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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을 거닐다.

<산책>

by 밍밍한 밍

네이버 지도 앱을 켠 채, 자취집 근처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중랑천'이 눈에 들어온다. 부천에서 자취를 했을 땐 도보 3분 거리에 심곡천이 있었고, 그 덕분에 종종 산책이나 러닝을 하곤 했다. 부천에서의 기억을 곱씹어보며 중랑천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일몰 시간을 검색해본다. 오후 6시 59분. 일몰 시간 전에 나가서 자리를 잡고, 시간에 맞춰 일몰 사진을 찍고 돌아오리라 마음 먹는다. 그렇게 집 밖을 걸어나가는 찰나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빗방울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 얹혀지는 천둥 소리. 대충 1~2시간 이내면 멎을 것 같지만 비가 다 그치고 나가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한 손엔 우산을, 다른 한 손엔 지팡이를 짚으며 길을 나선다.



버스에 몸을 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랑천에 다다랐다.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거세져만 가고. 덩달에 내 신발과 양말도 축축하게 다 젖어만 갔다. 언덕길을 따라 어르신 한 분이 우의를 입은 채 자전거와 함께 길을 내려오고 있었고,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따릉이들은 이 세차게 오는 빗줄기를 온전히 맞으며, 그들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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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을 올라갈까, 옆의 계단을 올라갈까 고민하던 중 괜스레 언덕길에 미끄러지는 건 아닐까 싶어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기 시작했다. 행여나 미끄러질세라 오른손으로 우산과 계단 난간 손잡이를, 왼손으론 지팡이를 쥔 채 한 계단씩 발걸음을 내디뎠다. 계단을 다 올랐을 때, 나를 맞이해준 건 다름 아닌 비바람이었다. 비가 바람을 벗삼아 대각선 방향으로 쏟아져 내려오며 안전하게 계단을 올라온 나를 환영해주었다.


때마침 겸재교 밑에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구간이 있었고, 그곳으로 몸을 움직여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며 경치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서쪽 하늘에 구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 내가 있는 구역에만 비가 오는 듯했다. 그 덕분에 해가 서쪽 너머 사라지는 풍경을 볼 순 있었다. 어쨌든 목표는 달성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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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점차 그치는 기미가 보였다. 그와 함께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구름 사이로 파란 물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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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하늘의 구름은 분홍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봄날의 벚꽃이 하늘에 수놓여있는 듯한 느낌을 만끽했다. 비록 신발과 양말은 모두 젖어 축축함과 찝찝함의 느낌만을 가져다주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아름다운 색감이었다. 오히려 급작스레 내린 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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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감과 동시에 빠르게 어두워져갔다. 집에 돌아가서 저녁 일과를 해야할 시간임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맡기며 중랑천 탐방을 마무리지었다.

예상치 못한 빗줄기에 험난한 여정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값진 풍경을 눈에 담아올 수 있던 그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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