌아오며, 면접 외출을 마무리 짓는다.
"와 밍님 이제 진짜 내일모레면 퇴원하시네요. 기분이 좀 어떠세요?"
"솔직히 별생각 없긴 해요. 이제 나가면 밥벌이를 해야 할 텐데 어떡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네요."
"밍님은 분명 좋은 곳 잘 가실 거예요."
"허허.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병원 생활도 썩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삼시세끼 꼬박꼬박 주고, 운동시켜 주고, 말동무해주고, 얼마나 좋아요."
"대신 돈이 나가죠."
"앗. 이게 진짜 친구비 아닐까요?"
"아니 친구비라뇨! 그래도 할 건 해야겠죠. 자 런지 한번 해볼게요."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몸부림을 잠시 뒤로하고 런지를 시도한다. 왼쪽 발목도 조금씩 버텨주면서, 치료사의 보조 없이 온전히 혼자 힘으로 런지를 수행한다. 와.. 그런데 발목이 행여나 꺾이진 않을까 싶어 온 신경을 발목에 두고 런지 자세를 수행하다 보니 타깃 근육에 제대로 된 자극이 오지 않는다. 2~3개 했을까? 힘이 빠져 털썩 떨어지는 몸.
"밍님 확실히 발목에 신경이 집중되니까 원하는 부위에 자극이 잘 안 오죠?"
"네. 어우 발목 꺾일까 봐 무서워서 거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좀처럼 엉덩이에 자극이 오질 않고, 허벅지에 자극이 많이 오네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왼쪽 발목이 많이 튼튼해져서 제가 다 뿌듯하네요."
"다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아유 아니에요. 밍님이 열심히 해주신 덕입니다."
늘 풍겨오는 훈훈함(?)도 조만간 끝이구나.
"그럼 내일은 치료실 쭉 돌면서 인사하시겠어요?"
"아 좋습니다."
퇴원 D-1, 치료사와 함께 발목에 2kg 모래주머니를 차고 9층부터 6층까지 치료실 순회를 한다. 막 입원했을 때 회복기 두 달 동안 함께 했던 치료사와 주말을 담당했던 치료사와 7층에서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치료사들과 인사를 한다.
"선생님, 저 내일 퇴원합니다."
"오 진짜요! 와 진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선생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죠. 건강하세요!"
"열심히 글 읽고 있어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화이팅!"
그런데 생각보다 아는 치료사가 없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마지막을 기념하며(?) 마사지를 받으며 노가리를 깐다.
"드디어 퇴원이시네요."
"아유 그러게요.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네요. 이제부터 시작이죠 또."
"그쵸. 밖에 나가서 열심히 운동하시고, 많이 걸어 다니세요."
"넵. 나가면 헬스장 다니려구요. 프리웨이트는.. 아직 불안할 거 같고 기구로 운동 좀 해야겠어요."
"금방 더 좋아지실 겁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23년 7월 28일. 대망의 퇴원일이 도래했다.
아침부터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가기 위한 짐을 챙기는데 생각보다 짐이 많다. 책, 옷, 노트북, 닌텐도 스위치, 세면도구, 서류 등등.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챙기고 병원을 나선다. 짐이 많다 보니 같은 병실 내 사람들이 도와주어 한 번에 모든 짐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휠체어 반납을 위해 원무과 앞에 휠체어를 가져다 두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며 진짜 입원생활에 막이 내린다.
"저 없다고, 보고 싶다고, 허전하다고 우시면 안 돼요~"
"아잇 얼른 나가서 건강해지고, 직장도 잡고, 좋은 사람도 만나고 해요!"
"헤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무리하지 말고."
물론 지금도 발병 이전의 자연스러운 발걸음은 나오지 않는다. 아직 왼쪽 발가락과 앞꿈치의 신경과 힘이 부족하고, 왼쪽 엉덩이와 오른쪽 허벅지의 힘이 부족한 건 여전하다. 그럼에도 지팡이를 짚고 보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왔기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단 결심을 실행으로 옮긴다.
2022년 8월 3일 입원을 기점으로, 8월 23일 전원, 이듬해 7월 퇴원까지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놀람과 억울함, 믿기 힘들어 현실을 부정하고 싶던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여, 생각보다 많은 감정선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왜 나의 일상이 한순간에 빼앗긴 것인가에 대한 서러움과 그로 인한 울분.
과연 회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함.
시나브로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왜 이렇게 더디게 회복되는 것인가에 대한 속상함.
그럼에도 조금씩 운동기능이 돌아오고 있다는 데서 느껴지는 안도감.
회복 속도에 점차 탄력이 붙는 것을 보며 다시 품은 희망.
나에게 닥친 이 현상에 점차 적응해 가며 스며드는 익숙함.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길면 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난 1년의 시간.
이 글을 마치며 지난 1년 간 치료를 담당해 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실명은 좀 그러하니 성만 적는 건 괜찮겠..지?
물리치료사 탁○○, 이○○, 강○○, 김○○
작업치료사 안○○, 윤○○, 이○○, 김○○, 이○○, 김○○
7층 간호병동 선생님들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